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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46.TV대첩

by 뽀야뽀야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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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좀 그만보라 말하는 뽀야와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TV를 보는 엄마.

아니 틀어놓지 않으면 뭔가 적적한 건 나도 알겠는데.

지금은 엄마가 일을 하고 계셔서 오전 타임에는 TV를 

켜두지 않지만 

사실 TV는 바보상자인데.

그걸 마냥 틀어놓고 지내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저릿하다.

그래서 뽀야는 초반에 엄마와 TV를 두고 많이 싸웠다.

하지만 동생은 엄마한테 TV밖에 취미활동이 없는데

TV를 보지 말라는 것은 엄마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하도 뽀야를 설득해서 

이제는 뽀야도 그려려니 한다.

 

저번에 TV백라이트가 고장났을 때.

내심 속된 말이지만 뽀야는 아예 망가져버렸으면 했었다.

TV가 안켜지면 볼일도 없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망가진 TV탓이나 하면서 그 시간에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는데.

거실 TV가 고장나니 안방 TV가 거실로 나오고

그 작은 화면조차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노력을 보고

와, 이건 중독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TV 놓아주는 일 되게 간단한데.

눈 딱 감고 전원 꺼주면 되는데.

하지만 하루의 빈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엄마는 잘 모른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고 기타등등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TV가 함께 한다.

어쩌면 생각을 시작하기조차 버거운 엄마에게

속편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엄마가 그렇게 푹 빠져서 보는 TV 말인데.

매일 보는 루틴이 정해져있는 드라마들조차

엄마에게 각인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자주 보는 드라마인데도 드라마 제목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입에서 뱅뱅 돈다며 제목을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한 두번이 아니고.

심지어 등장인물이름은 전혀 모르고 배우 본명도 잘 모른다.

어떤 과정이 머릿속에서 일어나서 드라마를 보고 이해를 하는 건지.

드라마가 조금 복잡하거나 난해한 내용일 경우에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보고 있다.

눈에 바른다고나 할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는 기억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자식 관련된 것들.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커서.

그 외에 들어갈 자리가 남아있지 않는 건 아닐까.

뽀야의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컴퓨터 하드 디스크 용량이 아주 조금 남은 것처럼.

엄마의 마음 용량도 그정도인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드라마 시험을 볼 것도 아니고 주인공 이름 못외우는 거 그런 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의 절차를 생략해버리게 만드는 바보상자 TV한테

엄마를 빼앗겨버려 슬픈건지도 모르겠다.

뽀야는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우리가 진실로 대화하고 경치를 감상하고 그러는 하찮은 일이

그저 앉아서 마냥 TV를 보는 것보다는 가치있다고 생각하니까.

 

엄마를 TV로부터 구출해내야 하는데.

그러면 엄마의 전부를 빼앗는 셈이 되어버리는 이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내가 원통하다.

더 곁에 있어드릴 걸.

그랬으면 엄마의 적적함을 TV가 대신하는 일은 줄었을 텐데.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뽀야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늘 엄마 곁에 붙어있어도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그런 빈자리를 채워준 게 TV였으니 할말도 없지 뭐.

이제사 엄마의 눈건강이니 정신건강이니 하면서

TV와 엄마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벌이는 뽀야를 보며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뽀야 편이었을 것 같다.

TV좀 그만 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다.

그래도 뽀야.

엄마한테 TV는 뽀야만큼 소중한 거야.

그러니 이번 한번은 넘어가자.

그렇게 말하고 두툼한 손으로 내 볼을 꼭 누르셨을 것 같다.

 

TV 너어. 내가 언젠가 꼭 전원을 꼭 눌러 끄고 말 거야.

엄마의 적적함은 차가운 기계인 너보다 내가 더 

따스하게 채워줄 테니까.

곧 물러날 준비 하고 있으라고!

뭐라고?

그렇게 나오면 나한테서 컴퓨터를 뺏겠다고?!

미칬나 이기?!

함 해보자는 겨?

 

아. 뽀야에게 컴퓨터가 엄마에게는 TV구나.

아휴. 이거 또 복잡한 길에 들어섰네.

엄마의 TV와의 작별기는 더 늦춰질 것 같구나.

세상일이 참 마음같지 않네.

그래도 뽀야는 컴퓨터 하는 시간을 많이 줄였는데

아직 엄마에게는 어려우려나.

한동안은 그저 곁에서 돌하르방처럼 밝게 웃기만 하자.

구멍이 숭숭 나서 외롭지만

엄마한테 TV가 해준 만큼의 사랑을 엄마에게 줄 수 없었던

과거의 시간만큼은 잠자코 봐주자 TV.

 

비련의 돌하르방 뽀야는 오늘도 묵묵히

TV보는 엄마 곁에서 밝게 웃고 있다.

왠지 눈에 반짝 빛나는 뭔가가 맺힌 것 같긴 하지만

눈감아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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