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배터지게 먹고 배불러서
소화 좀 시키려고 산책 하는 길에
만나 버린 대숲.
아니, 대숲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담하긴 하다.
그래도 대숲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에 대고 [뽀야 바보~~~]
하고 외치고도 싶고
[아빠 사랑해~~]
라고 외치고도 싶다.
그러면 바람결에 아빠 대답이 들려올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메아리처럼
[뽀야는 바보래요~~~]
이렇게 되들릴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저녘에 서울촌놈(2020) 대전편에서
어떤 독특한 카페를 소개하는데
카페가 대나무 숲에 둘러쌓여 있었다.
대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가게의 모습에
되게 감명 받았었는데
우리 동네에도 작지만 대숲이 있네~(감동)
여기 산 지가 몇 년인데 이제 발견했다고 하면
완전 히키코모리 인증인가?(바부팅이)
초록이 익숙한 우리 아파트라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여!
앞으로 자주 지나치게 될 것 같은 질서 정연하게 심은
대나무들을 바라보며
마침 그 자리가 아빠께서 애용하시던 주차장 쪽이라서
아빠는 푸른 대나무를 보면서 출근하고
대나무 그림자를 보며 퇴근하셨겠구나
생각하니 또 가슴아픈 뽀야.
왜 또 거기에 있어가지고
그리움이 푹푹 깊어가는 가을.
노랗게 부서지는 이파리들이 손바닥에
그리고 어깨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데
시간아 가지 말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너는 어느새 새하얀 눈을 머리에 인 채
빨리 따라오라고
그렇게 하얗게 소리칠 테지.
소복이 쌓인 눈 털어내면서
따뜻한 털신 신고 하늘에서 토닥토닥 내리는
아빠 눈물 모아서 눈사람도 만들고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들이
녹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때
허무해 하지 말아라.
손을 대기 전으로 돌아갈 뿐이니.
어느새 너를 떠난 물방울은 언젠가
무더운 여름날 네 뜨거운 몸뚱이를
얼음장처럼 시원하게 적셔 줄 소낙비가 되어 내릴 터이니.
그것이 자연의 순환이고
삶이고 인생인 것일 게다.
그런게 인생이라면 한 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내가 무엇이 되어 갈지.
어떻게 순환될 지.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초록의 시작부터 하얀 마지막까지.
그 사이에 자리잡은 오색빛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삶의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관조하는 마음으로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