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겉절이의 변형이라고 할까.
다진 채소를 양념하여 오이 속에 꽂아주면.
맛좋은 오이소박이 완성이다.
물론 찹쌀풀도 쑤어주어야 하고. 까나리 액젓도 들어간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다 만들고 맛이 들면 계속 찾게 되는 시원 상큼한 요리.
엄마는 요리를 즐기지 않는 편.
일거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맛있게 먹어주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일을 마치고 피곤에 절어 반찬이 다떨어진 냉장고 앞에 서면.
그렇게 한숨이 나올 수가 없다.
딸내미는 칼을 쓰다가 손가락이 잘릴 뻔한 이후로
칼에 손도 못대게 한다.
그래도 곧잘 이것저것 나름대로 불량식품을 만들어 먹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것도 면식을 줄인 뒤로는 만들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었다.
오늘 저녁에는 된장찌개를 해야지. 하고 장을 보러갈 준비를 하려고.
메모지에 살 것들을 적는 일조차 귀찮다.
조금씩 비워지는 잔고도 걱정이 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울 만도 한데.
집을 나서면 몸이 고되긴 해도 일상에 울림이 더해진다.
집에오면 밋밋해지는 나는 TV앞에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일방적으로 정보를 쏟아내는 그 앞에서.
옆에서 딸내미가 정신없게 뭐라뭐라 대꾸하는데.
맞춰주는 것도 솔직히 귀찮다.
재밋거리가 TV밖에 없는 삶이라고 해도.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내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거기에 몰두할 열정도 이미 없다.
운동이나 좀 해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해본다.
거실로 꺼내놓은 실내자전거를 돌리는 것은 손쉽다.
그냥 TV보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자식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걸 보는 게
이 삶의 낙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았다.
한 때는 서릿밭 같았던 우리의 관계도 조금쯤은 회복되었을까.
마음이라는 게 비뚤어지면 비뚤어진대로
축적되는 거라서.
어쩌면 우리는 잔뜩 기울어진채로 쌓아올려지고 있는 토막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돌아가서 한 사건을 빼버리거나 수정할 수 없듯이.
불가역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위태롭다.
엄마의 피곤을 덜어내는 방법이란 따스한 말 한마디.
그게 뭐가 힘들다고, 제 때에 맞춰 입밖으로 꺼내기가 참 버겁다.
마음보다 머리가 앞서서 말하는 바람에.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내 마음은 이런 결과를 의도한 게 아닌데, 싶은 일들도 많았다.
효도라는 게 걱정 없이 지내게 해드리는 거라고 하면.
나는 효도하지 못하는 딸이다.
어쩌면 엄마의 걱정은 언제까지고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나든 못나든. 엄마의 걱정 총량은 일정한 것이다.
못되면 못되어서, 잘되면 잘나가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항상 걱정 고민거리를 가득안고 사는 엄마에게.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봐도.
별로 도움이 안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냅두는 게.
차선책이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드는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마음이 풀어지면 말이 헛나오는 일이 많아서.
그렇게 상대방을 물어뜯고 상처주기에 최적화 된
나의 이 주둥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 지 감이 안왔었지만.
요근래에 많이 좋아졌다.
머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비결이었다.
한박자 쉬고 마음이 하라는 대로 해보는 것.
그런 경우가 결과가 좀 나았다.
나는 내가 엄마 곁에 늘 있어야 좋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것만도 아니었다.
가끔은 서로에게 지나친 관심을 꺼두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는 것이다.
서로 무척이나 친한 친구와도 같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나는 농이라고 생각하여 던진 말에
누군가는 맞아 피흘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게 엄마이면 어떻게 하려고.
자꾸 내 마음과 머리를 동기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정말 소중하고 상처입게 두고 싶지 않은데.
정작 내가 가장 상처주고 있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머리는 항상 그게 아니라고, 올바로 고쳐야한다고.
그렇게 비상벨을 울려댄다.
마음은 저만치 뒤에서 그건 아닌데.....하며 움츠리고 있다.
머리만 세월따라 자랐나보다.
마음은 아직도 꼬맹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머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마음이 할 때가 종종 있다.
마음이 하는 일이란 뭘까.
힘들겠구나, 아프구나. 걱정 마. 나도 그래. 하고 공감하는 일.
내가 대신 할게, 내가 해줄게, 내가, 내가.......하고 배려하는 일.
당신이 먼저, 저는 괜찮아요, 그게 맞네요. 하고 존중하는 일.
나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데.
아무것도 변화하지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살 것인가?
머리가 아는 일을 왜 마음은 늘 봐주고 있는 거야.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황을 해결하게 도와줘!
하고 외치고 싶은 날이다.
그래서 감성지능이니, 소통이니 그런 얘기가
화두가 되고 있나보다.
이제는 마음을 앞자리에 꺼내놓고 싶다.
머리는 잠시 뒤칸에 넣어두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해준 음식은
그 정성과 노력을 생각해서
세상 맛있게 빠르게 비워내기로 하자.
채식 위주 식단이 어색한 내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