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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붉은 마음

by 뽀야뽀야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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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품고 있는 붉은 마음에 대해서.

새벽 찬공기 마실수록 깊어가는 그 빛깔에 대해서.

가을의 손짓을 하늘하늘 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에 대해서.

오늘은 무작정 낙엽길을 바삭바삭 밟으며 걷고 싶다.

쉽게 풀리지 않는 세상사를 두고 저만치 물러나서

하염없이 불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보고 싶다.

단풍이 붉어지면 그런 단풍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 뺨도 

따라 붉어지고 곧 단풍에 취해 흥청망청이고.

코로나19가 우리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도 

희망은 있다는 걸 나무를 통해 배운다.

그저 한 자리에서 나고 지고 새로워지는 나무들.

어느 한 순간도 성장이 멈춘 적이 없었다.

나도 우리 동네라는 한 곳에 붙박여 있는데

얼마나 성장했는지.

나와 비길 데 없이 훌쩍 자라나버린 나무를 보며

나무는 고통을 위로 끌어올려 승화했구나.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나의 고통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저 실소 할 뿐이다.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나무의 모습을 보며.

온통 아름답지 못한 순간 뿐이었던 나를 뒤돌아 보며.

괜히 눈물이 핑 돈다.

내가 특별히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너는 잘 자랄 것이다.

강하고 튼튼하면서도 

가장 깊은 곳, 연약한 곳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는 너를.

아무런 강함이 없는 존재인 내가 내 약한 부분을 꽁꽁 감추는 모습을.

나무야 너는 알고 있지.

 

언제쯤 나는 만개할 수 있을까.

어떤 계절이 와야지만. 그러할 수 있을까.

영영 피어나지 못하는 불발탄 같은 게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고 고민하고 그런 순간에도 너는

이렇게 붉은 마음을

여기저기 흘리며 피어났다.

순간을 기억하고자 네 잎을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두고

세월을 박제해 본 들 무슨 소용일까.

지금 내 눈에 비치는 너의 모습을 사진 속에라도 

오래 담아 두고파.

가질 수 없어서 더 감질나는.

앞으로 잎을 다 떨구고 두툼한 눈을 얹고서 

더한 장관을 내게 보여줄 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도 나무, 너처럼 붉게 타오르고 싶어지는 가을.

손끝이 오그라드는 추위에 떨며 맺어낸 그 마음.

팔랑팔랑 미련없이 잎을 떨궈내는 너의 희생.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너.

 

오늘의 산책길에 네가 있어 좋은 나.

매미처럼 너에게 매달려 엥엥 울고 싶지만

계절은 흘러가는 중.

계절의 틈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곧 네 앙상한 가지가 나를 겨울로 인도하겠지.

제 몸보다 두툼한 눈 짊어지고 

또 한 생 힘겹게 버텨내는 너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아름다운 눈의 향연 속에 초연히 버티고 있을 너를 그리며.

모든 것은 다 흘러간다고.

붙잡고 있는 듯 보여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고.

너는 내게 속삭인다.

바람에게 의탁한 너의 속마음이 오늘도 바스락바스락

내 발끝에서 부서진다.

 

뒤돌아 보면 어느새 너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새로운 잎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

봄이 오면 초록을 자랑하는 너와 다시 만나고 싶다.

여름이 오면 그 때는 내가 매미가 되어 네 곁에 오래 있어줄게.

다시 가을이 와도 추억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나에게 

지난 가을과 엇비슷한 풍경을 만들어 주렴.

혹독한 겨울을 같이 나고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발자국 남긴 채로

나는 네게서 멀어져 가겠지만

원망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너의 자리에서 빛나렴.

네가 내게 가르쳐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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