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페이지는 두근두근.
왼쪽 페이지에 남길이 뭔가를 마시고 있는 사진.
까만 털 니트인지 뭔가를 입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깐 눈이 까맣게 빛나고 있다.
나는 남자들이 하얀 셔츠를 속에 받쳐입는 모습이
그렇게 섹시하더라.
마치 내가 그 셔츠라도 된 양.
매끈한 뺨을 훅 눌러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그러면 마시고 있던 음료를 내뱉겠지.
사레가 들려서 켁켁 거리면서 원망스런 눈빛과
짐승같은 반사신경으로 도망치는 나를 향해
등짝 스매싱을 날리려 쫓아오겠지.
아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남길의 달리기 실력이란 살인자의 기억법(2017)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설현이 숲속에서 도망치는데 엄청 나게 빠른 속도로 이를 뒤쫒는 남길.
그 당시는 체격을 한껏 키운 상태라 더 무섭다.
게다가 남길은 경찰로 나오는데 제복차림에 또 두근두근.
영화 속에서 자주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가 안 어울리겠는가...!
그런데 가명으로 민씨가 참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중성적인 이미지를 주기 때문인가?
아내의 유혹에서 얼굴에 점 찍고 돌아온 여자 이름도 민씨였던 것 같다.
열심히 공부했던 공무원 사회 강사님 예명도 민씨이고.......
아무튼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특이한 성은 기억하고 있어서.
어렸을 때는 가명을 참 많이 썼던 것 같다.
친구들끼리 돌려 쓰는 우정 공책에 다들 그 시절부터
활발하게 가명을 쓰고 있었다.
뽀야는 양심 상 한글자만 바꿔서 사용하곤 했는데
그 이름도 참 맘에 들었었다.
근데 사실 본명이 워낙 특이하여.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공시가 잘 안풀리자 엄마는 이름을 바꿔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는데.
나는 전혀 바꾸고 싶지가 않았다.
내이름을 너무 좋아하고 아끼고 있거든.
온갖 내 물건에 이름으로 도배해 놓았는데.
바뀌면 곤란하잖아.
그러고 보니 남길도 원래부터 남길은 아니었다.
활동 초기에는 동명이인이 있어서 이미지 분산을 걱정해서인지는 몰라도
이한이라는 예명을 사용했었다고.
그 시절의 남길도 좋지만 본명으로 갈아탄 지금의 남길을
남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더 좋다.
아마 공공의 적에서 배우 설경구의 의견이었던가? 감독님의 의견이었던가.....
하여튼 본명 좋은데 본명으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이한에서 김남길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본명을 달고 더 활약하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내 이름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려진다는 건.
처음에는 공포스러울 것 같다. 이름에도 힘이 있다는데.
자신의 영혼이 이름에 조금이나마 담기게 되고 많이 불려지면 불려질수록
힘을 갖는다고 하던데.
남길이라는 이름 되게 멋지고 좋은데 어째서 예명으로 활동했을까.
어린시절 뭔가 특별해 지고 싶던, 꼬마였던 나의 심정과 비슷했을까.
오른쪽 페이지에 25라고 쓰여져 있는 걸 보니
여기까지가 25장 찍은 것인가보다.
나의 25세 시절은 어땠을까.
뭐 그 때도 공시준비 하고 있었지. 뭐.
학교를 졸업했는데.
전공분야 티오가 없는 것이다.
어찌나 당황스러웠던지.
열심히 타고 오르던 동앗줄이 썩은 동앗줄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 마냥
한동안은 멍-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무원 시험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그래서 인강이 있다는 것도 몰라서.
서점에 가서 동생과 책을 골랐었지.
독학은 어려웠다.
그러다가 인강의 존재를 알게되고 패스를 끊었지.
그리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인강을 보는데
그 때 어쩌면 나쁜 자세가 촉발된 것일지도 모른다.
턱은 나와있고 허리는 굽고.
의자 끝에 걸터앉는 나쁜 습관.
모니터로 빨려 들어갈 듯한 머리.
그때는 밥먹고 공부가 습관이었다.
휴식도 칼 같이 30분 알람으로 관리하고.
내방 문은 항상 굳게 닫혀있었지.
퀭한 눈과 꿉꿉한 방 공기가
그 시절의 꽉막힘을 나타내주곤 했지.
열심히 공부해온 전공은 인생에 1도 도움이 안되고.
나는 왜 플랜B를 준비하지 못한 걸까 자책도 많이 하고.
남길은 중국어 공부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같은 2개국어 인간으로써 사회에 그리고 각자의 삶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일본어 공부하던 시절에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 줘야지.
이렇게 하면 이해가 더 빠르겠구나.
매일 연구하고 생각하고 꿈꾸었다.
지금 다시 그 꿈을 되살리고 있는 중이다.
요즘 세상에 전공대로 사는 사람 없다고 많이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플랜A를 꼭 실현시키고 싶다.
그게 안되면 어쩔 수 없이 플랜B로 가겠지만.
플랜C도 있고 플랜D도 같이 키워가고 있는 지금.
하나에 전부를 거는 바보 같은 일은 이제 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 길에 좋아하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그 길이 남길이어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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