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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do

52.아빠의 수저

by 뽀야뽀야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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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때나 볼 수 있는 물건

 

그렇게 되어버렸다.

한 때 항상 수저통에 꽂혀있던 아빠의 수저는.

이제 그 주인을 잃고 서랍장 깊은 곳에 

새하얗게 내려앉는 먼지들과 사투하며 정갈하게 놓여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빠의 부재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참 얄궂다.

아빠를 잃었다는 걸 잊고 살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서.

이런 저런 이유로 피하고만 있었는데.

 

어제는 문득 엄마의 빨간 수저를 보면서.

아빠의 파란 수저가 딱 떠오른 것이다.

둘은 세트였다.

그런 거 하나하나가 아직도 가슴 한쪽을 콕콕 쑤실 만큼.

단련이 덜 되었나 보다.

 

호탕하신 분이었다.

목소리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나? 싶을 정도로 크고 또렷했다.

평소에 대화를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어 저사람들 싸우나?! 싶을 정도로 공격적인 말투.

그것도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많이 누그러져서.

오히려 이빨빠진 호랑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안쓰겁기도 했다.

[만약] 이라는 건 우리 삶에 실제 거의 드물게 일어나는 가정이지만.

만약 아빠께서 지금 내 곁에 계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TV를 보며 실없는 얘기도 나누고.

매 끼니마다 식후땡으로 과일을 꼭 먹어줘야 하는 그런 생활패턴에도 

더 익숙해질 텐데.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일이 더 많아지긴 할 거다.

하지만, 그걸 다 감안하고서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어쩐지, 엄마가 사주를 보러 가면.

남편 복이 없다고 그렇게 말씀을 많이들 하시곤 했는데.

예전에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영험하지 못한 결과라고. 그렇게 치부해 버리고 잊어버렸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그 말이 아빠가 우리 곁을 일찍 떠날 수도 있다는 그런 소리였던 거다.

그런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잘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T.T)

말로는 아빠 사랑한다고 어쩐다고 해도.

실제 생활 속에서 아빠가 그걸 체감하실 일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아빠는 뽀야가 부모한테 고마워할 줄 모르는 아이라며,

건방지고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게 아닌데.......

참, 부모님께 감사를 표하며 산다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작 처음만나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과장하면서.

그렇게 가면을 쓰던 뽀야는 지금 무얼 위해 살고 있는 건지..?!

가족의 소중함을 잘 몰랐던 과거에는.

그저 무거운 짐 같았다.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답답하고 무겁게 내 등과 목을 짓누르는 그런 거.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삶의 무게조차 짊어지려 하지 않았던.

미숙한 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나 스스로가 얄밉고, 못된 애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빠 수저가 밥상에 똑바로 놓일 일은 없는 것이다.

수저는 주로 세워지는 형태로 제사상에서만 보게 되겠네.

우리가 슬픔을 곱게 개켜내어 가슴 속에 넣어두는 것처럼.

수저도 고이 서랍에 넣어진 채로. 잊혀져 가겠지.

 

오늘로 아빠 소천 하신 지 386일째이다.

벌써 일 년이라는 말은 너무 안타까워.

시간는 눈부시게 빠르게 흘러만 간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때로는 아빠를 떠올리는 것이 버겁다.

자꾸 해묵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나를 위치시키는 것도

자해와 같은 짓인 것 같다.

그냥 밝게 웃어주시던 모습, 환한 미소.

짓궂던 장난, 어이없이 우기는 아이같던 모습.

그렇게만 기억하고 싶다.

 

고통스럽던 순간의 기억은 다 지워버리고 싶은데.

[아빠...!]하고 내뱉으면 그런 기억이 수면위로 속속 떠오르고.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의 아빠 모습이.

이대로 잊혀지면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자기 주장 강하게 하며 비죽이는 것이다.

 

안 듣던 발라드를 듣게 되었다.

원래 이런 감성적이고 슬픈노래는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주로 부수고, 쿵쿵거리고, 깨발랄한.

그런 희망찬(?)음악을 자주 듣곤 했는데.

저런 감정 카테고리 하나쯤 키워도 괜찮을 것 같다.

언제까지 모른 체 하고 살 수는 없는 감정이니까.

맞닥뜨리고 거기서 부서지고 아파하는 것도 

내 삶에 예정 되어있는 과업이다.

싫고 버겁다고 피해 버리기만 하면 안된다는 걸.

이미 독하게 진하게 배워 버렸잖아.

 

아빠께서는 수저가 맘에 안든다고 하셨었다.

너무 평평하다며, 밥알을 다 흘리게 된다며.

그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우리는 수저를 바꿔드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게 아빠의 마지막 수저가 되었지만.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방법.

같은 거 누가 차근차근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 해 주었으면 좋겠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다들 말하지만.

그러고 살기에는 놓치게 되는 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시켜야하는 게 아닐까.

지금 당신 곁에 부모님께서 온전히 계시다면.

그것은 크나큰 축복이니.

앞으로도 귀찮다고 여기지 말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덜덜 말고.

그저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꼭 안아드릴 수 있는 

그런 배포 넓은 자녀가 되기위해 발버둥 쳐 보시길.

 

자꾸 아빠 생각에 몰입하면 까먹게 되는 게 엄마의 존재이다.

엄마는 아빠 가신 뒤로 눈물이 정말 많아졌다.

동생과 내가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날카롭게 대응하다 보면.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그러면 화를 꾹 눌러 참고, 아무렇지 않은 양. 

그런데 너무 눈물의 역치가 낮아진 게 아닐까.

어쩌면 남들 다 잠이 든 야심한시각까지

상념에 잠겨 눈물짓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자주 마트며 공원이며 산책하면서.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고자 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래도 일 안하는 자녀가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순간의 사치라며.

그렇게 응원해주시는 엄마가 곁에 있기에.

나는 그동안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삶을 살아 올 수 있었던 거다.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기존 원칙이나 쓸데없는 격식 보다도 더.

그럴 수 없었던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그렇다 쳐도.

지금부터의 나는 달라져야만 한다.

가슴이 묵직하다.

주말은 상큼하고 발랄하게 쉬는 날이어야 하는데.

어제 이후로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더욱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이념의 대립이라는 거시적 관점보다도.

우리 가족이 소중하다는 미시적 관점을 더 갖추길 바랐는데.

너무 사회현상에 몰입되어서 자아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 듯 보이는.

조금의 꼬투리만 있으면 그걸 문제상황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성격에 괴롭다.

그렇게 하나하나 분해하고 나면 뭐가 남는데.....?!

결국 네가 바보 멍청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겠나.

 

 

아빠,

부디 이 위기를 부드럽게 헤쳐 나갈 수 있게.

지혜를 제게 주세요.

아빠 수저 말끔하게 닦아놓고 기다릴 테니까.

제 앞에 펼쳐진 길 좀 깨끗하게 닦아놓아 주세요.

 

편협된 자만과 황금 만능주의에 절어버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염세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세상의 밝은 면도 볼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모든 걸 곁에서 항상 영감처럼 불어넣어주셨던.

아빠의 존재가 없으니까 너무 허전해요.

그립고 그리운 이름.

부르다가 눈물 톡톡 쏟아낼 것 같이 아픈 이름.

우리 아빠...................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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