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왜 저렇게 어르신들이 등산복을 선호하나.
호기심에.
옷장 속을 굴러다니는 여름/겨울용 등산복을 꺼내보았다.
뭔가 소재부터가 다르고 고어텍스 라고 써있기도 하고.
겨울 것은 모자가 달려있고 여름 것은 모자가 없다.
색상도 겨울 것은 갈색, 여름 것은 연둣빛.
일단 입고 있어본 결과.
무척 통풍이 잘되고 (심지어 겨울 것은 기모가 들어가 있는데도!)
막 입어도 구김이 없어 좋다.
아, 왜 등산복~ 등산복~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때도 잘 묻지 않고 땀흡수도 뛰어난 것 같다.
일반 옷에서는 땀이 겉돌다가 기분나쁘게 옷에 흡수되는데.
등산복은 금방 땀을 흡수해서 뽀송하게 몸을 유지시켜 준다.
그리고 재질이 쉬이 젖지 않아 내내 쾌적하다.
어지간한 등산복은 다 비슷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프리미엄 등산복 컬렉션을 보면 알 수가 있는 점이다.
어쩐지 엄마도 매번 등산 브랜드 옷을 즐겨 입더라고.
그것도 엉덩이 가려지는 걸로다가.
앞에 주머니가 있으면 금상첨화.
붉은 색의 현란한 줄무늬가 새겨진 그 옷을 보고 있으면
멀리서도 우리엄마인 줄 알 수 있을 정도.
아빠의 신변정리를 하면서
아빠 옷 몇 가지를 내방으로 가져왔는데.
그 중에도 등산 브랜드 옷이 있었다.
하나같이 까실까실 달라 붙지 않는 재질.
아빠는 이런 질감의 옷을 즐겨 입으셨구나.
물을 흘려도 방울져 맺힐 것 같은 그런 천이었다.
아빠가 신경을 많이 쓰시던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그 분은 딸내미가 있는데 그 아이가 아파서.
전적으로 딸을 돌보는 그런 처지에 있으셨다.
나와 엄마도 종종 찾아뵙고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어제 그분의 부고를 맞닥뜨렸다.
평생 딸만 보고 살아오신 분인데.
딸의 곁을 떠나는 그 심정은 뭐라 할까.
아마도 지병으로 인해 병원에 들렀다가 이동하는 와중에 그렇게 되신 것 같다.
엄마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며 아침에 어깨와 등이 결린다고
파스를 붙여 달라고 말씀하셨다.
아빠, 어쩌면 좋죠...?
우리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자꾸 아빠 보러 가요.
아빠는 그리운 얼굴 만나서 좋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먼저 눈에 밟히는 우리는 어쩌면 좋나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아빠 장례 때에도 동네까지 찾아오셔서 밥을 사주시며.
우스갯소리도 던지시고, 그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조금 지친 듯 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마주 했었는데.
심지어 내 옆자리에 붙어 앉아서 얘기 나누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아저씨, 우리는 친구 딸, 그리고 아빠 친구 아저씨로 만나서.
깊은 대화는 못 나누어 봤지만.
아저씨가 무거운 공기를 없애려 던지던 농을 기억해요.
어떻게 그렇게 밝게 지내 실 수 있으셨어요...
많이 힘드셨죠? 그간 자기 앞가림 할 생각은 못하고. 그럴 여유도 없고.
그저 딸내미, 딸내미의 행복, 그것만을 위해 사셨잖아요.
이제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라요.
이미 그리하셨겠지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듯 별안간 떠나가버리면
그 후유증이 크다.
상심이 쌓여 간다.
오늘도 하늘에 별이 밝게 빛난다.
저 별은 아마도 아저씨 별이겠지.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다 하늘로 가 별이 되어버리면.
이 땅은 척박해지기만 할 뿐인데.
하늘만 별들로 환하게 빛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그 빛으로 지상을 밝힌대도.
우리 다신 만날 수 없잖아.
우리 다시 꼭 안아볼 수 없잖아.
목소리도 따듯한 두 손도 느낄 수 없게 되잖아.
잔인한 운명이 너무 미웠던 하루.
취침 하기 직전에 듣게 된 슬픈 소식은.
방방 떠있던 나의 마음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했고.
요 며칠 살짝 방향을 잃고 헤매던 내게.
지금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아빠의 전령인걸까.... 뽀야 제대로 하고 있으라고 던지는 걱정인 걸까.
그렇게 아빠 곁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우리는 허탈하고 공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자주 뵙지 못하고.
안부를 주고받지 못했던 지난 날을 후회해도.
이미 다 끝난 것이다.
다시, 우리의 삶은 굴러가고.
밤의 끝엔 아침이 반드시 온다.
그렇게 또 살아나간다.
죽음의 그림자는 길고 길어서
아직도 저만치 우리 발치를 잠식할 듯이
노려보고 있다.
삼켜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웃어야 한다.
다시 이겨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아빠의 등산복을 만지작 거리면.
정말 등산 가기 싫어하던 꼬꼬마 시절의 뽀야가 툭 떠오른다.
입술이 앞으로 잔뜩 튀어 나와가지고 투덜대며 오르던 산.
그래도 등을 떠밀어 주며 같이 정상에 올랐을 때의 상쾌감, 해방감.
아빠는 내게 그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지.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숨 고를 여유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아빠와 아저씨는 간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고 계시겠지.
[야, 너 딸은 어떡하고?!]
[임마, 그러는 너는 네 딸은 어따두고 왔냐?]
그러면서 눈물의 술잔을 기울이고 계실 두 분이 떠오른다.
걱정 하덜 마세요.
아빠 딸내미는 보란듯이 잘 커갈 거니까.
걱정 하시지 않게 잘 살아남을 테니까.
아빠와 아저씨가 너무나 보고싶은 밤의 생각이었다.
아침이 되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
엄마의 등에 한방 파스를 붙여주면서.
엄마도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는데.
또 생채기가 났구나. 싶어서.
마음이 영 좋지 못하다.
그래도 휴일이라 다행이다.
내가 곁에서 하루종일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착잡한 심정을 고이 접어 가슴 어딘가에 넣어두고.
주어진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주중에 처리하지 못하고 미뤄둔 일이 생각나서.
또 그런 일들은 대개 하기 꺼려지는, 귀찮은 일감이라서.
발목이 무겁기만 하다.
조금만 더 따스해지면
아빠의 등산복을 꺼내 입어 봐야지.
그러면 조금이나마 곁에 있는 느낌이 들어 안심이 되니까.
아빠의 기분을 조금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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