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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뉴손톱깎이

by 뽀야뽀야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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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망가진 손톱깎이를 절대 못 버리고

새로 손톱깎이를 사는데도 며칠이나 걸렸을 것.

이제는 비워내기도 잘 하는 뽀야이다.

어제 저녁에 마트에 가서 사온 손톱깎이.

이거보다 조금 작고 전체적으로 은색인 것은 2000원이었다.

요거는 색이 조금 들어가고 쪼끔 크다고 해서 3000원.

저 파란색 플라스틱은 껍데기인가 했는데 

본체인가보다 분리가 안 되네.

아직 손톱이 많이 자라지 않아서 잘라보지는 못했지만

우선 마음에 든다.

새 집기를 사면 이상하게 마음이 들뜬다.

가위라든지 펜이라든지 이런 사소한 일상용품이 

굉장히 사랑스럽다.

제몫을 다하는 것만을 바라보고 사는 그네들의 수더분함이 

내 마음을 특별히 두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족집게.

날이 많이 무뎌져서 털을 뽑는다거나 할 때 

잘 안 집힌다.

주로 거친 손등에 난 털을 많이 뽑아댔던 것 같다.

어쩌면 비매너가 될 수도 있는 털들.

그냥 자연스레 자라는 거고 

내 생물학적 특성의 한 부분이고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존재에

뽀야는 학창시절 많은 놀림을 당하고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정말 싫었었다.

그런데 털이 없는 몸을 생각해보면

그건 더 억울할 것 같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만들어지는 수백개의 별명과 놀림.

머리에 또는 다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얼마나 위축되는지 다들 자기 일 아니고서야 모를 거야.

뽀야는 너무 많아서 탈이긴 하지만.

예전 직장에서는 이런 얘기도 들었었다.

대충 각색해보면

[뽀야씨도 원래 털 많나봐?]

[우리 아내도 그런데. 맞지?]

[(게슴츠레 한 눈으로 웃으며 쿡쿡 찌른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었는데 

그 당시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 곳이 첫 사회 진출지라서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말도 안돼는 저런 대꾸에도 맞장구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다 알아서 그런가?

다른 사람한테 촉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명 참견.

참 쓸데없는 것 중에 하나인데 저게 없으면

비업무시간에 할일도 없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 얘기를 자기 얘기보다 더 많이 하는 것도 짜증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네(...)

우리의 아름다운 말씨가 참 필요한 때입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지인끼리 말을 가려하는 법을

정규 교육과정 [배려와 소통]이라는 교재로 배웠으면 참 좋겠다.

요즘의 미덕인데.

저거 말고도 참 털에 얽힌 소름돋는 일화가 많아서 짜증이 나긴 하는데

얼마전전에 본 일본인들은 여성의 털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왜 털에 비허용적인지 생각해봤다.

머릿털이 많으면? 부러워 한다.

눈썹이 진하면? 예쁘다 한다/편하겠거니 한다.

콧수염이 많으면? (남)마초마초, (여)극혐

턱수염이 많으면? (남)마초마초2, (여)극극혐

가슴털이 많으면? (남)마초마초3, (여)가능한 일인가?

다리털이 많으면? (남)마초마초4, (여)극극극혐

조금만 써보았는데도 이 대조적인 반응은 뭘까.

물론 예외의 반응이 나올 때도 있겠지만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저렇다.

요즘은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이 조금 바뀌어서 

남성의 털 허용치 장벽이 조금 높아지긴 했다.

남자도 매끈매끈해야 사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물며 여자는......(설 곳이 없네)

 

왜 똑같은 털인데 위치에 따라, 성별에 따라 

이렇게 나뉜 반응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애초에 내가 바꿀 수 없는 유전적 부분을 보고

놀리거나 하는 것들은 유년기부터 용서할 수 없이 

못된 행동이라고 주입식 교육을 하고 싶어지는 날이다.

교양 있는 일본인들이. 어찌하여 이지메라는 악습을 만들어내었는가

생각해보면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을 따지려 드는 것은

어쩌면 원초적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비교하는 마음을 멈출 때 온전히 나를 사랑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나와 저사람은 그저 다른 것일 뿐이니까.

잘못된 게 아니고 나쁜 거 아니고 그냥 다르기 때문이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교육을 많이들 주장해 오고 있다.

 

오늘날 통합교실이 많은데 

교사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또 어떤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도울 것인지.

깊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 물론 지금이 그런 생각을 할 적기이다.

2차 준비가 그런 거니까.

내가 뒤처지거나 뛰어나서 고민하는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냥 우리는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조금씩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뒤이어 번뜩 떠오른다.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

어떻게 함께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요즘 아이들은......(라떼는~ 같이 들리려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먼저 타려고 아우성이다.

내리는 사람이 먼저라는 의식이 없는 듯하다.

이웃을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더 서먹서먹 어색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아파트에 살면서 많은 걸 바란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에는 참 많은 뜻이 담겨있다.

내년부터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아이가 둘 이상을 만나면서 배워야 할 교과서 외적인 부분들에 대해

학부모가 해줄 수 없는 그런 일들을 학교가 책임지고 

그런 소양을 길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뿜뿜이다.

어릴 때 엄마한테 쥐어 터지면서 배우는 일상의 규칙과 예절을

지금 되짚어 본다면 아동학대일까.

가볍게 엉덩이 툭툭치는 것도 남이 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격리 된 비정상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비정상이 되고 있다.

이런 무서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펼쳐질

교육현장은 두렵고 처음하는 일 투성이겠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인간의 치유력을 말이다.

혼자 있을 때 강하고 둘 이상이 되면 더 강해지는

그런 인간의 치유의 오로라가 무한대로 뻗어가는 모습을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다시금 보고 싶다.

 

손톱을 아무리 열심히 주워도 꼭 한두개가 남아서 엄마의 신경을 거스른다.

처음엔 뽀야의 안경 도수가 잘 맞지 않아서 안보여서 그런가도 싶었지만

그냥 단순히 손톱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 원인이었다.

손톱 그까이꺼~ 하는 뽀야와 대조적으로 

꼼꼼한 엄마는 방 구석에 뭐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거슬리는 것이다.

그래도 뽀야는 맞춰가려고 많이 노력 중이다.

기존에 1번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앉은 자리를 2~3번 살펴본다.

뭐 그래도 발견되는 손톱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뽀야가 한 두번 더 찾아봤다는 말에

엄마는 안심할 수 있다.

쟤가 그래도 나를 배려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전달되지.

손톱을 깎을 때마다 깎인 손톱이 자동으로 손톱 깎이로 들어가는 

그런 손톱깎이를 가지고 있다.

근데 그건 발톱깎이가 안된다.

그래서 새 손톱깎이를 사보았다.

손때묻은 물건을 아끼는 뽀야로서는 새 물건에 대하여

뭐 그렇게 들뜨거나 마음에 쏙 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정을 붙여가련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장미와의 관계에서 

장미에 쏟은 시간만큼 장미가 소중해 진다고 하는 그 말이

정말 공감이 되었다.

또 네가 오기 몇시간 전부터 나는 행복해 진다고 하는 그 말도.

사실 뽀야는 모든 약속에 있어서 나가기 1시간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하고

먼저 장소에 나가고 하는데

하루에 약속이 있는날은 전날부터 행복해 진다.

어쩜 그저 성급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정말 어린왕자는 좋은 책이다...!

집에 있는 어린왕자 책은 처음 아쿠아리움에 소풍 갔을 때 

그 근처 서점에서 산 것이다.

표지가 미농지로 예쁘게 장식되어있는 책인데 

지금은 미농지가 엉엉 울고 있다.

 

오래된 물건에 집착하는 일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뽀야의 노력이 절실하다.

옷은 많이 극복 했는데 아직 필기구나 책이나 그밖의 많은 것들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철칙처럼 믿고 살아가는 뽀야는

새로운 것들에 둘러쌓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험을 떠나거나 여행을 가거나 해야하는데

이거 참 상황이 도와주질 않네.

 

모처럼 엄마가 쉬는 날에 이른 시간에 찾은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 보며 행복했던 어제.

수험생도 아니면서 왜 내가 덜덜 떠는거지? 싶었던 수능날.

오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번져나가던 

김남길의 자필 응원편지까지.

따스한 하루였다.

이 남자 정말 120%이다.

100%를 가뿐히 초과하는 위험한 남자야.

푹 빠져버렸어 큰일났어.

그나저나 올해 시즌그리팅은 없는건가...?

김남길 달력 모으는 게 낙인디.

올해 달력은 지난 열혈사제 덕분에 풍성하게 만나볼 수있어서 좋았는데

내년 달력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내 책상이 김남길 달력으로 도배되어도 좋으니

어서 와주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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