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생크림 케이크였다면 먹지 않았을 거야.
크림만 잔뜩이고 먹고나면 더부룩 하기 때문이지.
이번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기대를 듬뿍 담아 예약.
상자가 꽤나 높아서 케이크를 많이 기대했는데,
크기는 이전과 다를 바 없네.
작아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뭐.
케이크만 먹게 될 줄 알고 연유브레드랑 샌드위치도 사왔는데
엄마가 퇴근하고 나서 치킨을 시켜먹자는 말에
너도 나도 덩실덩실.
그리하여 바로 개봉하지 않고 조금은 자리에서 밀려난 케이크였다.
언제부턴가 동생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무 일 없어도 문득 케이크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면
주문해서까지 먹어 내고야 말았던 사람이다.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 가져다주는 건 뭘까.
포만감은 아니고 안락함.
우리가 이렇게 꽤나 괜찮게 지내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게 아닐까.
아빠가 계셨으면 분명히 초 세우고 폭죽도 터뜨렸을 것이 분명.
허나 우리는 조촐하게 케이크를 소분하여 접시에 담고
조용히 먹기 시작했다.
공원이 고팠다. 마음껏 달리고 싶어서.
그랬는데 근처에 공원이 조성된단다.
지금은 임시개방 중이고 내일 쯤 한번 가보려고 한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서.
기왕이면 산책하고 근처의 중화요리 가게에서 탕수육도 먹고
그러면 좋을텐데 코로나19의 위세가 등등하여.
배달 없이 홀 주문 만으로도 북적이는 곳이라 조심스럽다.
맛이 끝내주기에. 짜장에 얹어주는 무싹이 귀여워서.
그런 사소한 이유로 그 가게를 다시 찾게 되곤 한다.
단무지가 흐늘흐늘 얇은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예전에 살던 동네는 입구가 오르막 길이라 동네만 한바퀴 돌아도
운동이 되었다.
근처에는 큰 공원이 있는데도 활용을 못했다.
그 때는 학생이라 학교-집 도돌이표여서 내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야간 자율 학습을 하기도 했고.
우리가 살아가며 숨돌릴 시간 조차 없이 일상에 파묻힌다는 게
어떤 건지. 그 후로 많이 느꼈다.
큰 도서관도 공원을 끼고 자리잡고 있었고.
도서관은 자주 갔었다. 지역 인프라를 이런 때 활용해야지, 하며.
도서관도 공원도 학교도 사치였나보다.
하나같이 머무를 무렵에는 소중함을 잘 몰랐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지.
지금 모든 것들이 곁에 없고 애써 그 곳으로 향하려는 마음 없이는
가기가 여의치 않다.
그런데 동네에 공원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네.
완전 개방은 아니더라도 발 닿는 대로 꽤 오래 걸을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것에 기쁘다.
요새 걷기 운동을 소홀히 하여(=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으므로)
매일 걸음 수가 3700대에 머물러 있다.
내일은 적어도 6000까지는 끌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단발성의 자발적 걷기를 예상하는데.
날이 춥고 코로나19가 심하여 도무지 나갈 수가 없으니.
다행히도 사람들이 공원 소식을 잘 모르는 듯
바쁘게만 살고 있어서 붐비지는 않을 듯 하다.
게다가 장소가 꽤나 넓으니까 행여 사람 좀 있더라도
피하면 되니까.
크리스마스를 낀 주말이라 붐비려나?
요새 그 쪽으로는 향해본 적이 없어서 가늠이 안된다.
인간은 중력에 저항하는 형태로 곧추서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
매일 눕기만을 바라는 내 삶에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순간을 함께 할 소중한 가족과 공원이 곁에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공원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답고 발 벗고 걷자면 더 행복하다.
자전거를 끌고와서 한바퀴 돌아도 재미있다.
목뒤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이 반갑다.
과열되어버린 우리 삶에 녹색 쉼표가 필요하다.
우리 몸을 쉬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원한 공기 폐에 들이 부으며 빛나는 햇살아래
뚜벅뚜벅 정처없이 걷기는 행복 그 자체이다.
나에게 행복을 선물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크 언박싱도 재미있고 좋았다.
박스가 내용물보다 커서 실망감은 좀 들었어도
이런 이벤트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강력 추천이다.
우리집에는 어른아이가 둘이나 살고 있기 때문에.
아빠 계실 때 떡케이크 한번 해드렸으면 좋아하셨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사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되는 일들 뿐.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우린 단절되어 있다.
케이크를 먹으며 아빠가 억지로 허공에 뿌리던 폭죽이
너무나 그리워서. 그리고 케이크가 너무 달콤해서
눈물이 살짝 날뻔 했다.
우리의 고요한 일상이 멀리서 보면 한폭의 그림 같기를.
수채화에서 유화로 바뀌어 가는 진한 인상의 일상이 되기를.
우리의 소망을 담아 우걱우걱 잘도 먹어 치웠다.
결국 남겨진 샌드위치는 아침식사로 해결.
이제 빵과 당분간 바이바이.
그나저나 바나나 파운드가 2개 남았던데.
아직 1개도 먹지 못하였는데 이게 무슨 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