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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일기

꽃게탕

by 뽀야뽀야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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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면 꽃게지.

마트에서 그냥 집어와도 

계절 음식이 완성되는 이 편리함을

놓칠 수가 없어서 

익숙해져 버린다.

사실 꽃게는 찔러보지도 않으면서

콩나물하고 무만 건져 먹으면서

꽃게탕이 맛있네 어쩌네 품평을 한다.

갑각류는 발라먹기가 감질난다.

꽃게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풍부하고 구수한 맛이 우러나는 것은

꽃게가 품은 붉은 마음 때문인가...?

 

이상하게 요즘 식탁에 국물이 없으면

식사를 잘 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벌써 국물없이는 밥을 넘길 수 없는 순간이 

오는 것일까?

식탁에 국이 있다는 건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얘기.

일반 반찬에 덧붙여서 뭔가 식사다운 걸 만들겠다는 의지.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뽀야가 만든 게 아니고 엄마가 정성을 들였지만

뽀야가 맛있게 먹고 남기지 않는 것이 

또한 미덕이다.

 

식사의 영역에서

아직 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몇 가지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

먹어치운 밥공기가 몇 개 인데.

밥상에 홀로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게 없다.

어묵조림 같은 건 빼고.

뽀야가 그렇게 잘 먹는 된장찌개, 계란국, 부대찌개, 비지찌개 등등...

여유가 있어야지 요리를 할 수 있다.

마음에도 금전에도 여유가 없는 뽀야는

막상 무언가를 만드려 해도 

그것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아무도 원치 않아 혼자 잔뜩 먹어치워야하는 상황이 오는 게 버겁다.

혼자서 만들어내는 거라고는

음식물 쓰레기와 오물밖에 없는 것 같은 초라함.

 

아직 혼자는 힘들다.

얼마나 더 연습해야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을 더 알뜰하게 뜻깊게 보내고 싶다.

하지만 책상에 발묶인 내일은 

진정한 삶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길뿐.

 

멈춰서서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더 나은 쪽으로 가고 싶어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 생각을 혼내주려는 생각으로.

기다림은 어렵다.

오지 않는 택배를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진빠지는 일을 

값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들은 다들 기다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참 아릅답다고 말한다.

뽀야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 느림의 미학을

조바심 내면서 초조에 휩싸인 머리카락 뜯어내며

기다려 본다.

뽀야의 기다림은 항상 알람을 맞춰두고 

1분 1초 놓치지 않으려 발악하는 일.

그렇게 힘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뒤돌아 보면 늘 똑같이 마음을 그릇에 넣고 

달달 볶고 있는 지금.

이미 조려질 대로 조려진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힘겹게 숨쉬며 내게 말을 건다.

[얘야, 지금 너는 괜찮니...?]

 

괜찮을 리가 없다.

빨리. 이 조바심을 없애고 싶다.

시간처럼 느긋하게 그러면서도 

어느순간 다른 모든 이를 따돌릴 정도로 빠르게.

그렇게 여유있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오늘도 책장 팔랑팔랑 넘기면서

클래식 고전에 몸을 맡기면서 

차분해 지려고 

시간을 멈춰세우지 않고 

가만히 손에서 놓아주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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