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린 길가의 꽃
한층 더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
비가 오는데도 산책을 감행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는 했지만.
몸이 젖을 수준은 아니라서 마냥 걷기로.
우리 동네에는 참 꽃나무들이 많다.
게다가 평소에는 그냥 가시덩굴이라고 생각하던
수풀 틈새에 이렇게나 탐스러운 장미가 피어 있더라.
아름다웠다.
멀리서부터 붉은 존재감을 내뿜는 녀석에게 반해버렸다.
붉은 장미 한 송이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꽃말이 있던데.
되게 낯간지러우면서 달달한 꽃말이 아닌가.
로컬 매장에 가봐도 포장지에 돌돌 말린 장미가
예쁘게 장식되어 주인을 기다리곤 한다.
꽃선물 만큼 기분좋은 것도 없는데.
부모님 생신 때나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사드리곤 했었지.
[뭘 이런 걸 다...] 라고 하시긴 했어도.
내심 기분이 좋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부모님께서 내게 챙겨주시는 사랑만큼은
못 되돌려드린 것 같아 마음에 한이 된다.
특히 아빠에 대하여 말이다.
저녁에 자기전에 아빠 사진 앞에서 문안인사 드리면서.
이런 저런 기도를 하는 편인데.
처음엔 아빠 얼굴을 또렷이 보기가 어려웠다.
죄짓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 마주치기가 어렵던지.
이제는 활짝 웃으며 말 건넬 수 있다.
마음의 생채기도 조금씩은 아물어가는 중이겠지.
아빠는 생색내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꽃선물 같은 거 해드렸으면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고.
받은 만큼은 꼭 되돌려 주셨을 그런 분이다.
지금은 다 부질없게 되었고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놓아야겠지만.
다시 아빠를 뵈러 가는 날에는 꼭 꽃을 전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추모공원에 사각 꽃 걸이가 보기 불편하여
그 속의 봉안물 잘 보이라고 떼버렸는데.
조화이기는 했어도 다른 집들은 다 사각 꽃 걸이가 있는데.
아빠만 없어서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시려나...?!
어차피 남겨진 이들의 자기 위안이기는 해도 말이다.
아빠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떠나고 나면 다 뭣하냐고.
있을 때 잘하라고.
그럤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다.
근데, 이제부터 엄마한테 잘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는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고.
그러고 보니 다언어를 사용하다보니 생기는 재밌는 점이 있다.
바로 BTS의 Magic shop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So show me I'll show you] 라는 후렴구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나는 show you를 しょうゆ로 듣는 것이다.
[나는야 간장이 될거야~]도 아니고 말이지.
저번에 회 먹을 때도 이 노래가 자꾸 귓가에 밟혀서
계속 혼자 흥얼 거렸다.
[간장에 고추냉이~♬]하면서 말이다.
날이 따스해 지면 식물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식물이 새싹을 틔워내는가 하면.
못 본 사이에 쑥쑥 자라 있기도 하다.
야외에서 자라는 식물 중에는 비가 오면 한없이 싱그러워지는 녀석들이 있다.
주로 길가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장식목들인데.
푸릇푸릇 여린 잎이 성큼 위에 자라있는 걸 보면 참 열일하는 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식물들은 저마다 제 할일 잘 해내고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맨날 놀고만 있는 건 아닌가. 자책도 해보고.
오늘 아침에는 어제 먹다가 남긴 재료로 김밥을 싸서 먹었다.
어제는 깜박하고 깨소금을 넣지 않아서 고소함이 덜했는데.
오늘의 김밥은 아주 고소함을 넘어 꼬소하였다.
김밥을 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많이 들지만.
먹어치우고 정리하는데는 무척이나 간편하다.
엄마의 노고가 짙게 깔린 맛좋은 김밥에 감동 한 스푼.
우리가 먹고 싶다는 메뉴는 거의 먹여주려고 노력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주말이 되어도 엄마는 쉬지 못하고.
이것저것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청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정말 씻고 정리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책상 모서리 같은데를 손으로 찍어 훑으면
하얀 먼지가 묻어날 정도인데.
그나마 하얀 먼지라 다행이지 시커먼 먼지 아니니까 다행인건가.
환기하는 것도 귀찮아 한다.
사실 내 삶의 대부분의 일들에 대해 나는 귀찮다고 정의를 내려 버린다.
이렇게 귀찮아 할거면 공부는 어떻게 하는감?! 싶을 정도로.
생각도 정리하고 복습도 할 겸.
공부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중.
왜 처음보는 것처럼 새로운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대한 내용을 언제 다 훑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벌서 5월의 중반에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소설은 접어둔지도 꽤 되었다.
어제는 진짜진짜 하려고 했는데.
저녁의 마력에 휩싸여 손 놓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훅훅 지나간다.
어제는 자료 정리하느라고 11시에 잠들었다.
처음부터 손대지 말 걸 그랬어.
한번 시작하니까 제대로 끝낼 때까지는 그만두고 싶지 않아졌다.
아직도 반 정도 남아있는 것 같은데.
근데 어제의 기분은 12시까지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에 넘쳤었지.
아무래도 바른 자세를 신경쓰니까 저녁 늦게까지 버틸 수 있는 듯하다.
평소에 자세가 무너져서 침대에 널브러진 채 시간을 보낼 때는
그냥 빨리 잠들어버리고 싶지 버텨지지가 않는다.
앉아서 버틴다는 게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었다니.
기왕이면 공부르 하면서, 책을 읽으며 11시까지 버텼다면 참 좋았을 텐데.
볼품없게도 파일 정리에 열을 쏟았다.
정리라는 거.
일상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모처럼 큰 여유 내어서 해야하는 일의 목록으로 정해두고 있다.
이러니 선뜻 정리하기가 쉽지 않지.
이제 7월에 들어가면 일본어 쓰기 연습도 해야한다.
눈으로만 보고 그랬더니 손맛을 잃어버렸어.
한자는 자꾸 써내려가야 손에 착 붙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첫 해 임용시험에서는
한자가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대부분을 가나문자로 써서 왕창 감점이 되었었다.
소중한 기회를 그딴식으로 날리고 보니.
쓰기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겠더라.
지금 공부하는 전공 서적 사기 전에는 흩어진 각론서 중에 하나를 잡아서 여러번이고
필사하곤 했었다.
손날이 새카매지도록. 중지가 저릿하도록 쓰고 또 썼었는데.
그러다 보니 답안 작성의 매커니즘을 엉겁결에 익히기도 했다.
요새는 그냥 책을 읽고 이해하는 공부를 하다보니 손맛을 느낄 수 없었네.
해마다 절로 피어 아름다운 장미를 보면서.
내 할일은 공부라는 것을 실감하고 깨달았다.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다.
조금 슬프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서.
기왕 하는 거 잘 해내야지.
고교학점제로 인해 티오가 확 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보고 들으면서.
아무리 좁아도 나만 열심히 하면 길이 열리겠지.
하고 놀랍게도 긍정적인 내안의 나를 발견했다.
장미야 고마워, 네 덕에 책상 앞에 다시금 앉아 집중할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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