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은행은 제철이 제일인 것이었다
되도록 제철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요새. 동생의 기침 가래가 심해진 듯하여.
엄마의 걱정 더듬이가 쉬지 않고 움직여.
찾게 된 로컬 마트이다.
다행히도 은행이 아직도 진열대에 있기에 낼름 집어왔다.
한 봉지에 5000원. 가격도 양도 착하다.
분명 만져보았을 때도 단단한 것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집에와서 까보니 이게 웬 걸.
먹을 거리 보다 까서 버릴 거리가 더 많다(T.T)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실망...)
하여튼 대충 까서 정리하고
프라이팬에 카놀라유 듬뿍 두르고 돌돌돌 구워서 먹었다.
평소보다 악독한 쓴 맛이 +50 상승하였다.
빛깔도 연두연두 푸르른 것이 아니고 누리끼리 해서 기분나쁜 색깔.
일단 너무 써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문득, 이렇게 쓰고 맛없는 은행을 애초에 누가 먼저 먹기 시작한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설마 허준 선생님이신가?!
그 분이 약의 효험을 알기 위해 온갖 약재료를 본인 몸에 실험하며
체득한 경험이신가?!
흐응. 동물도 은행 냄새가 역해서 근처에도 안 간다던데.
인간은 참 재미있는 종족이다.
굳이 먹지 말라고 두꺼운 껍데기에 자기 몸 숨기고 사는 은행인데.
게다가 위협적인 냄새까지 대단한데.
왜 이걸 열심히 채집해다가 주워다가 구워서 먹고 있는 건지.
그래도 이거 한 3개월 먹은 것 같은데.
가래가 놀랍게도 많이 줄었다.
맨날 켁켁대기가 일상이었는데.
가래 끌어모으기도 그만두었다.
역시 음식으로 몸을 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기는 해도 말이지.
아침일찍 아빠 유택 보러 추모공원엘 다녀왔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지만.
그냥 제사 전에 아빠를 한 번 보고 싶었던 우리가족.
그래도 아빠 자리 맞은 편에는 창문이 있어서 계절의 흐름이 다 보인다.
그걸로 조금은 만족 하셨을까나.
아침부터 요란했다.
안 입던 옷, 안 신던 구두. 평소에 안 매는 가방.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
게다가 신발은 취업 준비할 때 아빠가 사주셨던 거라서.
왠지 아빠랑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설레는 발걸음이었다.
어제는 오늘 비가 온다고 예보가 들어와 있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늘도 새파랗게 맑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아빠만 없다.
그 사실이 우리를 꽤나 슬프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저 한 그릇에 들어가기 위해
죽을 동 살 동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굉장히 허무해지는 발언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모든 것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건데.
나는 뭣이 그리 바쁘다고 지금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늘 뒷전에 두고.
책 보고 공부하고 그러고 살았나.
사실 시험 며칠 앞두고 하는 소리 치고는
되게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공부보다 더 빛나는 소중한 경험이 삶에는 많고 많다.
혹시 너무 공부에 바빠서 그런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돌이켜 봐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영어라디오를 듣다가 엄마가 주방에서 부르는데.
날카롭게 대답했던 적이 있었다.
동생이 바쁘게 하던 일 멈추고 나와 대신 엄마 부탁을 들어주었었지.
나중에 누나는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조용하라고 소리질러가며
그러느냐고. 한 소리 듣긴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참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별로..........
그래도 노력 중이다.
아빠 한테 못했던 것보다 더. 어쩌면 엄마께 더 잘 해드려야 하는 건데.
말은 쉬운데 일상에서의 실천은 참 어렵다.
은행사러 로컬 마트 가는 길이 워낙 땡볕이라.
짜증도 나고 발걸음도 무겁고 그랬는데.
우스개 소리 하며 잘 갔다왔다.
비록 결과물이 엉망진창이었을 지라도 말이다.(크왕!!)
아빠는 맛없는 은행 맛있게 만들어 주기 위해 소금도 뿌리고
어르고 달래가며 나에게 은행을 먹였었다.
은행이 맛이 없고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투정하는 내게.
[컴퓨터 맨날 하니까 그렇지.] 라며
온갖 이유를 컴퓨터에 갖다 붙이는 엄마도 곁에 계셨었다.
요즘은 많이 줄어든 말인데.
[엄마 어깨가 아파.]
[엄마 소화가 안되는 것 같은데.]
[아 요즘 피곤한데?]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전부 [컴퓨터 때문]이었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정도로 컴퓨터를 오래 하지는 않으니까.
자연스레 그 말이 나오는 빈도가 줄었지만.
내 부적절한 행동의 이유가 되어주었던 컴퓨터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대신 혼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엄마는 내가 컴퓨터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안좋았나 보다.
하긴 아침에 켜서 밤에 끄는 생활을 했으니.
그것도 좋지 못한 자세로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물론 공부때문이었지만, 쨌든 매우 좋지 못한 습관이었지.
밥도 컴퓨터 앞에 앚아서 먹곤 했었다.
그런 때가 있었구나 바보같이........(허허)
내가 공부를 미룰 수록 내 행복도 미뤄지는 것 같아서.
겁나서, 그렇다고 전적으로 매달릴 수는 없어서.
지금은 이것저것 완충장치를 해놓는 바람에.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전보다 줄었지만.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어째 삶은 더 풍성해 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올해는 이런 식으로 공부 일정을 굴려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지방직 공시 마치면 다시 임용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굴러가는 대로 굴리지 말고.
방향부터 제대로 잡고 굴리고 싶었는데.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아빠께 열심히 하겠다는 말 하고 왔다.
우리를 그저 편안하게 지켜봐 달라고 말씀 드렸다.
엄마는 울먹였지만.
나는 말을 꺼낼 때까지는 희한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
근데 말을 입밖으로 내뱉으려 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하필이면 왁스가 부른 어머니에 대한 서글픈 노래가 흘러나오더라고.
진짜 눈물 콸콸 쏟을 뻔하는 것 참고 참았다.
동생이 내가 우는 걸 너무 너무 보기 싫어해서 말이지.
오늘의 대장정은 이쯤으로 하고.
이제는 아빠가 우리한테 오실 차례.
한 상 거나하게 차릴 테니까.
헤매지 말고 곧장 와야해요.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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