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석은 물건 중의 물건.
흔히 효도 비디오라고 불리는 영상 재생 기구이다.
버튼을 보면 라디오도 되고 음악도 된다.
번호는 따로 들어있는 수록곡 목록표에 적혀진 숫자에 의한 것이다.
이 효도 비디오가 우리집에 오게 된 건 7월의 어느날이었다.
아빠는 아직도 위독한 상태.
혹시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주면 의식을 찾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셨을 거다.
큰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내 두 손에
효도 비디오를 건네주며
부탁을 하고 또 부탁을 하고.
아빠 꼭 좀 틀어드리라고.
그런데 기계음이 즐비한 아빠 병실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혹시 모를 작은 신호를 잡아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병원에서는 효도비디오 반입을 거부했다.
아빠 듣고 보시라고 사다 주셨는데
그 노력을 매정하게 거절 당하는 것 같아서
처음엔 기분이 많이 언짢았었다.
하지만 중환자 앞에 놓고
그저 기도만 하라는 저들의 생각에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었다.
그것도 원격으로.
원격 기도 들어봤는가?!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도 채 5번도 못하고 그렇게
아빠의 생이 멈추던 그날까지 포함해서 5번도 하지 못한 면회를.
평소 좋아하시던 노래 한 자락 들려 드리지도 못한 채로.
우리가 병원을 떠나자 면회가 재개되었고
장난 같았던 면회 게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 효도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큰 아버지는 어떤 심정으로 가게에서 이 제품을 고르고 또 비교하고
뭐가 좋을지 선별하고 그랬을까.
그 간절한 부탁을.
보호자는 따스한 한 마디를 바라는데
안부전화 걸때 마다 일부 차가운 목소리들은
잘 때 쭉 발 뻗고 잘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한가?
우리는 앵무새 같은 말을 해대는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자동응답기 같은 사람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걸 단념하고
또 많은 걸 그리워 했다.
지나가면 다 추억이라지만 내 추억 속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80%가량 억울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효도 비디오 반입의 문제를 떠나서
말 한 마디 따스하게 주고 받지 못했던.
뽀야가 나이가 어리다고 판단해서 그랬는지.
하대하듯 가르치듯 내게 되묻던 당신의 차가운 말투를
나는 오늘 밤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요즘 병원의 실태에 대해 많이 보도가 되고 있는데
보도 내용은 실제 상황의 반도 못 담아내고 있다.
병원이라는 곳에 가게 된 운명도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정신줄 놓지 않고 화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던 보호자의 심정을
그들은 알까?
아무리 어려도 부모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일반 어른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로 인해
매일 누워서 창으로 찌름을 당하는 것 같이 괴롭고
어디에 털어놓기도 애매한 이 마음을
그저 삭혀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장은 삭히면 맛있기라도 하지.
우리의 애끊는 이 마음은 뭐로 전환 되나?
빨리 씻어 내지 못한다면 이 또한 병이 되겠지.
휴일날 통화에서
아빠 이름 석자를 거리낌없이 불러대며
걔 또 전화헀냐?는 식으로 웃고 떠들고 하던 당신을
난 잊지 않을 거예요.
아마 공휴일이라 대체인력이 들어와서 그렇게 허접하게
병실을 지키고 있었겠지.
의식 있는 나에게도 무례했던 그 사람은
의식 없는 아빠에게는 어떻게 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이다.
우리가 직접 돌볼 수 없이 위중한 환자들은
그저 의료진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종착역이란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분명 알아둘 필요가 있는 말이라 해주고 싶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죽게 될 거예요.]
[죽음 앞에서 존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야 될 거예요.]
위기 가정 속에서의 간절한 매일의 기도를
안다면 그리 하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
지금 오늘도 누군가는 호흡기를 매단 채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삶의 문턱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정에서 나오는 따뜻한 위로와 포옹이다.
뽀야는 직접 만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전화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안 좋은 일은 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들 하는데
뽀야는 마음속 추억 앨범속에 잘 보이게 꽂아놓고
수시로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떠올리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죄를 미워 해야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며
누르고 꾹꾹 눌러서
이미 한 장의 잡념이 되어버린 그 원망을
팔랑 거리며 손에 들고
웃을 수 있다.
이렇게 되기 까지 참 많은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아직도 치유는 완성되지 못했다.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다시 눈물이 비집고 흘러내리려 하기에
뽀야는 눈물 떨구는 대신 고개를 처들고
오늘도 환하게 웃을 것이다.
이미 한 장의 원망 잘 참고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BGM - 내가 웃는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