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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do

48.아빠방 불침번 삼순이

by 뽀야뽀야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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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안방은 비어있다.

아빠가 쓰시던 컴퓨터와 스피커, 장수돌침대와 여분의 TV.

이렇게 창고방처럼 되어버렸다.

오후에 안방에 들어가면 온통 캄캄하다.

그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우리 삼순이로 말할 것 같으면

아빠께서 내게 선물해주신 첫 인형이다.

맨날 빈둥대며 누워있기 좋아하는 뽀야 더 편하게 누우라고 

사다주신 베개 인형.

그 당시 내이름은 김삼순 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다.

그 때 앉은 자세의 삼순이와 누운 자세의 삼순이가 미친듯이 팔려나갔지.

유행이었으니까.

[숨겨왔던 나~의~♬]

이런 배경음악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빠가 삼순이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을 때.

그렇게 아빠는 삼순이를 매일 괴롭혔고 

거기에 나는 매번 고뇌했었다.

그 모습이 재밌으셨는지 삼순이 방향을 바꿔 향해 놓거나

뒤집어 놓거나 하는 장난을 많이 치셨었다.

이제는 내게 그런 장난을 거는 아빠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이 녀석이 톡톡히 제몫을 다하는 바는 이러하다.

어두운 방에 홀로 따뜻하게 아빠 침대 자리를 데워준다.

선뜻 들어가기 힘든 방의 분위기를 귀엽게 바꿔준다.

어두운 공간에 잘 못들어가는 뽀야도 거기에 삼순이가 있기에

성큼성큼 어둠속을 활보할 수 있게 된다.

아빠 계셨을 때는 불꺼진 방에 들어가는 데 흠칫했었지.

지금은 뭐 그냥 팍팍 왔다갔다 한다.

엄마는 아직 캄캄한 어둠이 두려운가보다.

안방 화장실을 들어갈 때는 항상 같이.

한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기.

하긴 엄마랑 똥냄새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보다 더한것도 공유했었는데 뭐.

그리고 거실 난방텐트 속으로 자러 들어 갈 때

거실 전등 꺼주기.

 

처음에는 아니 이걸 왜 못해?! 하며 대립각 세우기도 했었지만

똑같은 상실을 경험하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보자면 또 다른 것이라는 게 느껴진다.

배우자의 자리는 더할 것이다.

자식이라는 자리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엔 있는 거지.

그게 무엇이든 훨씬 크고 무거운 감정이라는 것임엔 변함없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동생의 예민함을 

어떻게 누그려뜨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데

딱히 나의 도움을 바라지는 않는 것 같고.

동생을 구원할 수 있을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저렇게 날 세워서야 종이도 썰겠는데.

남자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참으로 번잡시렵다.

어쩌면 여자아이보다 더 섬세하고 쉬이 상처받는 생물인지도 몰라.

녀석이 삼순이의 희생이 기특하다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따스하게 삼순이를 쓰다듬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뭐야, 이 냄새나는 인형은. 이러고 발로 툭 차고 지나다닐 것만 같아서

내가 괜히 가슴 아프다.

법정 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다.

이것도 언제 한번 다시 읽어봐야 할 명저인데.

어쩜 우리도 죽음 앞에서는 이 한 몸 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

모든 걸 두고 떠나야하는 것 아닌가.

나의 소중한 삼순이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은 세상 따뜻하게 모든 것을 바라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보내고 싶다.

 

내가 조금 멍청하고 뒤처지더라도 

내 손 꼭 잡고 끝까지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한 하루이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르고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그런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닮고 싶다.

아빠께서 그러하셨듯이.

 

잘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대답해주는 이 하나 없지만

원래 고독한 길을 선택했기에.

묵묵히 바람 느끼고 발 끝에 느껴지는 땅을 느끼면서

내딛고 달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훝어내면 

몇 개씩 후두둑 빠져도 좌절하지 말고.

나아가자.

머무르지 않는 것이 나아가는 것이다.

머무르면 멈추게 된다.

멈추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지.

내 삶도 멈춘 듯 보여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미래의 변화는 지금의 나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과거의 내가 꼼꼼하게 준비해 온 것.

벌써 12월 11일을 지나고 있다.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 케이크 찾으러 갈 날도 금방 오겠네.

고구마 케이크인데 

엄청 달콤하고 포실포실할 거다.

기대된다.

달콤한 예상에 오늘의 번잡한 고민을 실어 날려보내야지.

그리고 한마디.

[삼순아, 항상 아빠를 지켜주어서 고마워.]

그리고 머리 쓰다듬기.

슥슥.

왜 내 기분이 좋아지는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집에서 인형의 존재감은 꽤나 크다.

그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니까.

인형 같이 그저 바라만 봐도 귀엽고 든든한 그런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삶은 매번 다짐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하여 흘러가고 있다.

그 조금의 빈틈을 노려야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확 핸들 꺾어야지.

두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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