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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do

26.우리집 미용사

by 뽀야뽀야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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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내 앞머리는 엄마가 잘라주게 되었다.

나는 미적 감각이 둔한 편이고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에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도 편하게 내 머리를 만져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을 줘서 그런지 몰라도

일명, '사랑이 앞머리'가 되어버린 적이 있긴 했다.

너무 짧게 치다보니 눈썹위를 훌쩍 웃도는 앞머리가 되어버렸지.

근데 그건 그 나름대로 또 유행을 선도했다.

학교 다닐 때 일인데 나의 짧은 앞머리가 상큼하다며 

너도 나도 다 앞머리를 내곤 했으니까.

여자아이들이란 다 그렇지.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부러움이 심하고

별거 아닌 일로 질투도 하곤 하지.

근데 그런 모습이 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타고난 것 같다.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먹었어.

어느정도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다움'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나는 그것에 거역한다.

무엇이 여자답다는 말인지?

눈물 흘릴 때 조용히 주머니에서 손수건 꺼내는 것?

방에 조용히 앉아서 바느질 하는 것?

손을 70도 각도로 올리고 입을 가리고 웃는 것?

글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파란색. 

이것도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다.

나라면 노란색을 원했을 거라고.

그런 아기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자아이니까 분홍색을 입혔을테지.

요즘은 또 아닌지 모르겠다.

주변에 아이가 없어서.

아무리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다지만 어떻게 앞머리 얘기에서

성별얘기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지 

나도 신기하다(푸훗)

어제 손에 로션을 바르지 않고 자서 그런지 몰라도

타자치는 손등이 무척 땡긴다.

사소한 습관하나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거.

알고 있는데도 실천이 어렵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앞머리는 

솔직히 아트이다.

얼마전에는 숱가위도 마련해 두었다.

뭐가 얼만큼 더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봐도 잘 잘랐다고 얘기하시는 것 보면

자부심 조금은 뿜뿜?

인정한다. 엄마는 센스가 있어.

쥐 파먹은 머리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가게에서 자른 느낌이 충만한 것이

미용실에 갔을 때도 집에서 앞머리 잘랐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는 척 해주었지.

미용실 언니들의 친절함은 과하면서도 센스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전부 천을 앞에 두르고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털어놓게 되는 게 아닐까.

요새는 앞머리 자르는 데도 만원 들고 가봤자 얼마 안 남는다.

만원이었던 헤어커트도 어느새 만 오천원~만 육천원이 되었다.

하긴 자릿세, 전기세, 인건비 하면 뭐 남는 거 없겠지.

그런 면에서 엄마가 자랑스럽다.

영구 무료 커트권을 확보했다.

 

엄마가 가위를 들지 못하는 날들이 오면

내가 엄마가 나에게 했듯이 아름답고 멋지게 

엄마 머리를 잘라 드릴 수 있도록 

미적 감각을 키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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