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저기 동해바다의 넘실대는 파도를 가른다고?
아~ 서핑을 즐기시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셨을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엄마는 그저 파를 가르고 있다.
사실 그걸 노린 표현이긴 했다.
요즘에 부쩍 파마늘,참기름,깨소금
이런, 음식에 마무리 하는 법을 자꾸 깜박 하신다.
[아차! 참기름 안 넣었다~]
[이런, 깨를 안 뿌렸네!]
아이쿠야......!
뭐 크게 넣지 않아도 상관없기는 한데
그래도 가끔 예민한 아빠는
뭔가 맛이 없다며 불평도 하고 그랬었다.
그래도 엄마가 파를 가르는 모습은 정말 자주 봐왔었고
뽀야는 파를 가위로 썰지만
언젠가는 도마와 칼을 가지고 능숙하게 썰 수 있겠지.
하는 초 낙관적인 생각을 해본다.
사실 사과를 껍질째 썰다가 손가락 한 마디 날려버릴 뻔한
응급실 사건 이래로 뽀야는 도마칼과 멀어진 상태.
그날의 차가웠던 응급실.
저녁때쯤 끊임없이 아이 우는 소리가 나는
소지옥 같은 약냄새.
초조한 발걸음, 팔목에 이름,생일이 적힌 팔찌.
다신 가고 싶지 않다.
[조금만 깊었으면 위험했네요.]
[꿰매지 않아도 괜찮아요.]
정말 다행이었던 그날 이후
칼쓰기를 멀리했는데
그러다 보니 요리로부터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애초에 적극적으로 다가갈 생각 없었음(...)
뽀야가 관심있어 하는 건 뭘까?!
뽀야의 성별과 연관짓자면 정말 관심있는 게 없다.
그렇다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있지?!
그래서 뽀야는 속으로 깊어지기로 결심했다.
내 삶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고민이라면
차라리 좁고 깊어지자고.
근데 문제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데 있다.
그래도 요즘에 다시 독서에 불이 붙어서
저녁시간마다 행복하게 보내고 있기는 한데
문제는 또 눈이다.
그래도 얼마전까진 잘 보이던 것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기분탓이겠지.
그런데 정말 안 보여!!
뿌옇게 보이고 정확하게 뭐라고 읽어낼 수가 없다.
그간 인터넷 강의를 열심히 보느라
눈과 허리 목을 다 내주었다.
이제라도 조금씩 고쳐가고자 하는데
몇 십년 박인 습관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조금씩, 해보자.
파를 수 백번 갈랐을 엄마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