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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일기

열무국수

by 뽀야뽀야 202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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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너무 지겨웠다.

찬장에 쑤셔 박혀 있는 국수가 내게 손짓했다.

국수를 삶아 보자!

근데 잔치국수는 건강한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빔국수는 조금 망설여 진다.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래서 꿀로 대신 해 보았다.

좀 낫겄지.

마침 시어빠진 열무가 있어서 열무국수를 만들기 시작한다.

면을 삶을 때 말똥말똥 가만히 있을 게 아니다.

면을 서서히 한 방향으로 저어주어야 뭉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찬물로 샤워를 시켜주고.

준비한 양념에 버무리면 땡.

일단 면에다가도 양념을 해줘야 맛이 산다.

간장과 설탕이 들어간다.

엄마 계량이므로 알아서 적당~히.

단짠단짠이 완벽하게 실현된 열무국수는 

처음 한두 젓가락은 기똥차게 맛있는데.

계속 먹다보면은 이게 맛에 둔감해 지는 것 같다.

배가 어느정도 차서 그런지 몰라도

감각이 별로 없다.

면을 후루룩 소리내어 먹는 것이 예절인 일본이 있잖아.

그런데 여기는 일본이 아니잖아.

조용히 끊어 먹는다.

그리고 후루룩 먹으면 면이 요동치며 뺨따구에 양념을 묻혀대서 

조금 불편하달까. 보는 것도 먹는 것도 다 불편하다.

허겁지겁 먹는 것 같아서 불안해 보이거든.

그러다가 코로 면이 나오는 거거든.

옛날에는 잔치가 있을 때만 국수 먹었다며.

귀한 음식이었네. 대박.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먹는 국수는 꿀맛이다.

뽀야는 큰 대접에 국수를 가득담아 처묵처묵.

남겨도 좋으니까 배가 부르면 그만 먹으라던

엄마의 걱정스러운 말.

세상에 면이 너무 좋아요.(해맑)

그래도 국수는 소화 잘 되니까 봐줘라.

근데 요즘에 동생이 내 면식에 대해 별 반응이 없다.

무반응 대책으로 돌아선 건가?

누나는 못말려 시즌2 찍는 건가?

면을 안 먹으면 먹은 것 같지가 않아.

이딴 소리나 내뱉으며 헤실헤실 거리는 

내 모습에 열이 받을 만도 한데.

 

뭐, 내가 동생 열받게 하려고 작정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나의 모든 것이 맘에 안들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꼭 드는 일은

사랑이 아니고서야 드문거니까.

그래도 상대를 내 입맛대로 재단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래서 나를 교정하려는 자세로 대하는 동생이 조금 부담스러웠기도 했다.

저는 뭐가 잘났나고 다른 사람을 고치려 들어?!

하는 반발심이 컸지.

근데 뭐든지 객관화 하기 좋아하는 동생의 제안은 늘 일리가 있다.

이렇게 바꿔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부드럽게 치고 들어온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뽀야는 나쁜 습관들을 많이 교정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식사중에 너무 떠들어 대는 습관을 고쳤다.

말의 진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촉새같이 물에 담그면 입술만 동동 뜰 것 같은 뽀야도 

침착이라는 걸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다.

이 과정은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진행중이라

티가 막 확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누르고.

상황을 살피고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

하나씩. 천천히.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다 할 수 있게 된다.

자기 계발서를 많이 봤다고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봤다고 했다.

그렇게 얻어진 감각은 놀랍다.

내가 머리로 배우는 것보다 더 빠르게 체득한 

그 지식은 남이 흉내낼 수도 없고 엄청난 머릿속 지식의 창고가 되어 

동생의 행동을 조절한다.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고 

대신 많이 먹는다.

뭐 남자아이의 식사량이란 어마어마 하지.

그런데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깊어가는 때라 그런지

먹는 패턴을 바꿔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너무 늦게 먹는 습관을 고쳐갔고

양도 많이 줄였더라.

 

소식 하는 건 장수의 비결이다.

봉다리를 너무 꽉 채우면 튿어져.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상의 법칙들이 

편안함이라는 탈을 뒤집어 쓰고 

우리를 공격한다.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은 나를 객관화 하고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가 서양식 사고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기 문제해결단계에서는 아주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일들을 분석적으로 파편화해서 사고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머리 아플 것 같으니까.

그런데 조금은 독단적이신 우리집 그분(?)은 

지적 당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

본인은 상대방을 한 없이 디스 하면서도.

그러다가 일본을 공부하는 뽀야는 저도 모르게 

동양적 사고관을 확실히 익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대조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 집안 안에 이런 대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은

서로의 희생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런 느낌이 물씬 든다.

뽀야가  이 자리에서 글쓰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그러기까지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신 힘들어하고 

흩어지는 관심에 많이 좌절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생에게 더 잘 해주고 싶다.

맨날 엉뚱한 말을 해서 동생의 정신상태를 뒤흔드는

철없는 누나지만. 

그래도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시도들이 내년부터 시작된다.

물론 지금도 계속 하고 있긴 하지만.

새해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일단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하고 싶다.

나의 사소한 습관의 점검부터 뻗어나가보는 것이 어떨지....?

세상에, 또 한 살 먹는 건가?

너무 빠르다. 진짜 빠르다.

이제 뜯어낼 달력도 한 장 남았다.

그 한 장의 마지막 언저리에 인생이 걸려있다.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그날의 발표를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할일을 한다.

 

아침 글쓰기가 쓸데없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뽀야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를 돌아보고. 내다보고 하는 일들이 재미지다.

창가로부터 환하게 비춰 들어오는 햇살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타자를 두들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됨에 감사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또 감사한다.

세상은 추운데 더해서 고약한 질병까지 퍼져나가고 있지만.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 중이고 

우리는 또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런 멋진 인류 속에 나도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내 하루의 톱니바퀴를 열심히 돌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일상에 충실할 때 세상이 돌아간다.

오늘의 계획도 순항중.

그런데 드라마 볼 시간이 없다.

카이로스 너무 궁금해 버리는 것.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이 

대단한 충전이 된다는 걸 요즘에 알았다.

핸드폰도 자주 재부팅 시켜 주어야 하듯이

우리 몸도 가끔은 생각이라는 걸 싹 비워내고 

다시 작동시켜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깨친 이들은 명상을 하는가 보다.

[오늘 더 몸이 편안해 집니다.]

[날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들을 내뱉어 보자.

나에게 인색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건강한 하루. 건강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음에 

한 번 더 감사하면서.

 

생수 배달왔나보다.

덜커덕 소리가 들린다.

어서 물을 날라야 겠네.

귀찮은 육체노동도 수련의 일환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엉덩이가 들썩들썩.

생수 피라미드를 쌓아보자.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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