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어놓기 선수이다.
엄마가 가는 자리에는 하여튼 뭔가가 수북이 쌓여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우리 꽃친구들 상태좀 살펴보려고
거실에 나왔는데
레이더에 수상한 광경이 잡힌다.
바로 책장에 고이 모셔둔 우끼끼(원숭이 인형)의 한 쪽 팔에
이어폰이 감겨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기에 이렇게 늘어놓으시면 안돼요~
다음날 고무줄이며 온갖 끈, 걸어둘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끼끼 팔에 달려있을까봐 무섭다.
우끼끼의 팔을 걱정한다기 보다는
늘어놓기 대장인 엄마가 조금 걱정된다.
사실 늘어놓기는 무섭다.
엄마가 물건을 늘어놓는 대상이 되는 물건은 꼭 버려졌기 때문.
아니면 인테리어라는 명목으로 재배치 되거나 해서
뽀야가 가슴아파한 적이 많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면
아빠의 장수돌침대 팔걸이에 옷이 수북이 쌓여 가고.
안방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거실로 나와 화장하게 되면
어디서 나타난 땡땡이 무늬 상자에 온갖 화장 도구가 즐비하다.
엄마가 자는 침대 텐트에는 뭐가 많이 걸려있다.
여분의 빨래 집게도 걸려있고 안고자는 베개도 2개나 있고
돌돌 뭉쳐진 이불은 여기저기.
무릎담요가 있다면 그것도 역시 거실에 여기저기.
사실 엄마는 정리로봇이라고 부를 정도로 정리에 빠삭하다.
엄마가 내 방에 왔다가면 유지가 안되서 그렇지
방이 순간 엄청 정돈되곤 하는데
가끔 엄마는 자신의 서식지를 어지르는 그런 경향을 보인다.
미리 대비하는 성격 때문에 그런 거라고 뽀야는 생각한다.
이건 내일 입을 거니까 미리 꺼내놓자.
이 옷은 찾기가 힘드니까 꺼내놓자.
요건 저녁에 갈아입을거니까 꺼내놓자.
꺼내놓고, 또 꺼내놓고......
그러다 보니 흔적을 남기게 되는 거다.
일단 뭔가를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치워버려야 한다.
엄마가 자꾸 겉옷을 작은 소파에 널어놓자
뽀야는 해바라기 볕 쫴야 한다며 옷을 치워버렸지.
이따가 신을 양말이라며 의자에 널어놓은 양말이 너무 거슬리지만
뽀야도 그다지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치우는 게 귀찮아 진다.
버리는 연습이 참 중요하다고 한다.
신박한 정리(2020)에서 많이 배웠는데.
그러고 보니 뽀야도 많이 비워내서
편하게 지내는 중인데
엄마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 막상 입을 만한 게 없어.]
어제도 홈쇼핑으로 어떤 니트같은 셔츠를 사왔는데
뽀야가 보기에는 썩 자주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리를 하는데 있어서는 있는 것 처분도 중요하지만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도 중요한 듯 싶다.
엄마가 최신 유행 패션 잡지나
패션 프로그램 이런거 잘 안 보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트렌드라는 걸 좀 보셔야 하는 게 아닐까.
아마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할거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좀 젊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뽀야가 따라다니면서 옷을 함께 봐주고 그러면 되지 않는가?
싶겠는데 요즘처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한 사람의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 어렵고
곁에서 추임새를 아무리 넣는다고 해도
본인 취향이 확고해서 귀에 들어가 박히지도 않는다.
좀 세련되게?
세련되다는 게 뭘까?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는데
옷을 입었는데 너무 별로이면 어떡해......
옷이 엄마랑 안어울리고 자주 입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내가 더 서글퍼지는 이상한 소비였다.
엄마는 회사에 아는 언니가 옷 몇 개 사는 김에 옆에서
보고 좋아보여서 샀다고 했다.
절대 친구따라 강남가면 안되는데.
나 혼자 고민하고 사도 맞을까 말까인데
남의 말 흘려듣고 보고 사다니
정말 믿을 수 없었지만
요즘 엄마들이 다들 그렇다.
그저 영혼없이 좋다고 써져있는 몇 줄을
같이 몇 년 산 딸래미보다 선호하고
이상하게 집착하게되고 그런 것이다.
언젠가부터 뽀야의 한마디는 그 가치를 잃기 시작했다.
엄마의 어떤 결정에 있어서 아무런 조언의 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실없는 말만 내뱉는 뽀야에게도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덥지 않은 딸이라도
저마다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그 세계에 엄마를 초대해서 같이 누리고 싶은데
상황적 여유가 정말 안된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고 싶었는데.
선택권이 너무 많은 요즘 세상에서 갈곳을 잃고
헤매는 엄마의 손가락을
더 좋은 방향으로
안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코로나 19 때문에 백화점 아이쇼핑 가기도 좀 그렇고
애초에 엄마는 옷가게 구경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뭐든지 해봐야 느는 법이다.
어쩔 수 없다.
뽀야가 나서는 수밖에.
자주 전시된 의상들을 보여주고
좋은 잡지 같이 보고
그러다 보면 패션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일단 늘어놓는 습관 좀.
누구에게나 있는 이 습관은
자기가 통제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해 버려서
가용공간이 줄어드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치우고 또 정리하고
그러는 수밖에 없지 뭐......
뽀야도 으쌰으쌰 정리좀 하고 살아야지 이것 참......
예쁨이 잠재된 내 방을 창고방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하나씩 세탁기에 넣고 정리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