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에 묵혀뒀던 은행을 구워보았다.
은행은 예전에 아빠가 그렇게 많이 구워주셨었는데
뽀야 가래가 끓는 게 마음에 걸려서
손수 은행 까서 소금 뿌리고 구워서 호호 불어 뽀야 입에 넣어주시던
모습이 눈에 아직도 선하다.
아빠 사랑이 듬뿍 담긴 시절의 은행.
이제는 어설픈 똥손으로 까보는데
자꾸 튕겨나가고 박살나고
뾰족뾰족 해서 손가락이 아프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도 엄마의 도움을 받아 안정적으로
까게(?) 된 은행들.
이게 냉장고에 얼려놨던 거라 그런지
초록 빛깔은 아닌 것이 쓴맛이 더욱 레벨 업한 듯하다.
엄마는 참기름을 꼭 쳐야 속껍질이 쉽게 벗겨진다며
자꾸 카놀라유 같은 기름 대신 참기름을 넣는데
아마 쓴 맛이 여기에서 발생한 듯 한데.
그래. 까준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뭐.
뽀야는 가정 내 힘이 별로 없다.
어제 저녁에 은행을 먹어서 그런가?
가래가 왠지 조금 수그러든 그런 느낌적인 느낌?!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어디가 아플 때 단순하게 약을 찾아 먹는 것보다
거기에 맞는 음식으로 치유를 시도하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더 몸에 이롭다고
뽀야는 그렇게 생각한다.
뭐, 심한 증상이 있다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약을 타 먹어야 겠지만 말이다.
가끔 의사들이 나 자신을 자기불신에 빠지게끔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가을-겨울이라 이래저래 쌀쌀하고
몸속에 추위가 스미는데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고생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수상한 시절에 목에 사레들려 켈룩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인간의 몸이란 고통체가 아닌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옷을 대여하듯이 몸을 대여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순간이라는 게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상해졌다.
가을이라 그런가.
자꾸만 빗발치는 생각의 덩어리가
내 어깨 위에 눌러앉아 짓누른다.
무거워도 안고가야 하는 건지.
생각을 훌훌 털어버릴 무언가를 또 찾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심각이랑 거리가 먼 뽀야에게
이런 어울리지 않는 고뇌란......
졸음을 유발할 뿐이지.
9시 언저리가 되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정신 못차리는
뽀야는 10시 취침의 계곡에 이르지 못하고
높은 산등성이에 끼인 채로 괴로워 하고 있다.
잠이 많아 괴로운 그대 이름은 뽀야.
부모님 사랑 듬뿍 담긴 은행 먹고 기운내자.
오늘도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