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서 잘 바꾸지 않는 고무장갑.
하지만 이 사진 속 장갑은 새것이다.
기존에 쓰던 분홍분홍 하던 고무장갑의 손가락 사이에
실금이 갔다.
설거지 하는 중에 자꾸 물이 새어 들어와서
손이 금방 축축해지는 것이다.
진짜 실금인데.
1mm도 안되보이는 그 실금 때문에
멀쩡한 많은 부분을 놔두고 버리게 되었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이런 실금같은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은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틈이 생기고
틈이 점점 벌어지면서 소통이 안되게 되고
질투와 시기라는 이름의 그 틈이 결국 조직을 와해시켜 버린다.
내가 참여 했던 많은 모임이 그런 식이었다.
처음엔 괜찮아.
그런데 갈수록 별로야.
결국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떠날 준비를 매번 하고 있는 뽀야.
항상 옆에 짐을 싸두고 있다.
행장을 풀만한 그런 완벽한 집단에 속해본적이 없어서 외로운 사람.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마음이 완벽하게 어딘가에 정착하기에는
지금은 너무 늦었고
다들 낯선 이들이고
관계를 이어나가기에는 들어가는 노력이 너무 크달까.
지쳐있는 상태고.
그냥 현상유지만 되었으면 좋겠거니 하고
매일 똑같은 사람 만나고 얘기하고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이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 것이다.
뽀야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잘 해내는 편이지만
사실 그 혼자는 진정한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이 곁에 있어주었으니까.
완전한 독립.
뽀야가 이룰 수 있을까.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
아니 혼자 설 수 는 있는걸까.
연습만 몇 년인데.
연습생이라고 치면 벌써 데뷔했었어야 하는 건데.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곁에서 가족이 든든하게 지켜주었기에
세상의 때 많이 묻히지 않고
비교적 깔끔하게 깨끗하게 살아왔다.
뽀야 손은 정말 고생 모르는 손 같다.
주름도 별로 없고 하얗고 가느다래서
꽉 쥐면 부서질 것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그런 손으로 가끔 실체가 없는 우주를 만지고
또 가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이런 저런 이름의 가상 인물이 되어
가짜의 삶도 살아보고
당신이 알 수 없는 복잡한 세계의 일원이 되어
나름의 꿈과 희망을 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뽀야 손이 다치지 않게
도와준 것이 고무장갑이었다.
게다가 양면 다른 색으로 되어있어서 좋다.
입구가 말리지 않게 살짝 접혀있는 것도
세심하게 기술 넣은 거 같아서 만족.
원래 새 물건 별로 안좋아하는 뽀야지만
이 고무장갑의 기술력에는 감탄이.
사물에 너무 정주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절약과 감정이입은 다른 거라고 우기면서.
모든 게 하나이고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 뽀야는 팔찌 하나 잃어버리고 3일을 앓아 누웠었는데
회사 화장실에서 팔찌를 발견하게 되고 나서는
팔찌고 뭐고 진절머리가 나서 착용을 중단해 버렸다.
없어질거면 아예 없는 게 나아. 하면서.
사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면 아픔도 없었을 것이다.
있다가 없으니까 진짜 마음 아픈거지.
모든것이 집착이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굴레임을
알면서도 매번 사로잡히는 뽀야는 멍청이인가?
새 고무장갑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뽀야는
설거지 거리가 불어 터져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로
그렇게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하면서 남은 설거지를 끝내는 것이다.
카레거리나 사러 가볼까?
거절 당할 확률 85%.
뽀야를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요.
동네 산책 쯤은 혼자 하게 냅두세요.
마트 심부름도 자주자주 시키세요.
아. 물론 귀찮을 때는 제외.(뭐시여?!)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는지 쓰면서 잊어버렸다.
에이, 뭐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나보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