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고로 귀여운 광고 뭐가 있을까 하면
손에 꼽히는게 바로 잇0 광고이다.
바르는 잇몸 치료제 광고인데.
뭐가 어떻게 귀여운가를 살펴보면.
잇몸과 치아탈을 쓴 모습이 뒤뚱뒤뚱 귀엽다.
게다가 대사도 너무 귀여워!
[야, 너 피난다.]
[오잉?]
그리고 분홍색이던 탈이 붉은 색 탈로 교체되어있다.
진짜 너무 귀여움의 한복판이다~
한번 가서 착용해보고 싶어.
물컹물컹할 것 같아.
잇몸병은 없어서 아직은 사용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흔히 광고가 그러하듯
다른 잇몸약 보다 잇치가 더 사고 싶어 지는 건
참 신기한 현상이다.
광고가 이렇게나 구매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다니.
그리고 오늘 화장실에서 문득 든 생각은
샴푸 광고였다.
그시절의 그녀.
전지현씨가 물속에서 힘차게 머리를 꺾어올리면서
강조하던 머릿결.
이렇듯 광고 속 이미지는 꽤나 오래 각인된다.
상품의 질과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상품이 마치 광고 인물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동일시는 조금 위험할 지도 모른다.
그저 연예인은 광고를 하는 것일 뿐이고
제품의 질은 각자가 면밀히 탐구하세요.
이런 게 진실이니까.
광고에 휘둘리지 않으려 해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광고가 많아서.
[별이 다섯 개!] 라든지 [딱 좋아!] 같은 경우 말이다.
진짜 재밌는 광고는 예전에 더 많았던 것 같다.
일일이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광고를 유심히 보는 뽀야는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 광고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영혼을 갈았을까를 생각하면
존경스러운 것이다.
광고에대해 쥐뿔도 모르는 뽀야는 그저
광고를 보며 와아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할 뿐.
그러고 보니 예전 LH 광고 강아지도 너무 귀여워서
그만 캡쳐를 하고 말았지.
귀여움이라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놓칠 수 없는 무언가인 것 같다.
그저 귀엽다는 이유로 사 모은 물건들이 꽤나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지.
날이 춥다고 엄마가 홀로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다.
그런데 잔뜩 싸매고는 다녀올게! 외치고 나갈 줄 알았는데
마스크를 깜박했다며 마스크 좀 가져다 달라고 하여.
마스크를 건네주면서.
티 안나게 다녀올 수 없는 엄마의 건망증에 귀여워 하면서.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추위에 엄청 약하다.
학창시절에는 너무 추워서 발이 얼어 붙어서 방학 예비소집일 때
길가에서 15분 정도 서있었던 적도 있다.
조금만 추워도 손등에 각질이 벌떡벌떡.
손이 곱기 시작한다.
다행히 방안의 온도는 20도.
집 안은 괜찮은데 집 밖이 거의 개마고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렇게 수도권이 영하 10도가 넘게 추워지는 경험은 이색적이다.
철원의 기온이 남의 얘기만 같았는데.
한강물이 얼었다고 한다.
와, 거기 물이 얼기도 하는 구나.
쇄빙선이 여러번 지나다니는 데도 자꾸 다시 얼어서 곤란하다고.
냉혹한 추위는 화요일을 기점으로 조금 약화 된다고.
기상예보가 맞는다면 말이다.
이번 추위와 폭설은 예보가 없었기에 피해가 더 심한 것 같다.
서울에서 그렇게 차가 막히고 차가 멈추고 하는 모습은
드문 것 같다.
나는 공무원 수험 카페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게 되었긴 했는데
우리 가족 모두 차를 운전하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
엄마도 출퇴근을 도보로 하는 터라.
다만 길이 꽁꽁 얼면 다니기에 불편하겠지.
그래서 엄마는 요새 부츠를 착용한다.
부츠의 단단함은 믿음직 스럽다.
잘 미끄러지지 않고 다리를 따뜻하게 보호해 준다.
아빠가 엄마랑 뽀야랑 세트로 사 주신 가죽 부츠이다.
질이 엄청 좋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모습을 자랑하는 부츠를 보며.
[야~ 역시 신발에 돈 아끼면 안 돼.]
라는 진리를 떠올렸다.
[돈이 없어도 신발 만큼은 투자해서 좋은 거 신고 다녀라.
당신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라는 말도 들어본 것도 같다.
생각해 보니 아빠는 뽀야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았다.
뽀야가 아빠한테 많은 걸 요구하는 딸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뽀야가 필요하다는 게 있으면 항상 최고 좋은 걸로
준비를 해 주셨다.
나는 별로 드린 게 없다.
일을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매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빠께 작은 선물이라도 해드리지를 못하였다.
그저 기계같은 셈으로 물건을 대신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대금을 10원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내곤 했다.
이런 정내미 없는 딸을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아빠는 가끔 이런 소리를 했다고 한다.
[뽀야는 아빠한테 감사한 줄을 모르는 것 같아.]
라고 하셨다고 한다.
조금 그랬던 것도 같아서 반박할 수가 없다.
딸은 아빠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서로 헤어지고 나서야 사랑하게 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지금 나는 황망하게 아빠 사진을 보며 서있다.
명수옹의 말씀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
어쩌면 좋을까.
면회라도 자주 됐으면 여러가지 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었을까.
아니, 계속 울기만 했을 것 같다.
그게 와상환자한테 제일 안좋다는데.
슬픔이 전염이 되니 말이다.
의식이 없더라도 슬픔이 전해져 버려서
기력이 빨리 소진되어 버린다고 좋지 않다고
책에서 많이 배웠는데 울지 않기란 어려웠다.
내가 대학병원 면회 때 하도 울어서
그래서 이렇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또 마음이 좋지가 않은 것이다.
눈물이 너무 많아서.
그만큼 웃음도 많은가 보다.
신은 꼭 그만큼의 배려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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