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이나요

고목과 나

by 뽀야뽀야 2020. 8. 20.
반응형

고목은 잎사귀가 통통하고 질겨서

쉽게 만질 수 있다.

수건으로 슥슥 닦아주면

하얗게 달라붙어 있던 먼지들이 닦여 나간다.

그렇게 몇 분을 씨름하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느낌이 든다.

 

마음정화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어떤 이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다른 사람은 단조로운 운동에 몰두하며

뽀야는 고목 잎사귀를 닦는다.

물론 먼지떨이개를 들고 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쌓인 먼지 터는 것도 좋은 방법.

 

오늘이 가장 더운 날이라고 하더라.

더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을 때

그럴 때 가만히 식물과 대화를 해 보자.

내가 내뱉는 무수한 말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되돌아 올 때

왠지 모르게 평온하고 차분해 질 것이다.

어쩌면 뽀야가 쫑알쫑알 말이 많은 것은

응대해주는 사람들이 뽀야의 말을 다 흡수해 버려서

갈 곳을 잃은 뽀야의 입술이 끊임없이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요전에는 핸드폰 컬러링 앱을 많이 이용했었다.

이런 저런 곰돌이 캐릭터를 색칠하고 있자면

머릿속에는 무슨 색으로 할까?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고 

한결 머릿속이 가벼워 진다.

 

복잡한 요즘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자칫 방심하면 빈둥대기가 되버리고

너무 몰두하면 의미없는 데 시간낭비가 돼버린다.

그 사이를 적당히 줄타기 해야 

마음정화가 된다.

 

마음 조정이 잘 안되면 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운동하기.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볕이 쨍쨍한 오후 12시~1시는 피하고

적당히 생존 가능한 시간대를 찾아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그리고 나서 씻으면

그거야말로 이너 피스.

개운해질 거다.

 

고목 가지치기가 세상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뽀야는

무성하게 자란 뭉텅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더 괴롭지 않을까.

우리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이유와 마찬가지 아닐까.

덥수룩 하게 자란 머리카락은 보기에도 흉하고

관리하기도 힘들 듯이

고목도 아프지만 가지치기를 해줘야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자라게 되니까.

 

한 때는 고목나무라 불렸던 우리집 터줏대감 고목.

그러고 보니 잘못된 우리 말이 굉장히 많네.

"역전 앞에서 만나~"

부터 시작해서 

"쓰메키리 갖고와~"

"다꽝이 최고지~"

"이자리를 빌어~"

"비니루 다 떨어졌다~"

"펭끼 칠해야지~"

대부분 일본어를 사용한 표현으로 우리말로 순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런 말에 당황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르신들은 한 때 일본어로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어를 써야만 했다.

그런 잔재들이 입에 붙어버린 것.

일상생활을 불문하고 

TV,신문기사, 책, 연설 등등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거슬리는 표현들.

당황하면 저런 표현이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 같다.

어려운 자리일수록 또 저런 표현들이 술술.

형식적으로 말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 때는 또 의식적으로 고치는데 말이지.

 

티스토리에도 맞춤법 검사가 있긴 하지만

그런게 없었던 시절에는 갑갑한 문장이 참 많았었다.

뽀야도 조심하려고 애쓰지만

이미 문화 속에 녹아버린 언어는 어찌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덜 사용하고 고쳐나가는 방법을 통해

깊이 스며든 언어와 문화를 분리할 수 있게 될뿐.

 

그러고 보니 띄어쓰기도 심각한데.

띄어쓰기의 소중함은 일어 문장을 볼 때마다 느낀다.

와~ 눈이 겁나게 피곤해!

그나마 요즘 책들은 가로쓰기로 되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일본 서적 중에 문고판은 소형이라 그런가 여백을 아끼려고 그런가

일본 특유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그런가 몰라도

세로쓰기로 되어있는 책이 많아서 고통스럽다.

우리 눈은 가로로 되어있는데 그것을 역행하면서까지 읽어야 하는

세로쓰기는 고개를 계속 끄덕이게 되니까 피곤하다.

 

뽀야의 의식의 흐름은 정말 놀랍다.

고목의 마음정화에 대해서 쓰다가 

어느새 언어와 맞춤법까지.

 

주절주절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과

너무 더워서 할 일을 내려놓고

블로그를 기웃거린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이 쉬어감의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다.

비워내야 채울 수 있고 

쉬어야 더 나아갈 수 있는 법.

숨고르기를 하는 뽀야를 

지켜보고 계실 아빠생각 한 모금 더.

 

언어에 문화가, 문화에 언어가 녹아있듯이

뽀야 삶에도 아빠가 녹아있었으면 한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한다는 느낌은 든든하다.

형체가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마음 한 번 닦고 간다.

내일도, 모레도 언제든지 나를 기다리는 

고목을 위해.

또 고목을 사랑하는 나를 위해.

잎사귀를 닦는 건지 내 마음을 닦는 건지.

무아지경에 빠져보자.

공부만 몰입이 아니지.

우리 삶에서 몰입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수박 겉핥기 마냥 

알맹이는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달콤한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천박하지 않은가?

참 얕다는 소리다.

 

많이 봐왔다.

지름길을 택하는 사람들을.

뽀야는 그러기 보다는 오솔길을 걸으며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고 

거기에 숨겨져있을 보물찾기를 하면서

천천히 걷고 싶다.

 

 

반응형

'보이나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희원 배우 닮은 붕어싸만코  (2) 2020.08.30
말을 삼키는 연습  (0) 2020.08.22
어쩌면 전생에 모기  (0) 2020.08.19
벚꽃의 무게  (0) 2020.08.16
나노블럭  (0)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