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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자기검열의 시대에 사는 우리

by 뽀야뽀야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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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하게도 그런 시대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대충 이런 가사로 시작되던 어느 애니메이션 노래가 있었다.

어제 엄마의 전화통화를 엿들으며 느끼게 된 점이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이 가슴속에 가득하지는 않은가?!

나는 비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비밀이 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거창한 비밀이 아니더라도.

네가 같이 있지 않았던 순간의 내 모습이랄까.

감춰두고 싶은 속내 같은 거 말이다.

 

인터넷 상에서도 편하게 제 속 다 비추며 얘기하는 

투명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자신을 엄격하게 검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디 한 군데는 깨끗하게 굴러갈 수 있는 거지.

꼭 검열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서럽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한 번 걷어내고 나면

순수한 그 결정체는 누구에게 가 닿아도 무해하니까.

 

그런데. 

나는 문득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면...?

이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틀어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국민청원도 있고 인터넷이라는 장도 있고 하니 

예전보다는 좀 덜하지만.

내가 투덜대는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는 엄마와 동생을 보면서.

아, 내가 또 말 실수를 하였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일이 있었다.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2인분 사이즈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곧이 곧대로 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아름다운 창작을 통해 에둘러 말해보기도 하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두운 속내를 승화시키기도 한다.

무언가를 억제하는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억제하는 사람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내가 입은 억울한 사정이나 답답한 마음을 말 그대로 편히 내뱉을 수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다.

얇은 막이 내게 드리워져 숨 쉬기 불편한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될말 안될 말 마구 내뱉는 무뢰한이 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도 때로는 자기검열없이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현실 삶 속에는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없다.

심지어 같이 덕질할 사람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거야.

학교도 졸업한지 오래고. 회사도 그만둔지 오래이다 보니.

인간이라는 실체에 부딪치고 닳고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가?

나는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사회화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책임을 가진다.

그렇기에 더욱더 나를 가두고 걸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딱 선을 지켜서 거기까지만 건드리는 것으로.

선을 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안다.

늘 듣기좋은 말, 따뜻한 말. 꾸며진 말. 그런 것만 하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때로는 거친 말. 속시원한 말, 사이다 같은 발언.

하고 싶어 진단 말이야.

하지만 역시 여기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아직 사회가 주는 편안함을 포기 할 생각이 없고.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언제부터 내 안에 거름장치를 기르게 되었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면서부터겠지.

[그러면 안 돼] 하고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일도 자연스럽다.

우리 모두가 이런 자기검열을 부당하다고 느끼고 그만둔다면 어떻게 될까?

아비규환이 펼쳐질까.

예술의 신세계가 열릴까.

궁금해진다.

예전에 금서 목록을 손에 넣어.

도서관에 도전하러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잘 가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그때는 보고 싶은데 책장에 없는 비밀스런 책들을 보려면

쪽지에 적어 사서님께 제출해야 됐다.

 

[소돔의 120일]이었나. [소돔과 고모라]였던가.

하여튼 그런 책을 어린 학생이 보고 싶다고 내밀었을 때.

당황했을 사서님의 표정은 어떠했을까.

데스크가 웅성웅성 하더니  이 책이 맞냐고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조심스레 빌려 집으로 가져와 읽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디스트][사디즘]의 시작이 바로 이 책에서부터였다.

몇 페이지 읽다가 너무 취향이 아니라서 집어 던졌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금서 내용을 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의사를 타인에게 내비치는 행위.

거기서 얻어지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 웅성대는 분위기.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밖에도 제 나이대에 보면 안되는 그런 책들에 대해 관심이 참 많았다.

주로 그런 소재에 책들은 일본 서적이 많았고.

일본어를 할 수 있었던 나는 그런 책들을 다 접하게 되었다.

허나, 남는 것은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걸 시원스레 공유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 뿐이었다.

 

그래.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며, 사실 별 거 없다고. 

나를 옭아매는 것들에 너무 관심 주지 말자고.

그렇게 묻어두고 지내다가.

요즘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사실 액체이고.

사회의 만들어진 틀이 없어지면 내 실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나는 유리컵에 담아져 있는 물이고.

컵이 깨어지는 동시에 나도 흘러 무너지게 되는 거라고.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형태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니까.

이 생각이 맞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워 지는 것이다.

나는 수없이 컵을 깨려고 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

내 세상이 무너지려 하는 것도 모르고.

그러나 금기사항은 금기 자체로 남아 있기에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어릴 때는 잘 몰라서 해보고 깨지고 부딪치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금서목록을 뒤져본다던가. 불온소설에 눈길을 준다던가 하지 않는다.

그런 잣대도 이제는 [아 그러세요~]하고 넘기게 된 것이다.

 

 

무엇이 나를 변화시킨 걸까.

나는 닳고 닳은 해변에 그저 놓인 몽돌에 지나지 않는가?

모서리가 다 깎여버린 비운의 몽돌이 아닐까?

 

비도 내리고 한껏 우울타는 심장이 수축-이완을 반복하며 내게 묻는다.

[너는 지금도 틀을 부숴버리고 싶니?]

[너는 지금도 네가 갇혀있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는 

허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그저 아무리 비밀스런 상자라 해도 뚜껑을 열면 끝이다.

다시는 열어보겠다는 생각도 안하게 될 걸.

 

그러니 나는 뚜껑에 손대지 않은 채로.

두근두근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리.

두 볼 발그스름하게 빛내며 상자 속을 궁금해 하리.

허나 다가가지 않으리. 열어보지 않으리.

자기검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허락되지 않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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