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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속세에 물든 자연인

by 뽀야뽀야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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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산 컵이 자연인 손에?!

오지에서도 컵은 쓰니까, 뭐.

 

영어 라디오를 듣고 거실로 나오면 TV에서 항상 생방송 투데이가 나온다.

엄마가 저녁에 노곤한 몸을 TV와 함께 하기 때문이지.

마침 오지기행 하기에 잘 보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컵이 화면에 비춰지는 것이다.

저건 분명 내가 안쪽이 희어서 물때 잘 낄 것 같아서

사지 않았던 그 문양의 그 색. 

바로 내가 집에서 잘 쓰고 있는 그 컵이다.

 

물론 오지로 가기 전에 구입해뒀을 게 분명하다.

아니면 오지 근처에 마트가 있다거나.....

참 신기하다.

오지인이랑 나랑 컵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다니 말이다.

확실히 이 머그잔이 싸면서도 내구성이 좋아서 

나도 오래 쓰려고 산 것이다.

오지인도 아마 비슷한 이유에서 구입했겠지.

 

예전에는 마냥 오지가 좋아서. 복잡한 세상이 싫어서.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도심이 더 좋은 것 같다.

물질문명을 놓을 수가 없어.......(또르르)

 

게다가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이라면.

내 취미의 반이 줄어버릴 텐데 말이다.

콘센트가 없는 곳이라니. 막막한 생각이 드네.

사람은 홀로이길 갈구하면서도 누군가 곁에 있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저런 오지에서 버틸 수 있는 건 도심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인간의 본성을 잃었거나

모든 것이 무기력해진 자신을 충전하고 싶은 사람뿐일 것이다.

 

어제는 어린이날을 하루 내리 쉬어서 그런가.

집중이 잘 안되더라.

오늘도 물론 마찬가지.

이런걸 슬럼프라고 하나?

활자를 보려 하면 축축 처지고 그냥 눕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공부 아닌 것은 왜 이리 재밌어 보이는지.

신문도 뉴스도 거실에서 엄마 곁에서 수다떠는 것도.

다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런 걸 보면 우울은 아닌 것 같고.

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

하필이면 시험 한 달 앞두고 일상이 무너질게 뭐람?!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꾸역꾸역 영혼없이 할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저녁 시간에 되돌아 보았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고...

행복해 지기 위한 불행을 감수하는 것은 희생일까 행운일까.

행복해 질수 있다는 믿음이 클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클까.

지금은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감돈다.

창작활동을 쉰지도 꽤 되어 간다.

마감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느긋하게 보내고 있는데.

시간에 쫓기며 전전긍긍하게 될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이제 반 왔는데. 되돌아가기에는 아깝고.

더 나아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을 덮었다가 폈다가.

요란도 이런 요란이 없다.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했었나?! 곱씹게 된다.

[아무래도 괜찮아] 라는 생각이 도졌는지도 몰라.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에 잠식되어 가는 지도 몰라.

딱 이번 주까지만 삽질하고

다시 저 높이 뜬 태양을 바라보며 다시 달려 봐야지.

그런데 날도 흐리고 축축 처지는 것이 영 좋지 않다.

 

영국사람들이 우울함을 기저에 깔고 산다는 게 이해가 간다.

거기는 늘 흐려서. 

예전에는 날씨 같은 거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다.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여기지도 않았었지.

팔팔하던 그 시절에는 그런 거 모르고 다녔지.

어쩐지 어제 무릎에서 뚝뚝 소리가 자주 나더라고.

어김없이 비가 내리잖아.

게다가 비 보다 바람이 더 요란하게 불어대서 더 심란하다.

어딘가에서 뭔가가 부서지고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참으로 스산하다.

그래도 이렇게 차분해 진적이 없었는데.

이런 날씨에 외출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좀 씁쓸하네.

왜 꼭, 내가 나갈 때만 기온이 팍 떨어지거나 눈/비 오거나 그런거임?!

만사가 귀찮은 마당에 아무것도 하기가 싫구나......(끄응)

 

그래도 오지보다는 도심이 좋단 말이지.

엄마도 한 때는 저어기 바닷가 마을에 가서 홀로 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직후에 빈집털이, 외지인 텃세 이런 뉴스들이 줄줄이 나와서 

지금은 마음을 반쯤 접은 것 같기는 한데.

인간은 평생 흙을 그리워 하며 살아가는 동물인지도 모른다.

흙의 감촉과 냄새.

그런 것들이 그리워서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는 지도 모르지.

 

아빠한테 기도할 때는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사소한 것 까지 다 말하는 나를 돌이켜 보면.

왜 이런 일을 아빠 살아 계셨을 때 다하지 못한 건지.

후회가 막심하다.

살갑고 조잘조잘 머리맡에서 떠들어 대는 귀여운 딸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새침떼기에 방문 쾅 닫고 저만의 세상에 갇혀서

공부, 공부만을 부르짖던 한심한 딸이 얼마나 걱정 되셨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빠는 내가 안타까우면서도 기특하고 끝까지 책임져 주고 싶고.

내 아픈 손가락이고. 그렇게 생각하셨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 해나가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아빠!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계속 노력중이고, 언젠간 해낼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기운이 난다.

있을 때 잘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은 기운 없을 때마다 찾아와.

나를 원망하게 만들고 자책하게 만들지만.

그런 미운 내 모습도 또한 나인 것이다.

많은 것들을 아빠 대신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그런 생각도 든다.

정말 모든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지껄여 댈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것도.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들에 손을 뻗을 기회가 있다는 것도.

전부 아빠 덕분이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비가 오면 아빠가 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려요.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내 꿈에 다시 한 번 찾아와 주실거죠?

항상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잘 할게요, 걱정 마세요.

 

대자연으로 돌아가버린 아빠는 말이 없지만.

내가 기도 할 때마다 항상 그래그래, 하고 웃어주실 모습이 상상돼서.

콕콕 가슴이 찔려 오는 아침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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