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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do

39.자리끼

by 뽀야뽀야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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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잠과 싸우느라 

애쓰신 아빠가 떠오르는 

저녁 9:45.

뽀야는 잠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잠에 취해 정신 못차리는데

쏟아지는 잠과 싸워 이기기도 만만찮다.

 

누군가는 오지않는 잠을 청하며 

자리끼를 홀짝홀짝 마시며 

거실을 왔다갔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그런 불안한 초침 소리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무렵에

 

어떤 이는 새근새근 쏟아지는 잠에 취해

허덕이는 이 대조적인 삶이 

한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가 하고 생각해보다가

아빠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가장 이라는 무게가 버거워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몸은 피곤의 비명을 질러대는데 

맑게 깬 정신은 잠재울 수 없고

팽글팽글 돌아가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잠은 저만치 발치에서 데굴데굴.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내가 알 수 없는 삶의 무게.

어쩌면 머리맡에 놓인 자리끼만이 아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빠의 한숨, 고통, 연민을 곁에서 매일 지켜봤을 테니까.

방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오늘도 잠을 청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지겠노라고 위엄떨던 기세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저 조그만 방문을 닫고 

내 세계에 사로잡혀 오늘도 울음소리 없는 울음을 운다.

너희는 내가 지켜줄게. 하고 작은 다짐을 하면서

새벽녘이 밝아 오기 전부터 집을 나선다.

밖이 아직 어둡다.

새벽 찬 공기가 두 뺨에 생채기를 만든다.

가쁘게 뛰는 심장이 오늘 벌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힘겨운 하루의 첫 걸음을 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잘 모르면서 운전대를 잡는다.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수리기사가 올 때까지 어둡고 매캐한 지하 주차장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수리기사가 다녀가고 오늘 처음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세상을 누빈다.

다른 이에게는 발치에 나뒹굴 그럴 거리도 안되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

아빠의 일과를 상상하며 글을 쓴다.

부드러운 의자에 앉아 딱딱한 아빠의 운전석을 그린다.

허리가 쑤신다.

이제는 어째서 아픈지도 모르는 익숙해진 고통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한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룬다.

도돌이표.

어제와 엇비슷한 오늘.

그리고 그렇게 작은 차문에서부터 

또 작은 방문까지.

아빠의 여행은 거기까지.

두발 내려 놓기 버거운 공간에서 

숨 쉬는 것 조차 아까워 하면서 살았다.

흘리는 땀방울이 억울해서 죽기살기로 달려왔다.

이제는 멈춰 서 본다.

그제서야 주위가 보인다.

이미 동은 트고 해는 내 머리위에 있다.

그런데 나는 누워 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야 할 우리 가족 모습이 

멈춰진 채로 가슴에 와 박힌다.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는데.

두번의 기침이 나를 무너뜨렸을 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켁켁 대며 고꾸라 졌을 때

끝난 것이다.

길지도 않은 이런 마무리를 짓자고

열심히 달려 왔던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눈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난 날 바쁘게 살아온 그날 흘려야 했던 눈물을

떨구지 못하고 이제와 차곡차곡 모아가고 있다.

주르륵 중력의 순리에 따르는 눈물은 

아래로 아래로.

내 몸과 마음도 아래로 아래로.

삶의 끝에서 무기력한 나를 어찌할 수가 없다.

내 몸 하나 가누지도 못한 채로 

떠밀려 간다.

머리 맡의 자리끼가 반짝하고 움직였다.

뜨거운 눈시울을 감춘 채로 

다시 방문을 닫고 일어 선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이 

이미 푹 꺼져서 

허공에 매달린 힘없는 팔뚝이 

흔들 흔들 거리고 있다.

이제는 다시 내려와 걸을 수 없다.

뜨거운 열기가 내 몸을 가져가 버렸다.

한번도 아빠의 자리끼를 챙기지 못했던 

바보같은 딸내미가 자리에 앚아 

아빠를 떠올리며 

시간을 재구성해 본다.

매일 아침 페트병에 내 이름이 적혀진 

물을 다 마셔야지 하고 다짐하며

문득 떠올린 아빠의 자리끼.

 

세상 무거운 어깨로 방으로 들어가며

처진 어깨 밑으로 힘없이 들어올린 

자리끼.

그 뒷모습이 시리다.

자꾸 눈 앞에 어른 거린다.

자리끼를 비워내는 일 조차

너무 소중했구나.

잘 몰랐구나.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지금도 스러져가고 있을 

모든 것들을 떠올린다.

여기 큰 별이 하늘로 돌아갔다.

걱정마.

큰 별은 어디서든 널 볼 수 있고

언제나 너를 생각할 거야.

네가 울고 있을 때면 

눈물 먹은 큰 별도 반짝일 거야.

걱정마.

자리끼는 아빠에게 꿀 같은 휴식이었어.

그 순간 아빠는 행복했어.

삶이 어떠했다는 판단은 네가 내리는 게 아니야.

자리끼만 알고 있을뿐.

 

너에게 묻고 싶다.

자리끼여.

아빠의 잠든 얼굴이 어떠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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