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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일기

20200622 편지 3

by 뽀야뽀야 202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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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야 손끝을 떠나 아빠 무릎맡으로 전달되는

사랑의 하늘 편지. 오늘로 세 번째 편지네요.

 

부쩍 날이 더워졌어요 아빠.

다들 짧은 옷차림에 정신 없어요.

뽀야는 수족냉증이 있어서 더워도 짧은 옷차림 못하는 거

또 집에서는 그런 모습 잘 안 했던 거 기억하세요?

뽀야 점점 건강해지나봐요, 아빠.

차갑고 얼음장같던 손끝에 온기가 돌고요.

서늘했던 발목에도 열기가 돌아요.

하긴, 요즘 낮에 35도까지 오르곤 하니까.

게다가 아빠 아프시게 된 뒤로는 

하릴 없는 저희 모녀는 아파트 단지를 하염없이 걷곤 했어요.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말이에요.

물론 아빠 얘기가 절반이 넘지만 말이죠.

집 근처에 성당이 있어서 곧잘 기도하러 갔었어요.

그 곳에 빛나는 성모상을 보면서 얼마나 간절했는지......

아빠, 그날 오후에 나가시기 전에 

뽀야 밥상 둘러보시고는 "그래! 이렇게 먹어야지, 뽀야 너는 참......"

그날 밥상에 다시마랑 맛간장이 있었었죠.

아빠께서 처음으로 제 밥상을 인정하시던 순간이었는데.

매일 인스턴트에 레토르트 식품만 먹는 애기 입맛 뽀야를 걱정하셨었죠.

"뽀야, 너는 오늘도 빵이냐?"

"뽀야, 면 너무 자주 먹는거 아니냐?"

이런 말씀도 이제는 들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왜냐면요, 뽀야 입맛 교정에 들어갔거든요.

이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먹으려고해요.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많이 느꼈기 때문이에요.

파리바게뜨에 가면 단팥빵하고 소보루빵만 가득 사오시곤 했었는데.

딸내미 생각해서 크로켓빵이랑 슈크림빵도 좀 사다 주시지.

속으로 투정도 부렸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 몸에 안좋은 거 내가 다 먹어서 없애야지.'

아빠, 우리 가족 생일일 때마다 사오시던 케이크.

이제는 뽀야가 사서 나를게요.

기념일 챙기는 거 저같은 여자애들은 굉장히 의미 있어 하거든요.

그래서 아빠께서 기념일 챙기시는 거 잊지 않기를 바랐는데

평소에는 잘도 잊어버리시다가 요 몇 년사이 

두 손에 케이크와 봉투를 들고 들어오시는 날이 많아졌죠.

아빠와 웃으면서 케이크 자르고 시시콜콜한 얘기하면서 보내던 

알고보면 소중했던 날들.

어떻게 다 지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하면 가슴에 묻어지나요?

아빠의 낮시간은 온통 뽀야 차지였는데.

노곤한 몸 이끄시고 집에 오셔서 식사 자리 같이 하고.

TV 보시다가 푹도 못 주무시고 옆으로 불편하게 누워

선잠 주무시고,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에 놀라 깨어나시고는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하시던 그 모습.

뽀야가 잊을 수 있을까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가족을 위해 새벽이건 밤이건 손님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일 밖에 모르셨던 너무나 성실했던 우리 아빠......

뽀야가 맘만 먹었으면 어디 좋은 곳에 모시고 갈 수도 있었는데.

매일 일만 하시다가 딸내미가 깎아주는 과일 한 접시도 못드시고.

뽀야 칼 쓰면 허접해서 위험하다고 손수 깎아 드시던 과일이 자꾸 떠올라요.

그렇게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셨는데.

뽀야 손으로 과일 한 번 사다 드린 적이 없네요.

아빠께서 어떤 마음으로 건네셨을지, 항상 과일 드실 때마다

"뽀야, 한 개만 먹어라~"

하시던 말에 뽀야는 귀찮다는 듯이 "아, 나 과일 안먹어~"

하며 방문 콩 닫고 들어가버리는 뽀야가 얼마나 야속하셨을까.

사실 아빠 계셨을 때는요, 뽀야는 방문 닫는게 죄송스러웠어요.

요 근래 "아빠, 저 집중이 안되서 문 닫고 공부할게요."

라고 말씀 드리곤 헀는데,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쓸쓸한 거실에 홀로 앉아 TV랑 말동무 하면서 터벅터벅 

힘든 발걸음으로 홀로 러닝머신으로 운동하시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일으켜 다시 일터로 향하실 때 

뽀야 방해될까봐 빼꼼히 방문 두드리며 

"뽀야, 아빠 간다~~"

라고 귀엽게 갈길을 재촉하시던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볼 줄도 모르는 가여운 딸 뽀야였어요.

다 때려치라고, 되지도 않는 공부 해서 무엇하냐고.

그런 말씀 한 번도 하질 않으셨어요.

이제와서 보니 이 공부는 정말 거대한 인생 앞에 아무것도 아닌 

헛공부였어요.

내 손을 떠나면 그냥 그만인, 그런 가치 없는 집착이었어요.

아빠는 공부하는 뽀야를 자랑스러워 하셨었어요.

그렇게 뽀야를 존중해주시는 아빠께 너무 감사했는데.

바보같이 표현할 줄 모르고 살았어요.

언젠가, 뽀야가 너무나 보여드릴 게 없어서 

아빠, 이런 딸이 뭐가 자랑스럽냐고 투정부리니까.

아빠께서는 말 없이 뽀야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아빠는 뽀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그런 소리 하지마."

그 말씀이 자꾸 떠오르면서 

손에 잡은 펜이 자꾸 떨려서 하얀 종이에 아빠 이름 덧그려 보기를 수십 번씩.

아빠 친구분께서 눈물 가득한 새빨간 얼굴로 

뽀야 두 손 꼭 잡으며 오열하시던 그 모습.

"야, 이녀석아, 너희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아빠, 이제야 알아요.

아빠의 깊고 깊은 사랑.

뽀야라는 가벼운 티백을 밑도 끝도 없이 품어주시는 거대한 머그잔이신 우리아빠.

참 따뜻했어요.

입술에 닿을 때 참, 사랑스러웠어요.

나른한 오후, 홍차랑 초석잠차를 마시면서

아빠를 떠올리곤 해요.

따뜻한 머그잔에 입술이 닿으면 아빠가 생각나요.

저기, 거실 맞은편에 앉아

뽀야를 헤실헤실 바라보며 과도랑 과일 챙겨 곁으로 오라는 아빠 모습이 

거기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 뽀야 언넝 토끼사과 깎는 법 배워서 보여드릴게요.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토끼이빨 뽀야 떠올리시며 

"녀석도 참, 여긴 덜 깎였잖아......"

하시면서 제 머리 툭툭 쓰다듬어주실거라 믿으며.

오늘도 눈물 한 웅덩이 그려내는 뽀야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아시죠?

뽀야를 기쁨에 넘쳐 울게 하는 사람은 아빠 뿐이에요.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보내며, 첫째 딸 뽀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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