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런게 왜 집에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 안샀습니다.
미러볼은 아빠의 꿈이었다.
방안에 불을 끄고 미러볼을 켜면
현란한 불빛들의 장관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거지.
왜 말렸을까.
아빠의 의지대로 사서 즐기면 좋았을 것을.
요즘 그런 생각이 번뜩 든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
내 기준에서 판단하지 말고 웬만하면 다 들어드리자. 라고.
시간이 별로 없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그렇게 무한하지 않다.
물리적으로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리적 거리만 해도.
뽀야는 다행인지 뭔지 어릴때부터 독립이 늦어서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꽤나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독립한 경우라면
안부인사도 드물게 하는 그런 못난 자슥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사실 뽀야는 아빠가 하자는 대로 한 적이 별로 없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몸이 가늘고 연약했던 뽀야를 위해
수많은 운동과 등산을 권유했음에도
잘 따르지 않았고 하더라도 너무 꾸역꾸역 하는 티가 났다.
지금이야 운동 중요한 거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당시에는 왠지 싫었다.
자꾸 동네 뒷산으로 데려가서 줄넘기 시키는 거.
동네 공터에 나가서 배드민턴 치는 거.
휴일이면 근처 산에 오르는 거.
동네 한바퀴 돌면서 운동기구 같이 하는 거.
수많은 일들이 그저 짐 같았고 너무 하기 싫고 귀찮았다.
그렇게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살았으니
사랑을 나눌 수가 있을리 만무하다.
아빠는 왜 나만 괴롭힐까.
왜 나를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까.
혼자 일기장에 데스노트를 적기도 하고(뭐라?!)
그런 철없던 시절 속에 살았던 뽀야로 기억하고 계실텐데.
뽀야가 운동 챙겨 하게 된 것은 1년도 안되었다.
아빠는 뽀야가 덜 된 모습만 보고 떠나셨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
또 아빠의 사적 물건들을 많이 뺐었다(?)
아빠가 차에서 듣는다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왔을 때도.
와 요거 신문명이라며 신나하는 아빠한테 헀던 말은
[그거 나 줘요.]
아빠는 장난을 막 부리다가 되게 억울한 얼굴로 내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건네 주게 되었지.
아빠는 사서 1~2번 써봤을까?!
그 후에도 다시 돌려달라며 애원했지만(!)
그런 아빠의 부탁을 뽀야는 매몰차게 거절했었지.
그나마 음악 듣는 게 아빠의 큰 기쁨이었는데 말이지.
그러던 아빠가 어느날 수줍게 말 꺼낸 것이
미러볼이었다.
집에 갖고와서 틀어놓고 즐기자는 순수한(?)의도로.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미러볼 켜놓고 가면쓰고 망토두르고 장난장난.
게다가 불루투스 마이크도 사놨으니
그저 다 내려놓고 즐기면 되는 거였는데.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데.
뽀야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 쓸데없는데 돈쓰지 마요.]
[가성비가 별론데.]
아빠는 또 쭈굴쭈굴 구겨져서 방으로 힘없이 들어가곤 했었다.
아빠가 인터넷 쇼핑을 잘 할 줄 몰라서
뽀야에게 부탁하곤 했었는데
뽀야가 거절해 버리면 아빠는 살 방도가 없게 되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뽀야는 뽀야가 갖고 싶은 거 말하면 척척 사주시는 부모님이 있는데
아빠는 젊은 딸내미가 있어도
먼저 알아채고 척척 사주지는 못할망정
비싸네, 쓸데없네 비난이나 하고 말이지.
후회해도 쓸모없다.
지금 미러볼을 들고 신나할 아빠가
이 세상에 안계시니까.
뽀야는 가장 먼저 미러볼을 사고 말거야 하고 다짐했다.
이것도 며칠전에 우연히 떠오른 것으로
아빠가 미러볼을 갖고 싶어했었다는 사실조차
먼 기억 같이 느껴진다.
지금 내가 미러볼 100개를 틀어놓고 흥에 겨워한다해도
박수쳐줄 아빠는 내 곁에 안계신다.
그렇다면 엄마와 동생이라도 즐겁게 해주자.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맨날 뽀야는 뭐 살생각만 한다고 엄마가 잔소리를 넣지만
그래도 꼭 사고 싶은게 미러볼이다.
그걸 틀어놓으면
아빠가 곁에 와서 [뽀야, 거봐~ 사길 잘했지?] 하고
아빠가 웃으실 것만 같다.
오늘도 다짐하나
[있을 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