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듬뿍 김치찌개
엄마의 사랑 반 스푼
모처럼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았다.
항상 깊은 냄비에 끓여서 김칫국이 되어 버렸는데.
이번엔 전골냄비에 만들어 본 김치찌개이다.
집에 김치가 있다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김치찌개.
그냥 김치 숭덩숭덩 썰어넣고 국거리용 돼지고기 넣고.
멸치 똥 따서 부숴넣고, 두부가 있다면 한 모 썰어주고.
대파 슥슥 썰어 얹어주고.
마법의 MSG를 뿌려주면 완성이다.
지글지글 푹 익혀주면 끝이다.
기름부위가 많은 고기를 쓰면 찌개 향이 깊고 진해진다.
엄마는 여기에 버터를 넣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라며 말 끝을 흐린다.
근데 버터가 집에 없잖아.
아쉽게도 실험은 나중으로 미루고.
국물이 있으면 뻑뻑한 아침도 문제없지.
고추참치에 비벼먹을까 하다가 어제 먹다 남긴 김치찌개가 있다는 걸.
생각해 내고는 바로 식탁앞에 앉았다.
역시 국물이 최고야.
그런데 우리 건강식을 위해 국물을 줄이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모처럼 먹는 김치찌개니까 이정도는 괜찮지.
진짜 건강식 하려고 하면 먹을 게 없다.
풀만 뜯어야 돼.
나물류를 원없이 먹게 된다.
콩나물, 숙주나물, 시금치, 무나물, 오이무침, 호박볶음,가지볶음 등.
다 넣고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버려도 좋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허접하게 먹을 수는 없어!!
라고 뽀야가 항의해 보지만.
건강하고 굵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로 수정이 필수적이다.
얇고 길게 살기를 바란대도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얇으면 뚝 끊어져 버린다고.
지금이야 젊으니까 어찌어찌 버티는데.
이제는 영양제로도 커버가 안될 만큼 몸이 신호를 보내게 될 지도 몰라.
당장 동생만 해도 다래끼며 사마귀며.
치료에 애를 먹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영양제를 먹지 않으면 기운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침에 물 한 컵 가득 담아 영양제 먹는 게 참으로 귀찮기는 하다.
그래도 이게 없으면 하루가 맥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
종합비타민에다가 비타민C, 오메가3, 마그네슘, 질내유산균까지.
이 정도면 과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몇 가지 더 추가할 수는 있겠지만.
일단 저정도를 기본으로 해서 쌓아 올려야지.
수험생들 카페 가보면 홍삼에 비타민B에 콜라겐, 루테인 등등.
좋은 거 열심히 챙겨드시는 모습에.
우리가 이제 몸 하나 믿고 비빌 처지는 아니구나 싶어서 씁쓸하다.
지인이 추천해준 질내유산균은 삶의 질 향상의 1등 공신이다.
일단 음식물의 소화가 빠르고.
체한 느낌이 많이 없어졌다.
장내 활동도 원활해지고 몸이 가벼워 졌다.
진짜 좋은 거 알게 해준 우리 길햐한테 너무 고마운 것이다.
소화제를 달고 살아 온 지난 날.
이걸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김치찌개를 보고 있자니
아빠 생각이 또 불현듯 떠오른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공기가 뚝딱이신 분이었는데.
가위가 아닌 손으로 찢어먹는 김치를 좋아하셨지.
특히 무김치를 좋아하셨어서 김치찌개에도 무 몇 덩이를
넣어 푹 끓여내면
허겁지겁 손에 묻혀 가며 드시던 그 모습이 아른거린다.
내가 아빠를 위해 한 일이 대체 뭐가 있는가?!
뭐든지 받기만 한 바보 같은 딸내미였다.
공부할답시고 방에서도 잘 나오지 않고.
아빠를 귀찮아 하는 기색도 많았고.
아무 증명도 되지 않는 긴긴 공부를 두고.
아빠와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나는 똥멍충이까지는 아니니까.
이제 엄마한테 잘 해드리면 되는 것.
그래서 더 많이 얘기하고.
같이 산책도 종종 하고.
쉬는 날엔 옆에 붙어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 대서 혼을 쏙 빼놓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으니까.
끝은 언젠가에 존재하는 거니까.
그만큼 소중한 이 순간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즐기는 방법.
그게 책상 앞에 있지 않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지금도 멍하니 책을 보고 있자면.
두려워 진다.
이 모든 게 물거품 같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라리, 밖에 나가 운동이나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빠 떠나신 직후에는 그런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진정되고 정리가 되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너무 아까우니까.
그렇게 붙잡고 있는 이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은 아닌지.
타고 올라가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항상 조금 남은 책은 나를 안달나게 만든다.
조금만 더 읽으면 끝인데.
참 막판에 진도가 잘 안나간다.
조바심이 난다.
요즘엔 예전만큼 집중력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내리 6개를 보던 인강인데.
1시간도 안되는 데도 이제는 완강하기가 버겁다.
그래도 미루지 않고 꾸역꾸역 따라가는 중.
밥을 하루 먹었다고 내일 안먹지 않듯이.
꾸준히. 그게 비결이겠지.
당장 6월 시험이 코앞이라 감상에 젖어 보았다.
장소 나오는 거 봐서 너무 멀면 그냥 안 갈테야.
라고 잔뜩 소심해진 뽀야.
발밑이 휙휙 흔들리는 것만 같다.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서 숨이 조여 온다.
조금씩 내려놓기를 배워가는 중이다.
급한 길일수록 돌아가야지.
너무 에둘러 가서 무슨 오름길 탐방온 것 같이 되어버렸다.
콩밭의 콩도 쑥쑥 잘도 자랐구나.
모처럼 평일에 쉬게 되어서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시험을 앞둔 압박감이 나를 지배해 버려서.
뭔가 뒷맛이 찝찝하다.
남은 김치찌개는 저녁에 먹어야겠다.
고소하고 시큼한 이 맛이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