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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우연

by 뽀야뽀야 2021.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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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연히.

수건이 말했다.

어느 게 네 수건이게.......?!

아니, 욕실에 들어섰는데 이렇게 수건이 나란히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고른 색이긴 하지만.

우리 가족 셋이 다 같은 색 수건을 사용하게 되는 우연이 있나...?!

그나저나 비슷한 수건이 참 많기도 하구나.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눈치채지 못해서 

쓰고 다른 수건을 걸어놓았는데. 그 수건도 저 빛깔이었다.

와~ 적어도 3장 넘게 같은 수건이 있다는 거네!

심지어 촉감도 비슷하고 두께도 비슷하다.

노란 수건이라. 저게 그래도 집에 있는 수건중에

도톰하고 질이 제일 좋아서 서로 애용하다 보니.

이런 우연이 만들어진 것 같다.

 

살면서 우연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시계를 봤을 때.

4시 44분일 때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같은데...?!

하필 내가 들어가서 쓰려고 하니까 딱 떨어지는 두루마리 휴지.

내가 뽑아 쓰니까 딱 마지막 이었던 각티슈.

어제 저녁에 탈탈 털어쓴 마지막 이니스프리 그린티 크림까지.

그렇게 우연은 우연이 아닌듯 우리 삶 속에 숨어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우연이의 우연히 라는 노래가 있었지.

좀 찾아보니 2009년 노래방 애창곡 20위를 차지했다고.

이만큼 우연에 둘러쌓인 하루가 없었던 것 같다.

맨 먼저 동생이 발견하고 허허허 웃어버린 

나란히 나란히 수건 사건.

우리 가족의 수건 취향을 엿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꾸며내느냐에 따라 라디오 사연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최근에 수건 빨래에는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고 있다.

우리 살에 직접 그리고 많이 닿는 거니까.

되도록 화학 제품 쓰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도 옷이나 양말 같은 경우는 섬유유연제가 없으면

너무 빳빳해져서 어쩔 수 없이 소량 사용하지만.

팍팍팍 세수하고 뽀송한 수건에 얼굴을 파묻으면 기분이 좋다.

거의 경락 마사지 하는 수준으로 얼굴을 벅벅닦는 나는.

수건이 없으면 정말 일상 생활이 안된다.

심지어 잘 때 베개 위에다가 수건을 올려놓고 쓴다.

왜냐고? 베개 시트 갈기가 너무 귀찮거든.

수건 올려놓으면 수건만 삭~ 갈면 되니까.

그리고 운동할 때도 수건 한장씩 목에 걸어줘야 하니까.

예전에 아빠가 활발하게 사회생활 할 때.

야금야금 모아둔 수건이 많아서 지금 당장은 지장이 없지만.

가끔씩 동생이 너무 낡은 수건은 버리자고 할 때마다.

뭔가 아깝고 다신 우리집에 수건 들어올 일이 없기에.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다.

이런 내마음을 버리기 대장 동생은 모르겠지.

 

동생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세간살이가 별로 없다.

그리고 기간을 정해두고 싹 버리는 행동을 한다.

다 버리는 데도 맨날 버릴 것이 또 나오고 그런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수집계의 블랙홀이라 할 수 있겠다.

절대 내손으로 들여온 물건이 낡고 낡아 떨어질 때까지.

내 방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집착을 내려놓아야 더 좋은 것들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비워내기란 참 어렵다.

수건만 봐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몇몇 있다고.

끝이 오그라들어 버린 수건이나 실밥이 잔뜩 비져나온 수건.

너무 비벼대서 낡아버린 수건. 너무 얇아서 딱딱해진 수건.

뭐 기타 등등 많은데.

그래도 이게 우리집에 오기까지는 아빠의 노력이 있던 거니까.

경조사 많이 다니고. 회사생활 하며 기념일 마다 수건 챙겨오고.

그런 사소한 노력의 산물이니까.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더욱 아까워졌다.

오래 깨끗하게 쓸 수 있게 더 아껴야지.

그렇게 다짐해 본다.

 

이런 우연은 아마 다시는 없을 지도 모른다.

같은 색깔의 수건이 늘어져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되게 묘했던 어느날에.

우연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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