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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일기

오이겉절이

by 뽀야뽀야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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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류의 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엄마는 끊임없이 김치 반찬을 만든다.

밑반찬의 기본이니까.

만들어 놓으면 젓가락 몇 번 찔러보기는 하니까.

그리도 동생이 무척좋아하는 오이겉절이는

처음 담갔을 때는 상큼상큼.

익으면 새큼새큼.

 

우리 인생도 처음엔 상큼하지만

익어 갈수록 새큼새큼해지는 것 같다.

관계에 있어서도 묵은지 같은 사이가 있지.

아주 푹 삭아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고 있는 그런 사이.

시간에 비례하는 그런 관계는 쉽사리 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도착할 택배가 있어서.

무려 오전 8시에 택배 알림을 받았다.

10시에서 12시쯤 배달 온다고.

우와, 아저씨 열일하시네, 대단쓰.

동생한테 하는 세번째 책 선물이다.

첫 번째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고

두 번째는 가구 만드는 남자였고

세 번째 책이 오늘 택배로 받게 될 책인데

내가 읽어보지도 않고 선물하는 책들이라

살짝 걱정도 되면서 설렌다.

선물은 이맛이지.

줄 때의 설레는 이 마음.

 

그리고 멍하니 런 온(2020) 보고 있는데

자막이 지나가더라. 극본 공모 라고 써있기에 유심히 보고 

또 검색해보았더니 2021 JTBC 신인작가 극본 공모였다.

보자보자, 3월 1일까지면 여유좀 있네.

장르문학상이 2월 중순까지니까.

진짜 빡세게 하면 둘다 할 수 있겠거니.

그런 예감이 들었다.

러닝머신을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라 폰에 적어두었다.

엄청 바쁜 1월이 될 것 같다.

1월 하면 한 해의 첫 시작이지 않은가.

새로운 느낌이지. 계획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착각이 모락모락 들지.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요즘 부쩍 느끼고 있다. 7꼭지까지 썼는데 뒤엎고 싶은 마음이 

매일 저녁마다 솟구친다.

일단 인물만 만들어 놓으면 알아서 움직이겠거니 싶었는데

녀석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 사고를 돌려야

얘네가 움직이니까. 근데 쓰는 시간보다 구상하는 시간이 더 재미있다.

당연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구상을 구체화하는 일이 번거롭고 힘들다.

내 마음같지 않게 써지고 그래서 답답하다.

한번 낮에도 써볼까 싶은데 저녁 느낌이 안 살 것 같아서 무섭다.

고요한 가운데 간간이 들리는

TV소리를 목구멍으로 집어 넣어 가며 쓰는 글은 

참 맛있다. 

하지만 내게 밤은 끝이 있잖아.

침대가 옆에서 어서 내게로 와서 누워버려!

라고 유혹하고 있잖아.

글을 쓰지 않더라도 마음속에는 걱정이 가득해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이게 사람 피말리는 작업이구나 싶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이렇게나 힘든 길을 걷고자 열망하는 나는 어디가 잘못된 건가.

마감의 쫄깃함을 피할 길은 없다.

어느 직종에 가든지. 항상 마감은 있다.

그런 걸 보면 가장 재밌는 일을 택해서 하는 것이

그나마 스트레스를 덜 수있는 방법이 아닐까.

 

오이에 소금을 치면 그 순간은 짜고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숨이 멎을 정도로 죽고 나면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그동안에 없던 맛이라는 게 생긴다.

그 맛을 보기 위해서 힘들어도 계속하는 게 오이의 삶이지.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숙성되어 가느냐에 따라 

가격표의 숫자 앞자리가 바뀌는 거다.

농밀하게 잘 익은 그런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그 첫 단추가 잘 맞아야 할텐데.

끊임없이 글쓰는 교사가 나의 꿈이다.

그 꿈의 방향이 교무실에서 세특을 열심히 적는 형태로 

나타날수도 있겠지만

생기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차오르는 저녁에.

나는 미치광이처럼 키보드를 두들기며 헤실헤실 웃으며

풀리지 않는 이야기에 머리털을 쥐어 뽑아가며

다리를 꼬았다 풀렀다 하며 고뇌한다.

무서운 건 이게 재밌는 과정이라는 거다.

중독이라는 게 이런 거겠지.

글쓰기의 유혹에 빠졌다.

벗어날 수 없어.

하루종일 글만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내 하루 활동의 중심이 글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의 나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이야기의 결말을 스포하고 싶어 안달이다.

가족들은 외면하고.

다들 성과주의자들이라 눈에 보이는 뭔가를 내놓지 않으면

설득력이 확 떨어진다.

나는 그냥 내 작품에 대한 귀여운 평가와 논의를 바라는 건데.

다들 노관심. 

 

야~ 여기 우리집이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춥다.

심적으로 찬 바람 맞아가며 서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지도 몰라.

꼭 문제 없이 탈고해서 본때를 보여줘야지!

그렇게 이를 악물고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상대적인 시간은 나를 내버려두고 또 멀리 저만치 앞서 가지만

괜찮다. 하루에 정해둔 일과를 마치면 푹 자도 돼.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평소에 스스로에게 응원 많이 해주고,

빡빡한 규칙에서 벗어나기.

나를 사랑하는 법은 방탄으로부터 많이 배운 것 같다.

UN연설도 좋았었지.

면접 기출에도 나오더라.

자기 파괴적 습작 활동 열심히.

그렇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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