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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일기

탄수화물 끊기

by 뽀야뽀야 202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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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저탄고지 식단 열풍이 불고 있는데.

나는 도무지. 저탄을 지킬 수가 없다.

꼭 밥이 아니라도 빵을 먹게 된다거나, 떡을 먹게 된다든지.

그런 탄수화물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탄수화물을 끊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그래서 어차피 먹을 거라면, 어떻게 하면 더 영양넘치게 

파이팅 넘치게 먹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다보니 잡곡이나 콩, 검은쌀을 섞어 먹게 되었다.

가끔 정신없어서 콩을 빼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갓 지은 밥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나는 이 주제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정해진 계획표대로 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냥 기계처럼, 일과를 보내고.

산책을 하며 꽃을 아름답다고는 생각했어도.

그걸 나의 행복과 연관 지으려 하지는 못했다.

참 행복하다. 그런 순간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봐야겠다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배가 부르면 일단 행복하지.

그 부대끼면서도 든든한 감각.

이런 1차원적 행복 말고 더 없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남길 연관 활동 할 때 행복하다.

남길을 생각하며 글을 쓸 때 라든지.

남길 사진 보며 실실 쪼갠다든지.

 

저녁마다 마주하는 우리 가족사진 앞에서는 어떠한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빠한테는 항상 걱정 없이 고통 없이 편히 쉬시라고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러는 나는 어떠한가?

걱정이 없는가?

아니다. 무수한 시험불안에 휩싸여 있다.

하루하루 가는 게 빠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소소하게 바쁘게 살아간다.

내가 잊고 지낸 것들이 혹여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처럼 너무 당연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

엄마의 사랑, 고마움, 미안한 감정.

동생의 배려, 관심, 의지가 되어주는 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존재.

곁에 계시진 않지만 내 정신적 지주인 우리 아빠.

 

이렇게 우리 넷은 하나로 똘똘 뭉쳐있는 것 같다.

각자가 바쁜 요즘.

머리 맞대고 웃으며 얘기하고 같이 귀한 밥 먹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참 좋다.

그 순간의 나는 행복한 건지도.

 

집에서 공부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들어진 환경도 감사한 일이고.

내 시간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지금 당장은 필요한 것이 떠오르지 않지만.

나는 이 정도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비록 아직 도전이라는 질그릇들은 땅 속에 파묻혀 있고,

그 뚜껑도 죄다 열려있지만 말이다.

깊게 묵어야 될 감정들이 뚜껑 열린 채로 증발하고 있기는 해도.

나는 행복하다.

사람이 어찌 완벽을 기할 수 있겠는가.

이정도면 행복이지.

이렇게 살짝 자조하듯이.

조금 부족하지만 그걸 다 감싸안으면서 내뱉는 행복이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라고 정말 해탈이라도 한 듯이.

어쩌면 지금의 나도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매일 먹는 밥.

그리고 당연한 배부름.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하루가 매일 우리집에서 펼쳐진다.

저녁이 되면 돌돌 말아서 침대로 가지고 가서.

하나하나 뜯어보며 오늘이 어땠는가에 대해 총평도 해보고.

아침이 되면 말아놓은 하루를 다시 돌돌 펼쳐내어 새롭게 물들인다.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님 오신 날 밤에 구비구비 펴리라.

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게는 와주실 님이 없지만.

미리 베어내어 돌돌 감아 놨다가 

아빠 꿈 꾸는 날이라든지.

그런 행복한 날에 펼쳐 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사실 꿈은 현실에서 몰두한 생각의 환영이라고 하더라.

몰두한 생각이 꿈에 반영되는 것이지.

그래서 아빠가 아프실 때는 계속 아빠 꿈만 꾸었었다.

그것이 아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그런 미래를 그려내고 있던 거라고

해석했었는데.

결국은 착각이 되고 말았지만.

 

항상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시던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서.

소식하는 뽀야는 한껏 밥을 채웠다가 덜어내기를 반복한다.

안그래도 요즘 기력이 달려서 밥을 양껏 먹어주지 않으면

온몸에 기운이 없다.

그런데 탄수화물을 줄여야 하니까.

또 번뇌가 시작되는 거지.

아침에 먹는 단백질 시리얼이 우유와 곁들여 먹다보니.

우유분해 효소가 아무래도 부족한 듯한 뽀야에게

무리가 가는가 싶어서 잠깐 중단하고.

다시 반찬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이라 안 넘어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술술.

설거지 그릇이 왕왕 나오더라도 괜찮아.

더 간편해지려는 욕심에 몸을 망치지 말자.

귀찮음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것이 성공코드잖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이.

서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런 양면적인 감정에 대해 

물러서지도 생각을 멈추지도 말아야곘다고.

나란히 늘어앉은 콩을 주걱으로 툭 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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