보이나요

김남길 치임 포인트18 올곧음

뽀야뽀야 2021. 4. 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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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남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며 느낀 게 있다.

이 사람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다.

그가 NGO를 이끌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NGO는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이라 하여

비정부 기구 라고 부르는데.

남길은 이 활동을 하고 있기에 기업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와도

협찬을 받지 않은 채로. 

프로보노들의 자발적인 재능기부를 통해 길스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길스토리는 그가 만든 단체의 이름이다.

지금은 소속사도 세워서

길스토리 엔터사업과 길스토리NGO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그렇게 소취하는 우주최강쇼는 NGO활동 쪽이다.

공연 수익금이 문화예술사업에 기부되니 말이다.

 

사실 편하게 지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텐데.

굳이 가시밭길을 선택해서 걷고 있는 그에게 많은 질문이 있었다.

tvN에서 방영된 김현정의 쎈터뷰(2019)를 보면

깊이있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엄마에게 김남길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김남길이 천사같다는 극찬의 표현이었다.

아마도 남길이 인도네시아에 구호활동을 갔던 일을

기억하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 때를 방송으로 담아낸 것이 세계와 나 W(2010)이다.

아마 본방사수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오후 11시 55분 방영이었음)

그렇게 알게 모르게 올곧음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 

길스토리 대표님 남길이다.

그리고 5년간의 길스토리 활동기록을 담아낸 잡지 CUP에서도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쉬운일은 분명 아니다.

내가 안정되어 있어야만 할 수 있을 것같고 그렇다.

그런데 남길의 활동을 보면서 나도 교육봉사를 갔던 일이 생각이 났다.

한겨레중고등학교라는 곳인데.

북한 이탈주민들의 적응과 자립을 돕는 그런 교육기관이다.

교육봉사를 하려면 일단 아이들 숙소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해야 했다.

대학 때 교직 담당 교수님의 추천으로 가게 되었는데.

사실 교육봉사가 더 크게 내 마음속에 각인된 것은.

봉사를 떠나는 날이 임용고시 시험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시험 대신 봉사를 택했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냐고 물으면 살짝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왜 이제 몇 번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려 하냐고.

주변에서는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었다.

그래도 내 결심은 확고했다.

게다가 교육봉사 일정 안에 내 생일도 포함되어 있어서 더 흥이 올랐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대학도 가고 그럴 때까지 

연락도 하고 따로 만나서 밥도 사주고 이야기도 나누고 참 좋았다.

아이들이 일본어에 큰 관심을 가져 주었던 점도 고마웠었다.

 

대략 3주 간의 짧은 봉사 기간이었지만.

그 찌는 듯한 여름을 함께 했던 추억, 기억은 돈주고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졸업 하면서 교수님들께 인사도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홀랑 집으로 갔던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린다.

졸업식날 온 가족이 모여 먹던 갈비가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친구들하고의 뒷풀이도 참석하지 않았던 듯.

가족이 끔찍했던 졸업식 날의 기억이다.

 

그리고 남길도 중국어 전공이라.

우리는 통하는 점이 참 많은 것 같아.

같은 언어 전공으로써 말이다.

언어라는 게 생각과 뜻의 단순한 매개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도와주니까.

나는 일본어 전공이라는 것이 만족스럽고 그렇다.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경제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좋아하는 걸 전공으로 삼는 바보니까.

나도 내가 부족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 전공으로 밥벌이 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중국어도 1학년때 잠깐 배웠던 것 같다.

그 길로 나갔어도 나는 열심히 했을 거다.

그러나 뜻이 일본어에 더 가까웠기에.

왜 하필 일본어였을까?! 

영어 였으면 좋았잖아...바보 멍충이.....

근데 영어도 취미로 하고 있어서.(영어 라디오)

예전에 학창 시절에도 영어 라디오를 즐겨 듣곤 했었다.

그 당시에는 노트 필기가 아니라 A4를 세로로 2등분해서 접어서.

필기해 놓은 A4뭉치들이 방에 가득하다.

가끔 청소하다가 펼쳐보면 그 시절 영어에 진심이었던 나를 발견하곤 한다.

짜아식, 언어 배우는 걸 참 좋아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칠레 친구와 펜팔을 하기도 했었지.

그 당시 고스로리와 bonnie pink를 좋아하던 우리는

참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말이다.

그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여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팀버튼) 책도 보내주기도 하고.

답례로 산티아고 여행사진도 보내줬었던 것 같은데.

우리 같이 힘을 합쳐서 학교를 부숴버리자고...(?)

그렇게 다짐하곤 했는데 삶에 치이다 보니 연락이 끊겼다.

잘 살고 있으려나 나의 꼬마 devil 친구는.

 

이래저래 파란만장하게 지냈던 것도 같다.

대학 시절에는 과활동보다 동아리활동에 열심이었어서.

교수님들의 눈총을 샀는데.

나는 철저하게 좋아하는 것만 바라보고 살아온 것 같다.

드럼이 그냥 좋았다.

당시에는 뭔가를 발산하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세게 두들기고 밟아도 괜찮다는 것.

다른 악기들의 밑바탕 리듬을 깔아주는 악기라는 점.

그런 점들이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습실에서는 맨날 과녁도 없는 흰 벽에 스틱 던지기를 하곤 했지.

물론 그 시절 합주 멤버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나는 인연을 끊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의례적인 안부인사 그런 건 키우지 않기 땜시롱.

 

그래서 내 삶의 족적을 밟으면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 이동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그렇다.

좋아하는 남길 열심히 파고 있으니까.

이 흐름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남길은 끊임없는 강물처럼 내 안에서 넘실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올곧음이 나를 그의 곁으로 불러 들였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를 더 오래 보기 위해.

조금이나마 그를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 곁에 있고 싶다.

이렇게 바른 사람 또 없습니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데 방구석 폐인은 소스가 부족하고....

 

지치고 힘들 때 남길 사진을 보면 또 며칠 반짝 한다.

작심 삼일이 되어버릴 때가 흔하지만.

그래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가 하나쯤 삶에 있다는 건.

축복이고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동생이 한창 락보컬에 빠져있을 때 맨날 부르면서 돌아다녀서

짜증이 나기도 했었는데.

가사도 너무 좋고, 딱 지금 나의 상황 같기도 하다.

항상 달려갈 힘을 주는 남길에게 고마워 하면서.

마무리가 어렵다.... 뭐라고 하지?

남길 raise me up?!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로 남길?!

내 기억속에 오래 남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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