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이 많이 좋아졌고
집에서 운동하기에는 전기세도 많이 들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산책을 하게 됐다.
물론 마스크는 꼭꼭 착용하고.
이 단지가 나무가 많다.
그래서 걷고 있자면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꿈에 그리던 그런 동네라고나 할까.
햇살이 나무에 걸려서 쫙 바닥에 흩뿌려지면
그 반짝임이 너무나 아름답다.
엄마와 나는 두팔 간격으로 걷는다.
새소리가 나는 것은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신호라고
누군가 그랬었다.
어떤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고 이렇게나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귈까.
때론 모든 게 동화 속 일들만 같다.
지긋지긋 했던 현실도 그저 동화처럼.
삶은 멀찍이서 바라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다.
라는 말도 있었지.
우리가 산책할 수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
식물들이 이렇게 우거져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그네들은 나무런 대가도 없이 숨 쉬어 산소를 내뿜고
아름다운 빛깔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동네 강아지들의 쉬운 희생양이 되며
몇 번이고 밟혀도 꿋꿋하게 자라는 들풀이 된다.
삼림욕을 좋아한다.
산 속에 들어가면 공기부터가 다르다.
정상으로 향하면 향할 수록 모든 것이 아름답다.
이마빼기에 땀 한 방울.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숲을 볼 줄 안다.
나란히 나란히 붙어 서서 작은 숨 고르며
서로 부대낄 때
울려퍼지는 사라락 사라락 나뭇가지 소리.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털어내는 나무의 비명.
찰찰찰 맺히는 나뭇잎 기지개 펴는 소리.
마트에서 온몸이 대강 잘려진 채 본인의 몸보다도 작은 화분에
꽉 낑기어 전시되어 있는 꽃나무들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저렇게 해서라도 기쁨을 주고싶은 게 너희들 모습이구나.
해서 반갑기도 하고.
산책길에 있는 조그만 농원이 손님 없이 운영되는 것이 버거워 보이기도 하고
몇 달 전에는 우리집 고목이 분갈이 하려고 꼭대기층에서 저 아래 농원까지
끌차 끌고 낑낑대며 계단을 내려왔던 기억도 있는데
그 순간 숨통이 좀 트였을까.
영양제 돌멩이를 깔아 줄 때 조금은 기뻐 했을까.
네가 이 봄에 다시 소생하여 연둣빛 잎을 뽐내는 걸 보면
그런가보다 싶기도 하다.
즐거운 산책길이 자주 있기를 바라면서
언젠가는 답답한 마스크 벗어던지고
내 입으로 너의 이름을 불러 볼 수 있겠지.
나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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