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질서정연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귀여움이 안에서 넘친다.
제일 작은 냄비가 맨 밑에 있는 것도
위태로워 보여서 귀엽다.
그들의 손잡이 방향이 같아서 귀엽다.
사실 이 쯤되면 일상의 모든 것이
귀여워 지는 순간이 온다.
키보드에 블록들이 나란해서 귀엽다든지.
책꽂이에 책들이 나란히 있는 게 귀엽다든지.
컵에 꽂힌 펜들이 색색이 귀엽다든지.
뭐 정말 많지.
그저 뚱한 표정의 인형만 귀여운 것이 아니다.
내가 조금만 사랑스러운 필터를 끼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워 진다.
우리 독서대는 두 팔이 항상 ㅅ자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그 앙상한 지지대가 귀엽다.
세탁 잘 못해서 쫄아들어버린 스웨터가 귀엽다든지.
뭐, 그건 열이 먼저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귀여움에는 치사량이 없는 지도 모른다.
용량이 무한대라서 쌓이고 쌓여도 또 쌓여서.
그런 면에서 뽀야는 귀여움을 잘 견디는 편이다.
사실 첫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은
강아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릴 때이다.
특히 안단테 광고에 나오는 귀여운 강아지.
한동안 뽀야 마음을 뒤흔들었다.
오지기행 어디로에 나오던 쪼꼬미들도
너무 귀여웠지.
그래도 그걸로 쓰러지거나 일상에 지장 받거나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사자 라이언을 발견했을 때
엄청 귀여움에 충격받았던 것 같다.
그냥 라이언도 너무 귀여운데
얘는 인형뽑기에서 나왔긴 한데
바디가 탄 것 처럼 어두운 갈색이고
머리에 사자의 상징 띠를 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와...... 너무 귀여워!
라이언을 개발하신 분이 누구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세상에 큰 일을 해내신거다.
너무 귀여워~~~
그리고 라이언 버전도 여러개라서.
제주도 한정으로 감귤 라이언과 돌하르방 라이언이 있던데
그 사진도 한번 보고 할말을 잃었다.
왜냐고? 너무 귀여웠기 때문에.
그래도 뽀야는 귀여움 치사량이 없으니까 그나마 버틸만 했다.
처음보는 엄마 눈에도 너무 귀여웠던지
헤실헤실 웃음이 나곤 했었다.
나중에 꼭 사진을 올려봐야지. 했는데 자꾸 잊어버린다.
그날 그날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기회가 되면 왕창 찍고
그걸 일별로 소분해서 기분에 따라 올리다보니
오늘 이 시간에서 밀려난 사진들이 꽤나 있다.
지금 올리는 냄비사진도 그러한 것.
분명 찍기는 찍은 것 같은데
뭐라고 이름을 붙여놨는지 기억이 안나서
다시 찍고 옮겼던 비운의 나란히 냄비.
특히 자주쓰는 것은 분홍냄비.
물이 빨리 끓어서 좋다.
설거지도 간편한 편.
근데 보라색 냄비라는 신흥 강자가 등장하여
훨씬 새 거이다보니 설거지가 간편하다.
근데 좀 무거워서 자주 쓰기는 좀 그래서.
순위가 밀려났지.
제일 아래 꼬마 스댕(?) 냄비는 용량이 너무 작아서
쓸 일이 별로 없고 전시용이다.
라면 1봉지 잠깐 끓일 때 그럴 때 쓰곤 한다.
그리고 불 닿는 쪽 손잡이가 너무 뜨거워서
위험해서 잘 안쓰는 편.
살림이 간소해질수록 좋다던데.
우리는 벌써 작은 냄비만 3개나 있으니!
말 다했지 뭐.
그래도 우리집에 들어온 살림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낡고 낡아 버리는 것.
뭘 하나를 사도 굉장히 오래 쓰는 습관.
이런 점은 본받을 만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너무 차가워서
내 스스로도 내 손이 지금 냉하다는 게 느껴져서
겨울이 싫다.
아무래도 변온동물인건지는 몰라도
주변이 조금만 온도가 변해도
몸이 금방 동화되어 버린다.
더우면 확 열이 오르고
추우면 확 냉기가 차오른다.
그렇다고 실내에서 장갑 끼고 생활하기엔
조금 번잡시렵고 불편하다.
얼마나 손이 잘 시렵냐면은
마트에 갔는데 장갑을 깜박하고 나와서
손이 너무 시려울 때
집에 장갑이 많음에도 즉석에서 장갑을 사서
끼게 될 때가 있다.
뭐 그정도라면 얼마나 손이 얼음장 같은지
느낌이 오려나.
그래서 여름에는 좋은 죽부인 대용이 된다.
아니면 아이스팩 대용이 된다.
아이들이 다들 뽀야 손을 찾는다.
너무 시원하다면서.
생각해보니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네.
대학생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뽀야는 손발이 냉했네.
아직도 생각나는 게
방학 중에 무슨 소집일인가 그런 게 있어서
학교 올라가는데(비탈길에 위치한 학교)
학교 도입 거리에서 발이 너무 시려워서
올라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한참 서 있었다.
그 땐 교복이 치마였으니까 더 심했지 뭐.
덕분에 왕창 늦어서 결국 청소도 안하고
그대로 집으로 왔다는 좀 서글픈 이야기.
근데 그 때 왜 안 혼났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되게 너그러우셨던 선생님이 아닌가 싶네.
얼굴도 목소리도 지금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의 선생님은 따스하셨어.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지만
뽀야는 급할 때 전화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이런 말을 지인에게 했더니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면 말려드는 거라며
저 대답에 대하여 극구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도 너무 친구같으면 안그래도 만만해 보이는데
위험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내가 발이 냉해서 학교를 못 올라가고 있을 때
백마탄 기사님처럼 짠 하고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는. 그런 선생님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뽀야는 연예인형 선생님이 되고 싶은 거네.
선망의 대상. 멋진 선생님.
나도 저 선생님처럼 되고 싶드아~
이런 느낌?!
항상 밝고 재밌는 수업을 하는 선생님.
이런 느낌.
교과가 제2외국어인 만큼
학생들의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일본어는 많은 학생들이 초기단계에서
제법 만만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달까 그래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가나를 떼고 나면 한자라는 장벽에 부딪치지.
한국말이랑 어순은 같지만 문법이 애매하게 다른 게 많지.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 것이야.
되도록 학생들이 보도블록 배움길을 걸을 수 있게 돕고 싶다.
울퉁불퉁한 흙길이 아니라 보도블록이 깔려서 매끈매끈 안전한
그런 길로 인도해 주고 싶은 게 뽀야의 마음이다.
왜 냄비얘기하다가 아름다운 교사상을 얘기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쨌든 학창시절에 요리를 더 심도있게 배웠으면 좋았을 것을...
학창시절의 배움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기본 지식의
완전 근간이 된다는 걸.
다들 학창시절의 경험과 배움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아니라는 걸.
미래의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라는 걸.
절대 뭔가를 새롭게 배우거나 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되돌릴 수 없는 학창시절이 그립다.
근데 교실이 너무 추웠어.
그리고 교복도 바지를 허용 해주었으면 좋겠다.
치마 너무 추워잉!
스타킹 빠는 것도 귀찮아!
사실 모든 게 생각해보면 귀찮은 일 투성이기는 하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든 월요일 아침.
뽀야의 잡소리를 보며 하루의 기운이 마구 솟아나길 바라며.
근데 여기까지 읽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역시 유튜브인가...?(위축위축)
뽀야는 유튜브는 걸러 들을 수 없어서 불편하던데.
이제 파릇파릇하게 지식을 흡수하는 시절은 다 간건가....
문자를 소비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가.
아냐아냐 그러지 마.
아직은 종이와 글이 더 좋다고 말해 줘.
으아 안돼~~!(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