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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2021 김남길 사진첩 감상기 32

by 뽀야뽀야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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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페이지는 페이지 가득히 남길의 휘둥그레한 모습.

서로 마작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게임 조각이 흩어져있는 탁자.

한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뭔가를 가리키는 남길이다.

[딱 봐도 네가 졌구만~]

이런 대화라도 오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보드게임은 정말 재미있다.

보드카페라는 곳도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부루0블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야외에서 여럿이 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체육은 젬병이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상대에게서 발견하면

푹 빠져버리곤 한다.

부러움과 질투, 동경의 어딘가쯤에 있다.

운동장의 농구골대가 쉰 적이 없던 여중 시절.

친구는 공을 좋아했다.

공이 없어도 골대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치 공이 있는 듯이 슛 자세를 해보이는가 하면.

점프도 하고 드리블도 하고 그랬었다.

우리는 교복으로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친구녀석은 바지를 입었었다.

그게 편하긴 하지. 쩍벌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하도 학생들이 쩍벌을 하니까. 교탁에서 보기에 흉했는지.

가정시간에 실습한 앞치마가 있었는데.

그걸 책상에 두르게 시키더라.

그래서 앞치마 속에서 다리 자세가 더 개방적이 되었지.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재밌는 건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껴입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기피 대상 1호 차림이다.

체육복의 색은 주로 붉은 색으로 현란하여 눈에 좋지도 않다.

교문에서 걸리면 바로 벗어야 돼서 불만이 가득했었지.

하지만 스타킹으로 버티기엔 언덕 위의 학교는 칼바람이 쌩쌩불고.

아니 왜 학교들은 다 등산하는 거리에 위치한 건지.

덕분에 다리 알이 튼실해졌다며 매점에서 웃고 떠들던 가시내들.

매점에서 팔던 정체불명의 피자빵을 잊을 수 없다.

그거 하나 먹으려고 추운 날 언덕길을 내지르며 달리곤 했었는데.

 

여학교의 매력은 차고 넘치는 것 같다.

골때리게 재밌는 아이들도 많았다.

우리 학교는 무용반과 현악반 합창반이 뛰어났다.

예술학교도 아닌 일반 미션스쿨인데.

생각해보니 되게 현란하네?!

지금은 학생 수 감소로 공학이 되어버렸지만.

교육실습 때 찾은 학교에 오랜만에 가보니

선생님들 다 그자리에 계시더라.

사립이라서 그런 듯 했다.

학창시절에는 말도 없고 조용조용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던 내가.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 실습을 하러 왔다하니 

얼마나 어이탈출이셨을까.

그래도 재밌게 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출신교에는 과목 자리가 없어서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실습을 가긴 했지만.

걸어서 5분거리.

같은 구역 안에 위치한 중학교와 고등학교였다.

 

생각해보니 스승의 날 같은것도 잘 못챙겨드린 것 같다.

하긴, 기념일 챙기는 데 서툰 나라서.

뭘 생각하고 사는 지 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뭐가 바쁘다고 허둥대며 사는 건지.

남길은 학창시절에 이쁨 잔뜩 받는 학생이었을 것 같다.

적극적이고 활달했을 것 같아서.

마의 사춘기를 잘 넘겼을까?

여학교만 다녀서 남자들의 심리는 잘 모르겠다.

대학에 갔을 때는 과 생활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어서.

남자 대 여자 같은 느낌이 아니라 사부와 제자 같은 느낌이었어서.

 

드럼을 가르쳐주신 오빠는(동아리 규칙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와서 우리 연습을 봐주시던 친절하신 분이었다.

나의 어이없는 질문에도 하나하나 답을 찾아주셨다.

하루는 드럼 킥 밟는 게 어려워서 물었더니.

직접 신발 벗고 양말신은 채로 계속 발 동작을 보여주셨었다.

그런 열정에 나도 지지않으려고 열심이었던 것 같다.

그대로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그랬으면 그림이 재밌어 졌으려나?

하지만 그 때 나는 감정이 쏙 빠진 바삭바삭한 상태였다.

오직 드럼에 대한 열정만이 가득했지.

뭔가를 배운다는 게 참 즐거웠었다.

실제로 동아리 대선배 중에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사부님에 가까운 드럼오빠를 

그런 대상으로는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딱 맞춘 교본대로 연주하기 보다는

내 흥에 겨워 연주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래서 기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운해 하지 말라고

나를 감싸주시던 동아리 드럼 언니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언덕길에 자전거 사고가 났을 때도 

잽싸게 달려가서 지혈제와 반창고를 사주고

나를 금이야 옥이야 걱정해주신것도

동아리 언니였다.

대학 생활을 앞두고 있거나 하는 중이라면

동아리 활동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코로나라서 합숙이며 모여서 연습이며 많이 어렵겠지만.

 

그 시절에 어렴풋이 알던 남길을 더 깊게 알았다면

무대인사도 따라다니고 영화 N차 찍고 그랬을 것 같아서 무섭다.

실제로는 밴드에 빠져서 공연보러 여기저기 쏘다니고 그랬었지.

그 당시 내 용광로에서는 밴드음악이 불타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식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자주 즐겨 들으니.

 

얼마나 드럼을 사랑했으면 

아빠가 드럼을 사줄 생각을 다 했을까.

근데 죽도록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면

관심이 멀어져 버리는 것은 왜일까.

결국 빨래 건조대로 쓰이다가 내 곁을 떠나버린

전자드럼처럼 말이다.

아끼는 걸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남길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

어려운 길은 더 걷고 싶어 지잖아.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지.

 

남길의 눈이 조금 퀭한 거 같아서 무섭지만.

흰자가 푸른 빛인 나와는 달리 남길은 참 하얗구나.

계란 도 청계란같은 건 푸르스름한데.

내 흰자가 그렇다.

흰자는 희기에 흰자 아니었던가?! 

왜 하얗지 않고 푸른빛이 도는 거지..?!

조금 무서운 눈을 하고 있는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작아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안경벗은 김에 눈 지압이나 좀 해야겠다.

눈 건강 챙기면서 남길 애정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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