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사일기

담금주

by 뽀야뽀야 2020. 9. 28.
반응형

 

딱 봐도 되게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식별 가능한 표시는 2018.6.13.

아, 대략 2년 정도 된 술이구나.

가시오가피 술과 겨우살이 술인데

술이다보니 뽀야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저 술을 만들기 위해 술통을 사 모으고 

정성을 들였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에 남을뿐이다.

자주 먹어보지도 못할 거면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니까.

한 잔 두 잔 들이켜게 되는 건데

왜 재밌어지려면 다른 좋은 방법도 많은데

몸에 좋지 않은 술을 마시느냐고.

뽀야 네가 뭘 몰라서 그런거라고.

그러다가 제조하게 된 담금주.

이제 술의 주인은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남겨진 술만 서글프다.

근데 꽤나 독해서 자주 마시기도 부담스러운데 

약이 된다며 쟁여두셨던 그 마음이 안쓰러워서 

내비 두려고 한다.

뽀야는 자꾸 그 날이 생각이 난다.

뽀야 빨리 안지워 지는 펜(네임펜)가져와서 

여기에 오늘 날짜 좀 적어라. 하면서 재촉하던 아빠.

이게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약이 된다면서 

엄청 뿌듯해 하셨었는데.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거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거

유익한 거

몸에 좋은 거 그런거 찾으시지.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담금주를 만들었을까.

이따금 찾아오는 이웃과 나누려고 했던 마음이 큰 것도 같다.

집에 좋은 술이 있다는 건 

되게 자부심 가질만한 일이니까.

하지만 아빠 떠나시고 우리집에서 술을 마실 만한 사람이 없다.

왠지 고대 유물(?)로 남을 것 같은 운명의 담금주.

어쩌다가 엄마가 확 열받아 버리면

다 갖다 버릴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담금주.

우리 기력이 좋을 때 

좋은 거 많이 먹고 즐기고 누려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술이다.

아빠 사진 놓고 술 한 잔 기울일 만큼 뽀야는 강하지도 못하고

연약한 그냥 사람이라는 걸 요즘 조금씩 깨닫게 되어

서글프고 무력해 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울고 있을 수만은 없지!

새로운 날들이 또 펼쳐 지니까 

나는 엉덩이에 남아있는 흙을 채 털지도 못하고 

터덜터덜 길을 나서야만 한다.

몇 걸음 걷다가 쉬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음 크게 먹고 한 발 내딛었던 그 순간이 

왜 진작 그러지 못했나 후회되지 않게

쭉쭉 앞으로 나아가자.

그러다가 발등에 아빠 추억 조약돌 하나 떨어지면

주워올려 티셔츠에 대충 닦아서 감상하고 

주머니에 넣고 또 길을 떠나자.

그렇게 우리 넷이 함께.

 

반응형

'식사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킨  (0) 2020.10.03
명절밥상  (0) 2020.09.30
집에서 만드는 식혜  (0) 2020.09.26
고추장 찌개  (0) 2020.09.23
카레  (0) 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