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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찰나의 순간

by 뽀야뽀야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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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을 사는 생명들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어떤 유행가는 말했지.

그래도 그 자리에서 계속 피고 지고 하는 이 생명이 아름답다.

유한하기에 더 아름다운 지도 모르겠다.

봄길을 산책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꽃들이 많다.

주로 아파트 화단에 많이 피어있다.

 

내 삶을 조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겉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속은 다 문드러졌는데도.

썩을 대로 썩어서 회생 불가인 그런 마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없이 어둠에 암흑에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었다.

봄이 오는 게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빠가 쓰러지신 겨울이 한바퀴 돌아 다시 찾아왔고.

이제 아빠 없는 봄을 맞이 하고 있는 요즘.

저들이 저렇게 예쁘게, 활기차게 피어나고 하는 일들이.

내게는 사치같기도 하고.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나사 하나가 빠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이 세상이.

처음에는 많이 원망스럽고 억울했었다.

그냥 먹고 자고 사는 게. 미안했고 너무나 그립다.

 

이제 다시는 그런 얼굴의, 그런 미소의 아빠는

세상에 없는 거다.

그렇게 완전히 잊혀지는 거고. 사라져 버린거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게 어려웠다.

 

달이 휘영청 밝게 떠오를 때마다.

그 곳에서는 아빠, 고통 없이 걱정 없이 편히 쉬세요.

그렇게 했던 기도를 또 반복하고.

우리를 내려다 보고 쓴웃음을 지어보일 아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러나 곁에 없음은 너무 컸다.

무엇으로도 보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은 우리의 몫이 어서 일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손짓한다.

어기적 어기적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삐걱대며.

그나마 나는 일 없이 지내서 다행인 건가.

아니면 자꾸 떠오르는 이 생각을 잊을 수 있게 일을 하는 게 다행인 건가.

우리는 모이면 아빠 얘기를 한다.

주로 우스꽝스럽던 시절의 아빠 얘기를.

허망했던 일화들을 끄집어 내서 다같이 웃어버린다.

웃음이 눈물을 지워내 버릴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꽃이 우리네 삶을 보여주고 말해준다.

덧없기는 해도 그 순간 너무나 아름다운 거라고.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면.

행복할 거라고.

그렇게 내게 속삭여 주는 것 같다.

 

우린 언젠가 끝을 맞이 하게 될 그럴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새삼스럽게 헤어짐의 순간에 질척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제 그런 상황이 오면 마음이 마음같지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아빠를 떠나보낼 준비를 할 시간이 많이 주어져 있기도 했다.

아빠는 급작스레 가시기 보다는.

병환으로 누워 지내며 우리에게 생각을 정리할 틈을 주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잦은 면회도 허락되지 않고.

상주보호자가 없는 공동간병.

그렇게 차가운 침대에 아빠를 맡기고 돌아오던 날 저녁.

무겁게 가라앉은 집안의 공기.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흠칫 하고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마음놓을 수 없었던 순간들.

이제는 다 먼나라 얘기 같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그냥 꿈만 같다.

다 거짓말이라고.

아빠는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두 손에 치킨을 들고 퇴근하실 거라고.

그렇게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슬픔이 전혀 마모되지 않은 채로.

나는 또 눈꼬리 끝에 물기 밴 얼굴을 하고.

아빠 사진을 마주하고 있다.

 

살짝 웃어보이는 얼굴.

전주에 갔을 때 찍은 가족 사진인데.

우연히도 흑백 사진관엘 가게 되어서.

남은 마지막 가족 사진이 흑백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 때부터 짜여져 있던 걸까...?

 

이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빠의 병상에 이 사진 붙여놓고 

아빠가 눈을 뜨시기를.

이 사진을 보고 힘을 내시기를.

정말 많이 빌고 기도했었다.

 

이제는 걱정되는 마음도 증발하고.

순수한 슬픔만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평온을 가장한 우리의 일상이.

너무 차갑다고 느껴진다.

울지 않아야 하는데.

이제는 툭 건드려도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그저 가슴 속에서 지글지글 눈물이 끓고 있을뿐.

이 예쁜 꽃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난 아빠여.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나요?

우리 걱정일랑 마시고.

부디, 편안히.

봄마다 피어나는 이 생명들을 보며 당신을 추억할게요.

순간이지만 영원과 같았던.

아빠라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들.

고이 모셔 두었다가 우리 다시 만날 그 날에 펼쳐 보일게요.

아직은 그 때가 오지 않았어요.

시간 여유를 좀 주세요.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지 못한 일도 많아요.

 

 

누군가가 그립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그렇게 마음속에 오아시스 하나씩 두고 사는 거겠지.

퍽퍽하고 고된 삶에 지칠 때면.

슬쩍 꺼내어 보고 힘을 얻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 아빠.

당신의 형체가 사라지고 내 곁을 이리 일찍 떠날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괜히 감성적이 되는 아침에.

주절주절 써내려 가는 사부곡.

 

아빠가 살아 온 방식 그대로.

딸내미가 그 역사 되짚어 내서 온전히 살아낼 테니.

부디부디 온갖 걱정일랑 다 접어두시고.

남은 가족들 믿고 그저 열심히 응원해 주시라고.

전해질 수 있다면, 그리 말하고 싶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이 마음을 생전에 자주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아.

그래도 웃는 사진이 많은 걸 보니.

아빠는 참 행복하게 사셨구나.

다 고장난 몸을 삐걱삐걱 이끌고도 지금까지 

어렵게 힘들게 사셨구나.

그걸 알아채지 못해서 죄송해요.

 

못난 딸은 오늘도 물기 어린 눈 반짝이며.

아빠를 위해, 또 남은 우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위대한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요.

 

하얗고 노랗고 하는 꽃이 지면.

그저 쓰레기가 되어 버리지만.

우리가 순간 보고 즐기고 느낀 모든 것들은 영원할 거에요.

꽃잎처럼 왔다 스러진 귀한 생명의 가치를.

이따금씩 느낄 때마다 더는 울지 않고 꿋꿋하게 지낼 수 있도록.

벌어졌던 마음을 다시 꽁꽁 싸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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