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do53 52.아빠의 수저 제사 때나 볼 수 있는 물건 그렇게 되어버렸다. 한 때 항상 수저통에 꽂혀있던 아빠의 수저는. 이제 그 주인을 잃고 서랍장 깊은 곳에 새하얗게 내려앉는 먼지들과 사투하며 정갈하게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빠의 부재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참 얄궂다. 아빠를 잃었다는 걸 잊고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서. 이런 저런 이유로 피하고만 있었는데. 어제는 문득 엄마의 빨간 수저를 보면서. 아빠의 파란 수저가 딱 떠오른 것이다. 둘은 세트였다. 그런 거 하나하나가 아직도 가슴 한쪽을 콕콕 쑤실 만큼. 단련이 덜 되었나 보다. 호탕하신 분이었다.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나? 싶을 정도로 크고 또렷했다. 평소에 대화를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 저사람들 싸우나?!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2021. 7. 4. 51.엄마의 땀띠 갱년기 증상으로 곤란을 겪는 엄마 왜, 갱년기 라는 게 있어가지고. 중년 여성을 곤란하게 만드느냔 말이다. 호르몬 균형 같은 거 일생에 걸쳐서 천천히 이루어지면 좋잖아! 주말에는 산책을 2번 하고 싶어진다. 당장 급한 문제도 없는 데다가. 집에만 있으면 그저 TV만 보게 되니 말이다. 점심먹고 한 바퀴, 저녁 먹고 두 바퀴. 그런데 어제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거의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기온이 오르고 바람 한 점 없어서. 나는 더워지는 데 별로 민감하지 않아서. 땀도 별로 안나는 편이라서. 잘 못느꼈는데. 엄마는 땀으로 칠갑을 한 것 처럼 뻘뻘 흘리시더라고. 그리하여 땀띠가 생긴 것이다. 짬이 나면 온통 따끔거리고 불편할 텐데. 다행히도 전년도에 쓰던 땀띠 연고가 있어서 일단 그걸로 응급처치. 땀띠 완.. 2021. 6. 28. 50.아빠와 아귀찜 2020년 1월 5일에 우리는 아빠 단골 아귀찜 가게를 찾았다. 그날은 평범한 겨울날이었다. 갑자기 아빠가 점심대접을 하고 싶다면서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가게로 향한 것이다. 마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에 거하게 식사하는 자리처럼.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은 아귀찜을 맛있게 먹었다. 사실 뽀야가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기도 했지. 아귀찜에 밥 비벼먹고 싶은데 그 가게를 혼자 못 찾아가니까. 그날은 차분한 분위기였고 배가 엄청 부르게 가게를 나섰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기념하려고 찍은 사진 속에는 아귀찜만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고 아빠는 팔만 나와있다. 뽀야는 음식 사진만 찍을 줄 알았던 거다. 사실 그 순간 아빠의 표정이며 모습 그런게 더 중요했는데. 이렇게 다시 1월 5일이 지나가고 다시는 아빠를 보지 .. 2021. 1. 6. 49.잔소리 왜 한 사람의 행동에 이것저것 말을 덧붙일까. 이번 이야기는 뽀야의 못된 습관에 대한 것이다. 이걸 저렇게 하면 더 좋았을 걸. 처음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참견을 했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못마땅하다는 기분이 들었나보다. 꼭 시어머니처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훈수를 두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꼬투리가 꼬돌꼬돌 내가 건드려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 있다. 엄마가 양말을 벗어두고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가면 그냥 잠자코 있으면 좋을 것을. [아! 엄마 양말은 세탁기에 넣어야지!!] 하고 신경질 같은 잔소리를 한다. [이따가 넣을 거야.] 엄마는 이런 잔소리에도 꼭 대답을 해주신다. 쫀쫀한 뽀야는 별거 아닌 것 까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잔소리 폭탄이라고 불리게 되.. 2020. 12. 22. 48.아빠방 불침번 삼순이 우리집 안방은 비어있다.아빠가 쓰시던 컴퓨터와 스피커, 장수돌침대와 여분의 TV.이렇게 창고방처럼 되어버렸다.오후에 안방에 들어가면 온통 캄캄하다.그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 삼순이로 말할 것 같으면아빠께서 내게 선물해주신 첫 인형이다.맨날 빈둥대며 누워있기 좋아하는 뽀야 더 편하게 누우라고 사다주신 베개 인형.그 당시 내이름은 김삼순 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그 때 앉은 자세의 삼순이와 누운 자세의 삼순이가 미친듯이 팔려나갔지.유행이었으니까.[숨겨왔던 나~의~♬]이런 배경음악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아빠가 삼순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을 때.그렇게 아빠는 삼순이를 매일 괴롭혔고 거기에 나는 매번 고뇌했었다.그 모습이 재밌으셨는지 삼순이 방향을 바꿔 향해 놓거나뒤집어 놓거나 하는 장난을 많이.. 2020. 12. 11. 47.주말 감수성 뽀야는 주말을 평일보다 특별하게 보내려 애쓴다. 그것은 아침 기상부터 다르다. 조금 느긋하게, 여유있게 일어나고 싶은 것. 그러나 오늘 아침의 상황. 엄마가 아침부터 전기포트로 물을 데우고.(휘릭휘릭) 세탁기를 돌려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왜 아침에...! 휴일의 소중한 잠 반납에 뿔이 난 뽀야였다.(엉엉) 뽀야가 생각하기에는 주말 감수성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엄마는. 요새 어떤 단어든지 금새 감수성이라는 말을 붙여서 지칭하곤 하는데 주말 감수성이야말로 직장인 및 사회인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주말을 소중히 보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서. 또 특별하게 주말을 설계하고 누릴 줄 아는 넓은 마음 그릇. 주말에 평일에 하지 못한 일들을 채워넣고 후뚜루막뚜루 돌려버리는 .. 2020. 11. 28. 46.아빠는 영원히 부재중 카톡을 잘 하지 않는 뽀야. 우연히 잘못 눌려서 친구들의 상태메시지를 주욱 보게 되는데. 거기에서 새롭게 눈에 뜨인 것은 아빠의 상태메시지. 그리고 프로필 사진. 전부 가족사진이었다. 뽀야는 보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혼났다. 이미 아빠의 부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걸 눈으로 확인해버리니까 눈물이 나더라. 있다가 없으면 정말 가슴 아프다는 거.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고귀한 존재라는 것.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 중에 하나이다. 카톡에 있는 가족사진을 찍게 된 것도 정말 우연이었다. 찌는 듯한 여름날에 전주에 놀러가서 길가에 얼음이 늘어서 있고 하는 더운 와중에 그냥 발길 따라 들르게 된 사진관. 뽀야는 그저 색다른 한복을 입은 자신의 흔적을 남겨두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가족사진까지 찍게 된 것이다.. 2020. 11. 27. 45.짱짱 허용맨 아빠는 짱짱 허용맨이다. 뽀야 공부에 관한 사항은 전부 뽀야에게 위임한다. 뽀야가 공부하다가 쉰다고 해도 뽀야 몸 상할까봐 묵묵히 지켜봐 주시곤 한다. 생각해보면 이거 안 돼 저거 안 돼 이런 얘기는 어릴 때 이후로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빠도 젊은 시절에는 성격이 좀 괴팍해서 불같이 화도 잘 내고 엄한 데 화풀이하고 그러곤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누그러지고 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좋은 글 좋은 말 많이 배우면서 뒤늦게 인생의 정수를 알아가신 것 같다. 또 항상 차에서는 라디오를 들으시면서 모르는 세상일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해박했던 아빠였다. 그렇게 안 되는 일 없이 질주하며 살았던 뽀야 인생에 [안 돼]가 늘어난 건 의외로 자상했던 엄마가. 방청소 해라. 책상에 먼지 좀 쓸고 해라.. 2020. 11. 11. 44.심슨아빠 동그랗게 튀어나온 배가 너무 닮았다. 심슨!!! 이라며 배를 내밀고 다니는 아빠에게 폭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 매일 과식을 하고 소화를 못시켜서 소화제를 마시고 죙일 앉아서 일을 하시고 하다보니 아빠의 허리둘레는 멈출줄 모르고 늘어만 갔다. 점점 배가 불어오자 걷기는 더 힘들어졌다. 아저씨형 비만이지. 팔다리는 가느다라면서도 배만 볼록 한 그런 유형. 아빠의 배를 두드리며 몇 개월 이에요? 하고 장난치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아빠가 지금 이자리에 안계시다는 게 너무 믿어지지 않는다. 시험일이 가까워 오면서 아빠에 대해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항상 시험이든 뭐든 뽀야가 조금 멀리 나가게 되면 아빠는 뽀야만의 기사님이 되어 주셨다. 목적지에 잘 내려주고 기다렸다가 태우고 집에 오고. 그리.. 2020. 11. 5. 43.가식걸 뽀야는 가식에 넘쳐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엄청 친절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가족들한테는 그저 가식걸일 뿐. 어쩌면 일본을 공부하는 뽀야가 그 마음속에 마치 일본인인 것 마냥 혼네랑 다테마에를 심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이런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아 채지 못했다. 나는 그냥 다른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그런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모든이에게 친절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엄마한테는 그러지 못해왔다는 게. 사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또다른 이유 중 하나가 첫째는 아빠의 치유를 바라면서 시작된 것이었고 둘째는 엄마와 나의 관계 돌아보기였다. 무엇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은 없고 뽀야랑 블로그만 남았다. 특히 아침 일찍 엄마의 성질을 살살 긁는 일에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툭 내.. 2020. 10. 26.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