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온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위 아래 5개씩 나란히 있었는데.
안본 사이에 이렇게나.
뽀야는 아직 한 개도 못 먹었다는 사실.
사실 집에 먹을 게 꽤 많아가지고.
이브때부터 빵도 사오고 과자도 사오고 하여.
먹을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바나나 파운드에 관심을 덜 준 것도 사실.
그렇다고 안 먹고 싶고 질린 것은 아니었다.
오늘 문득 파운드케이크가 놓여진 김치냉장고를 지나치는데.
이렇게나 줄어든 바나나 파운드를 보며.
타이밍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싶었다.
어제 확진자 수는 1200명가량.
쉽게 외출하고 이동하고 그럴 처지가 아닌 것이다.
원래 오늘은 아침먹고 일찍 동네 공원에 들러서 산책하고
밥먹고 집에 오려고 했는데.
와, 심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천 명도 놀라운데 천 이백명 대라니 놀랍기만 하다.
10명만 모여있어도 시끌벅적 북적이는데 천 명이래.
게다가 알람이 어제 하루만 해도 3번 넘게 울렸던 것 같다.
장소도 점점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는 지역발생이었다.
그리하여. 오늘도 집콕이다.
사실 뽀야는 블로그도 해야하고 습작도 계속 해야해서
내심 걱정 하기도 했는데 뭐 다행이다.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몇 분씩 글쓴다는 것이
귀찮다면 귀찮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다.
요근래에 너무 빵 먹은 것 같아서 죄책감이 좀 든다.
저녁마다 배가 빵빵해진 상태로 잠에 드니
이게 살이 찌지 않고 배기겠는가.
무서워서 몸무게는 재보지 않았지만
분명 50kg 돌파했을 것이야.
엄마가 쉬면 뽀야도 쉬는 이 따라쟁이 같은 그림은 무언지?
엄마 쉬는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뽀야도 신경이 덜 날카로워지고
모처럼 편하게 쉴수도 있고.
나의 계획은 그다지 급하거나 바쁘지 않으니까.
쉼의 중요함을 깨달았던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쉬니까 더 능률이 오르는 걸 봤기 때문에.
글이라는 게 얄밉게도 색다른 활동을 할 때
더 많이 내게 찾아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영감이나 번뜩이는 생각 말이다.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일이 아닐 때는 재미있다.
그런데 의무가 되어버리면 어렵고 지치는 것 같다.
블로그 글쓰기가 이 사실을 방증하는 것 같다.
요새 TV에서는 트로트가 열풍이다.
아빠 아프실 때부터 트로트에 불이 붙었는데.
꽤나 오래 타는 용광로네.
땔감으로는 전국의 수많은 매력적인 목소리들.
진짜 우리나라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쌔고 쌘 듯.
그러고 보니 습관적으로 ~인 것 같다는 말투를 많이 쓰고 있네.
단정적 어투를 피하고 싶어서리.
산책이 무산되어 가슴 쓰리지만
그래도 공원이 어디 도망가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며칠 안 있으면 새해인데.
연말 대상 프로그램의 지위가 많이 내려온 것 같다.
예전에는 상 주는 거 챙겨보고 두근거려하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뭐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바라본다.
심지어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비대면이 익숙한 시대에 뜨는 것은 개인방송이나
인터넷인가 보다.
트로트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들의 빠른 소화력과 적응력에 매번 놀라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아이 혼자 뿐이 아니라 온 가족이 다 고생한 게
눈에 보여서 조금 불편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눈에 띄고 싶고 이기고 싶고 그런 마음을 조장하는 거 같아서
어린 나이부터 협력보다는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가
너무 매정하게 보여서.
경쟁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이유는
누가 1등이냐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뛰어난 가창력에 놀라며 감탄하고 싶어서.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는지도.
동생처럼 트로트가 지겹다며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뭘까.
전부를 만족시키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어느샌가 모든 방송이 요리를 하더니 이제는 노래를 한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주말에는
아침부터 노래경연 방송이 빼곡히 편성되어 있다.
우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보기 전에 저사람의 능력을 다른이와
견주는 데 더 힘쓰는 것 같다.
물론 협동하는 과제도 있기는 한데 별로 부각되지 않아서.
이런 세상인데 협동학습, 프로젝트 학습, 배려 등 물론 좋지만.
배움과 삶의 괴리는 깊어가는 중.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것의 대부분은 현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의 반듯한 대화가
요즘 학생들에게서 실종된 것처럼.
그러면 방송이 현실주의적으로 욕설과 남탓으로 얼룩져야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하다.
삶을 잘 살았다고 말하려면 꼭 1등이 되어야하는 것만은 아니잖는가.
1등을 강요하는 세상이 야속한 아침이다.
1등이 되지 못해 분해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방구석에서 매일 바라보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TV를 끄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TV가 유희의 전부인 사람도 많다.
이제는 방송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좋은 방송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텐데.
하긴 방송업계 자체가 경쟁의 장이니만큼
시청률이라는 숫자로 모든 게 표현되니까 어쩔 수 없긴 한가 보다.
언젠가는 일상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보다는 공감하는 그런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그런 방송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면서.
근데, 왜 다들 바나나 파운드 이렇게 빨리 먹는 거냐고!
나 아직 한 개도 못먹었어, 하니까.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엄마는 말했다.
뽀야의 몫을 남겨두는 그런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한 개도 못 먹고 끝낼 것 같긴 하다.
지금 너무 배가 부르거든.
에잇, 망했다.(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