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재래시장에 커빙바가 있는지 모르겠다.
멋있게 말해서 커핑바이지 사실은 차수레 끌고 다니는
기본 10년 이상 경력인 아주머니들.
시장 사람들의 아침 정신을 책임지는
시장의 터줏대감 커빙바.
물론 현란한 프림섞기를 구경하는 건 기본이고.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수원 남문 시장 갔을 때.
엄마 앞치마를 사러 다죽은 상권을 지나칠 때
그 때 발견했다.
와 저기서 율무차 같은 거 사 마시면
율무가 훌라댄스 출것 같아.
그런 느낌.
정부지원으로 무대를 만들어서
가끔 축제를 한다거나 방송출연을 한다거나
하기는 하지만 활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정말 오래된 재래시장인데
뽀야 어렸을 때 매번 여기까지 나와서 옷도 사고 예쁜 핀이나
장신구를 사던 단골 가게가 이미 방을 뺐고
그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잡화점이 자리를 다시 잡았다.
추억이 이렇게 쉽게 지워지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고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데
내 기억 속 장소가 그대로이길 바라는 것도 욕심인가 싶고.
어쩌면 우리가 살던 집이 변해버린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보다는
그저 생활하는 사람들이 벌이 때문에 쫓겨나지 않고
그자리 그대로 장사하고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1차적인 죽은 상권 살리기 전략이 아닐까 싶다.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흩어졌던 사람들도 다시 모이게 되고
북적북적 옛느낌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를 불편함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현대화 시켜서 더 낫게 만드는 것도 좋고
청년 사장님들이 늘어나서 상권의 평균연령이 내려가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요창출인데
사장님들이 아무리 고민해 봐야 한계가 있고.
거리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는다면
상권이 사는 건 둘째치고 외부인들을 작은 거리로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의 새로이네 가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거리의 분위기와 활력이 반은 먹고 들어갔다.
또 그렇게 문화의 거리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가?
분명 가능하다.
그래서 벽화를 그리는 사업에 대해
동네주민들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된다는 전제 하에서
도시 재생 사업이 활기를 띠고 찾는 이 반기는 이가 모두
웃을 수 있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커핑바의 현란한 기술과 아지매들의 입담이 더해져서
근사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루와 물로 기적을 일궈내는 수많은 커핑바 사장님들이
힘내셨으면 좋겠다.
축 처진 어깨를 보면 왠지 내가 더 슬프다.
코로나 19로 자영업 하시는 소상공인분들이
많은 어려움 겪고 계시는데
이 어려운 시기를 꾹 참고 잘 버텨내셔서
좋은 날이 오면 다시 웃게 되기를.
그 때가 되면 보릿고개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듯이
참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