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이 눈을 게슴츠레 뜨면 생기는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퇴폐미이다.
때로는 짙은 메이크업으로 인해 더 돋보이곤 한다.
눈이 길쭉하고 끝이 살짝 처져서 귀여운 인상인가 싶다가도.
진지하기 시작하면 또 묘한 표정이 된다.
약간 치명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주로 처연한 주인공일 때가 그렇다.
드라마 열혈사제(2019)가 그러했다.
이영준 신부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 여기저기 휩쓸고 다니는
그 때.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혼자 헤처나가려 애쓰던 때.
방에서 혼자 자작하며 조성하던 애잔한 분위기.
그 속에서 퇴폐미를 느꼈다면 나는 변태인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텅 비어버린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건 기댈 수 있는 연인도 아니고.
오직 신부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계획과 분노.
수많은 액션신에서도 빛났던 눈동자.
그 초연한 눈빛이 퇴폐적이었다.
드라마 속에서는 상황이 재밌고 가볍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그의 연기가 묵직했기에 균형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너무 장난스럽기만 한 드라마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제로서 서품받을 때 몇몇 장면이 방송되었고.
그걸 보면서 나는 눈물 흘리는 해일에게 연민과 감동을 느꼈었다.
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을 먼저 거두어 가는지.
또다른 쓰임이 있어서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남은자들은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파헤쳐야만 한다.
그 거대한 미로속에서 뚝심을 잃지 않고.
좌절하면 또 일어서고.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런 유연하게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김해일 신부였다.
그의 불운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일단은 그런 상황이 퇴폐미를 만들어 낸다.
자신을 놓아버리고 알 수 없는 영혼이 들어와서 몽롱한 눈빛.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입이 살짝 벌어질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어디서 그런 표정을 배워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거울 보고 여러번 연습하겠지.
남길의 화보나 잡지 사진을 지켜보면.
귀여울 때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표정일 때
퇴폐미가 빛난다.
퇴폐 대장에 남길의 절친인 배우 주지훈도 있지만.
그러고 보니 나쁜남자에서 만났던 배우 김재욱도 한 퇴폐미 하지.
트위터에서는 이 퇴폐 3대장을 두고 왜 같이 작품 만들지 않느냐는
불만성 글이 올라오기도 했었는데.
그걸 보고 진짜 엄청 공감했었다.
치명미 넘치고 차가우며 잔인한 역할.
그걸 꿈꿨었는데.
새로 시작할 드라마 아일랜드가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셔츠 앞섶은 꼭 풀어헤쳐 주시길......(머엉)
또 하나의 치명적 필모가 추가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밖에도 예민미 돋는 캐릭을 연기할 영화 야행도 기대가 되고 말이다.
어떤 작품이든 퇴폐적 남길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남길은 그저 밝기만 한 캐릭터 보다는 마음에 그늘이 있는 그런 캐릭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니 나오는 작품마다 다 죽고 말지.......(흐엉)
신박하게도 끊임없이 죽는 작품도 있었다.
바로 드라마 명불허전(2017)인데. 그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임이도 조선 복장을 하고 개울가에 앉아있을 때 그 장면은.
꽤나 퇴폐적이었다.
홀딱 젖어가지고 멍한 눈에 세상 잃은 표정을 연기했었잖아.
이곳은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그 장면이 참 재밌기도 했지만.
퇴폐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눈 게슴츠레하게 뜨면 다 퇴폐적이 될 정도로.
남길의 눈빛이 열일 한다.
그러고 보니 퇴폐 대장 캐릭터는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비담이었네.
마지막 죽는 장면도 퇴폐적이었다.
덕만까지의 발걸음 수를 세며 죽어가는 그 모습이 처량하고 슬프고.
모진 운명에 아파하고 다 했었는데.
그 사람이 봉탁이랑 같은 인물이 맞나요? 라고 물으면 답하기가 곤란해지기도 할 정도로.
연기할 때 자기를 버리고 하도 캐릭터에 완벽 흡수되다 보니.
김남길이라는 배우보다는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이 많다.
심지어 동일 인물이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2017)에서 도드라진다.
그 형사가 김남길이었어?!
이런 반응이 꽤나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냥 민태주였던 거지.
그러고보니 태주가 삘받을 때(?)도 퇴폐미가 느껴지네.
병수를 묶어두고 상황을 조작하던 그 순간.
나른한 말투와 웃음소리 모두가 소름돋았었는데.
.........정말 요물이구나...(!)
남길이 앞으로 어떤 연기 역사를 갱신할지.
너무 기대가 되고.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역할에 과몰입해서 현실에 지장주고 그런 타입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저 그가 가는 걸음마다 멀리서 지켜보며 열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