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똥 안싸는 사람 있던가..?
그런데 똥싼다고 매번 보고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트림 안하고 사는 사람도 있나...?
그런데 해놓고 당황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드러운 짓은 아주 열성이라며 엄마는 뽀야에게 잔소리를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저 두가지 모두 생각하면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줌은 참으면 병되지만 똥은 참으면 약이 된다고 하던데.
안 싸고자 마음먹으면 잘 안나온다.
트림도 내가 조금 조심하는 마음 가지면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은 나오는대로 그저 드럽게 꺽꺽 대곤 했었다.
예전에 아빠가 집에서 매너없게 크게 트림하면
대번에 잔소리하는 뽀야였는데
어째서 보기 싫은 아빠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건지.
정말 유전자의 힘은 무섭다 인가..?!
사실 사회적 제약이 더 큰 듯하다.
공중장소에서의 트림은 매너없는 짓이다.
라는 규정지음에 의해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는 것.
뽀야는 매너녀가 되고 싶으므로
그 뒤로 자숙의 시간(?)을 가졌는데.
우선 꺽꺽 대는 소리를 줄이고
트림이 나올때는 입을 가린다든지.
속으로 삼키든지.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점차 좋아지는 걸 느낀다.
아직도 물을 마시면 꼭 트림이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꺼릴 수는 있다.
교양인이 되는 길은 꽤나 멀고 험하다.
자연인에 가깝게 사는 건 편하지만
문명인의 자세가 아니지.
맘대로 싸질러 댈거면은 산으로 들어가라..!(그런 말이 있지)
하지만 뽀야는 벌레를 무서워해서
문명이 깔리지 않은 곳에서 살 수가 없다.
뽀야가 즐기는 꽃나무들도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데
그런 꽃나무들도 잘 포장되고 정돈된 상태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니
굉장히 인위적인 감상이 될 수밖에 없네.
모험을 떠나면서 만났던 꽃나무들의 그런 야생의 느낌.
세상 틀에서 벗어난 빛깔과 크기.
감탄이 절로 나왔었는데.
어딘가 책에서 흠칫 본 얘기로는
똑같은 동양의 정원인데도 한국의 정원과 일본의 정원은
완전 다르다고.
자연에 손을 많이 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멋을 추구하는 한국에 비해
놀랍도록 정교하고 세밀하게 인위적으로 만든 그런 작은 모형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이라고.
조경에 있어서도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을까.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나라인데도.
가끔 이렇게 조금씩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큰 재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비교문화 연구하시는 분들이
재밌다고 그러는 것인가 보다.
똥 얘기만 하면 꺄르르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아직도 똥 얘기가 마냥 좋은 뽀야였다.
왠지 이 글 내용 갈색일 것 같다.
찝찝한 감이 있구마.(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