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얘를 보더니 하는 말.
넌 뭐시여?! 올리고당이여, 물엿이여? 허허 거참.
그러고 보니 얘 위장 하고 있네?
그래도 끝말이 물엿이니까. 물엿이겠지?!
올리고당함유가 많은 물엿인가보지.
아니면 그저 올리고당이 쪼꼼 들어간 물엿인가.
가끔 한국말이 어렵다.
마구 단축시켜버리면 무슨 뜻인지 원.......
물엿을 넣어야 윤기가 나는 음식들이 있어서.
얘가 올리고당이면 곤란하다.
설마. 올리고당이었으면 물엿 식 올리고당.
뭐 대충 이런 이름이었겠지.
뭔가 더 좋게 보이려고 무지막지하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주로 초콜릿을 수식할 때 많이 보게 된다.
슈퍼 울트라 초특급 럭셔리 100% 수제 초콜릿.
갖다 붙이는 수식어만 해도 엄청 많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철자 수가 많아지면서 정신이 혼미해 진다.
올리고 물엿도 어쩌면 그런 중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그냥 물엿은 너무 심심하니까.
뭐하나 붙여서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드려고.
그래도 요즘 소비자들은 녹록치 않다.
이런 상술을 잘 꿰고 있거든.
대체로 같은 값이면 가격이 싼 것을 선호한다.
특별한 경우, 품질에 사활이 걸린 경우라면 비싸더라도
고급 제품을 선택한다.
우리의 소비는 고여있는 물이 아니다.
콸콸 흐르고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매의 눈.
주부님들의 고귀한 선별 능력.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채소를 고르는 섬세한 눈빛은
뽀야가 따라잡지 못하는 경지의 것이라서
항상 채소 살 때는 엄마를 동반하게 된다.
너는~ 이런 것도 혼자 못 사냐며 타박듣지만
기왕이면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고르고 싶은 뽀야의 마음.
귀찮아지는 엄마의 하루.
무거운 장바구니.
그걸 끌고 집에 오는 것도 엄마의 몫.
캥거루 족인 뽀야는 오늘도 엄마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대는 중.
오늘 찬장속에 오래 대기하고 있던 올리고 물엿을 만나고
녀석의 정체에 대해 대화하며 입천장 뚫리도록 웃어도 보고.
이런 소소한 나날이 큰 힘이 된다는 걸.
뽀야는 그래서 엄마가 음식을 만드는 내내 곁에 있었다.
바라만 보는 데도 다리가 아프고 쉬고 싶고 피곤했는데
막상 음식을 만드는 엄마는 어떠했을지.
어떤 반찬이든지 감사히 남기지 말고 먹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귀한 재료, 귀한 손길, 그 앞에 거지 2마리.
동생과 뽀야는 오늘 아침도 엄마 반찬으로 충전하고
나란히 방으로 들어가서 제 할일을 하고 있다.
오늘도 서늘하기 그지없는 쌀쌀한 날씨에
엄마는 일터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있겠지.
뽀야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차분히 앉아서 책장 넘기기.
동영상 강의 참고하기.
이런 경노동을 하면서도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투정 투성이인 뽀야는 아직도 배워야할 것이 너무나 많음을
느끼고는 질려가는 중이다.
와~ 세상에 온통 공부 할 것 투성이네!
그래서 '체험 삶의 현장' 이라고 부르는 거구나......
이제 알겠다.
엄마를 유니콘에 태워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뽀야가 성공한 모습을 엄마께 보여 드리는 것.
그러기 위해 오늘도 마지막 블럭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중인 뽀야.
뽀야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사실, 공부해 둬서 아까운 경우는 거의 없다.
다 어떻게든 활용하게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지금까지의 뽀야 공부 발자국을
남겨보고도 싶다.
참 많이 헤매던 시절이었네.
되지도 않는 공부 멱살잡고 끌고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썰을 풀어 봐야지.
오늘은 그저
이제는 달달하게 느껴지는 초석잠차를 마실 뿐이다.
처음엔 풀맛 나고 씁쓸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진 건지 뭔지.
구수한 것이 맛있다.
요즘에 추워서 운동을 많이 줄여서 건강이 염려되는데
이렇게 건강 차 한 잔 마시면
내 할일 다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물론 오후에 운동을 하고 씻겠지만
그런 작은 일상의 활동이 버겁던 시절도 있었다.
마음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꽉차서
일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바보같이 공부하느라 몸을 혹사해서
조금 지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하루의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작은 관점의 변화가 많은 것을 변화 시키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발전하고 있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