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뒤늦게 호타루의 빛(2007)이라는 일본 드라마에 빠져서
일본어 청해 능력도 키우고
회사에서 사용되는 용어, 경어표현도 배울 겸
잘 보고 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 봤던 노다메 칸타빌레(2006)에서도 그렇고
빠짐없이 나오는 대사가 있었으니.
この番組(ばんぐみ)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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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게 바로 그거다.
왜 우리 드라마 다 보고 나면 출연진들 자막 올라가면서
광고주들이 좌라락 나열되고는 하지 않는가?
바로 그 부분이다.
하도 유명해서
코노 방구미와~ 이렇게 복창하고는 했었는데(아련아련)
오래간만에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그 당시에는 협찬이 참 많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일드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들어도
자막을 놓고 보면 그냥 의미가 없다.
근데 자막을 빼고 보면 공부는 되는데 신경쓸 게 많아서
재미가 없다.
자막 넣어주시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해당하는 대화의 얽힌 이야기나 팁 같은 걸 넣어주시기도 하고
작자의 의도를 꿰뚫어 보기도 하고
싱크 맞추기도 힘드며
때로는 원작의 맛을 더 살려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챙겨보는 게 있는데
바로 귀멸의 칼날(2018).
옛 회사 동료분께서 재밌다고 강력 추천해주셨는데
제목이 너무 사무라이 나올 것 같아서(?)
피하려고 했는데
맞닥뜨리고 말았다.
일단 애니메이션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주인공이 너무 성품이 좋다.
상냥하달까 착하달까.
그런데 주인공이 너무나 아끼는 여동생 네즈코를
초반에 이름 외우기가 헷갈려서
자꾸 네즈미(=쥐)라고 불렀었다.
불쌍한 네즈코(바보같은 뽀야 때문에 쥐라고 불리다니).
그런데 일본 관련 영상을 자주 보다 보니까
혼잣말이 늘었다.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인데
혼자 주절주절, 궁시렁궁시렁 거리고 산다.
과묵한 사람.
멋진 분위기.
침착한 태도.
예리한 통찰력.
뽀야에게는 너무나 머나먼 것들이다.
안 그래도 이제는 전공 공부와 교육학 공부를 해야해서
당분간 일본 문화 살롱(?)은 그쳐야 할 듯 싶다.
아님 주말에 기분 전환으로 보든지.
어머! 내일이 주말이잖아?
당장 봐야겠다(부작용)
지금 귀멸은 13편째, 호타루는 5편째 보고 있는 중이다.
역시 완결된 작품을 몰아보는 게 큰 재미이다.
연재중인 작품은 기다리기가 힘들다.
되도록 삶에 조마조마함을 빼고
무미건조하게 지내려고 하는데
연재중인 작품을 보다보면 그게 잘 안 된다.
조바심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씀.
코로나19 시대에 소소한 낙이라는 게
고작 딱딱한 모니터 앞에 두고 낄낄거리는 일이라니
너무 슬프다.
지인들에게 안부문자나 자주 보내야겠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그게 코로나 시대의 모토 아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