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큰 나무를 베어버린 흔적이다.
이런 모습을 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다니.
되게 영광인데...?!
거세게 베어지고 쓰러지면서 남긴 저 거대한 상처는
얼마나 아팠을까......
금이 가고 벌어지고 뜯기고.
있어서는 안되는 자리에 자리잡았다는 이유로
잘려나가야만 했던 나무의 원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울창하고 크게 드리운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생각했겠지.
나무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때로는 자기 몸을 희생하여 여러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살아서는 들숨 날숨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고
죽어서는 온 몸을 내어주어 인간에게 보탬이 되게 한다.
나무의 큰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바다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그 끝없는 포용력에 놀라곤 한다.
가지가 부러진 나무, 썩어서 버려진 나무, 죽어가는 나무 등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엄청난 시간을 견뎌왔을 녀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지켜보기가
조금 힘들었다고 하겠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나무가 많아서
또 관리가 제법 잘 되고 있어서 흉한 꼴을 볼 일은 거의 없지만
이렇게 그루터기를 본 날에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게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많이 약해졌다.
예전에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파트 하단부 어정쩡한 곳에 위치해서
아이들이 밟고 지나가지도 못하고
꺄르르 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 텐데.
그저 그 자리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는 저 그루터기를 보면서
아파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다행인 일.
추운 날씨에 안으로 안으로 깊어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너희도 모진 세월에 깎이고 털리면서
참 꿋꿋하게도 버티는구나.
동료의식도 느껴가면서.
나무를 바라보면 네 까끌까끌한 껍질을 쓰다듬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 진다.
한 때 너의 껍질보다 더 까슬까슬한 손등을 지녔던 내가
다른 이의 눈이 두려워 숨고 피했을 때
교정에 잔뜩 늘어서서는 나보다 거친 몸을 하고도
오가는 사람을 막지않고 반겨주던 너의 넓은 마음을 보며
반성하고 또 마음껏 네 앞에서 슬퍼할 수 있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조금만 다르면 금세 선을 그어버린다.
내 손등에 피어난 각질을 보고
밥맛 떨어진다며 식판을 쾅 소리나게 들고 다른 자리로 이동하던
그 꼬마녀석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가끔 그 거칠거칠한 추억을 되짚어 보는데.
그때 그 차가운 눈빛과 주변의 말없는 동조가 얼마나
깨부수기 힘든 침묵이었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지금은 충분한 보습과 영양으로 많이 보들보들해졌기는 하지만
여전히 차디찬 손과 발은 갈 곳을 잃은 채 춤춘다.
생각해보면 나무 같은 아이가 주변에 많이 없었다.
다들 마른 쇠꼬챙이 같은 아이들밖에 없었어.
내가 불쏘시개처럼 작고 말랐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사람밖에 곁에 없었던 건가.
그저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다른 사람 쑤셔대기.
험담하기 괴롭히기 뒷담화 늘어놓기.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어버리는
그런 슬픈 되돌이표 속에 갇혀서 숨막혀하는 아이들이
지금도 있을거라고 본다.
그 시절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자리잡기 전이라.
그 각박한 시절을 잘 견뎌내온 뽀야는
지금 얼마나 옹이가 깊게 여기저기 배어 있는지
가끔 마음의 생채기를 세어보며
그 땐 그랬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된 이야기들을 추억한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전반적으로 행복했었다고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박제돼 버려서 다행이다.
외롭고 쓸쓸한 존재만 보면
가만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그 고독이 얼마나 아플지 알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화살표를 주변에 마구 뿌려대지 않았나
내 방향이 옳다고 너무 믿어버려 다른 이를 아프게 쿡쿡 찌르는
화살표를 날리고 살지는 않았는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