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이나요

무릎담요

by 뽀야뽀야 2020. 10. 10.
반응형

 

증말 강렬하지 않은가?!

이런 무늬에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강한 에너지가 몸 속 깊이 차오르는 느낌.

그냥 맘에 들었다.

파란색의 채도도 맘에 들었다.

염가로 사서 기분이 더 좋았다.

복실복실한 두께감이 좋았다.

약간 누래서 때도 안탈 것 같아서......

와, 좋은 점만 가득하네?!

이제 추워지면 거실에 전기장판 켜고 

온기를 가둬 둘 얇은 이불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 같다.

 

사냥꾼들은 자기가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걸어두는 것을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언젠가 본 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묘한 관점에서 인터뷰하고 있었다.

인간의 광기, 잔인한 영광. 그런 식으로.

 

야생동물이 제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선택으로 기꺼이 동물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지배욕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에서만 봐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감시자의 눈은 언제나 번뜩인다.

그러나 지배하려는 순간 꼭 문제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지배-복종 관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복잡하면 지배가 정당화 되는가? 그건 또 어려운 문제다.

그런건 학자의 몫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뒷짐지고 있는다면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뭣도 모르는 내가 그런 과정을 분석하려고 덤빈다는 게 

어쩌면 더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항상 중도를 지키라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셨지.

중간만 가면 된다. 그렇게.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너무 치우치지 말고 중간만 가면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회색분자가 되라는 건 아니고.

 

옛날 사람들이 특이하게 분장하고 

기묘한 문양들을 몸에 새기고 했던 그런 

자연적으로 샘솟은 그 열망을

이불에 고스란히 담는다면 저런 모습일까.

호피무늬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어째서 

저 이불을 덥석 집어 왔을까.

이불 자체가 누군가를 잡아먹기 직전의

표범이나 호랑이.

하얗게 드러내는 송곳니 

물어뜯기 1초 전.

그 긴장감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저걸 덮고 TV앞에 앉아있으면 

정.중.동이 될 것 같아서.

나 자체가 생동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꼬질꼬질 방구석 꼬맹이인 내 마음에 

대초원이 펼쳐지고 거기서 암약하는 

치타와 표범과 하이에나 

물고 물어뜯고 

맛보고 즐기고.

 

아빠 계실 때는 곧잘 동물의 왕국 보면서 

감탄하곤 했는데 

이제는 휙 지나쳐버리는 그런 프로그램으로 전락해버린

동물의 왕국이 

이 무릎담요에서 살아 샘솟아나는 착각이 든다.

 

동물 군상이나 인간이나 다를 게 없는데

우리는 생각할 줄 안다는 이유로

거실에 앉아 

너희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편하게 들여다 본다.

사각의 틀 속에서 활개치는 너희들의 매서운 눈빛에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물러서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다.

열정적인 탐험가와 사진작가들이 있기에 

우리는 차가운 브라운관을 통해서나마 너희를 볼 수 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알고자 하면

동물을 대하는 법을 보면 대략 감이 온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전에

일단 동물 자체를 자주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자연 다큐를 좋아하는 뽀야는 

오늘도 새 무릎담요를 칭칭 둘러매고 

TV앞에 앉아 채널을 돌린다.

어디선가 다큐가 하겠지 하고 눈알 4개 번뜩이며.

 

반응형

'보이나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갈이  (0) 2020.10.10
선인장  (0) 2020.10.10
꽃소녀  (0) 2020.10.09
다진마늘  (0) 2020.10.09
쌍둥이 베개  (0) 202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