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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토르소 같은 나무

by 뽀야뽀야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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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가 방해가 되었는지.

아니면 가지치기의 일환인지.

도시경관을 위해서인지.

저렇게 뚝뚝 잘린 나무들을 보고 있으니 

뭔가가 기괴하다는 생각이 든다.

몰개성을 강요하는 사회.

그 안에서 창의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허나 몰개성이란 이름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개성이 보이면 잘려지고 만다.

결국엔 기호로 서로를 부르는 그런 세상.

고유한 이름은 사라지고 A 또는 B로 불리는 우리들.

또는 수험번호라는 딱딱하게 부여된 숫자로 불리는 우리.

학생 때부터 숫자로 우리를 규정짓는 것에 조금 염증이 났었다.

영화 4등에서 보시다시피 우리는 1등만 기억하니까.

4등은 메달도 주지 않으니까.

개성을 없앴더니 그 모습이 기괴하여 오히려 더 기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숨막힌다.

그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무섭다.

그걸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도 무섭다.

너무 도시적인 그런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나무가 병충해 입어서 그래서 저렇게 잘라놓은 거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리고 싶다.

교복을 벗은 우리는 자유에 환호하면서도

뭘 입어야 괜찮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직 우리는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배우지 못했다.

자유를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도 잘 배우지 못해서.

때론 미성년자들이 차량사고를 내거나 

같은 친구를 여럿이 괴롭히거나

그런 폭력을 영상으로 남기고 돌려보거나 

등등의 일이 터질때마다 

아, 이 사회는 너무 자유롭구나 하고 혀를 끌끌차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자유에 책임이 있다면 

나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데는 어떤 책임이 필요한가.

그 책임을 저렇게 토르소같이 되어버린 몸을 하고 다하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참 곧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라난다.

때로 옆으로 자라다가도 결국엔 그들의 성장은 하늘로 향하게 되어있다.

꼿꼿하게 똑바로

타는 듯한 정수리를 가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자라나고 시간이 지나면 잎을 떨구고 새롭게 태어난다.

사람도 하늘을 향해 자라난다.

서서히 나이가 듦에 따라 땅을 향하기도 하지만

사람은 곧게 하늘을 향해 자라게끔 되어있다.

사람이나 나무나 종착역은 땅이다.

그래서 땅을 떠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물 한방울 통하지 않는

콘크리트 정글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때로는 작은 생물을 허용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빛과 물이 파고든 틈에서 자라는

경이로운 생명을 많이 봐왔다.

어쩌면 이 척박한 도시의 틈에서 자라난 나는

다른 이가 봤을 때 경이로운 존재가 아닐까.

조금쯤 자신감 가져도 좋지 않을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경이로운 존재가 아닌지.

우리 숨 다하는 날까지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우리 본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차가운 안경너머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싶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올 때까지.

거기 다들 잘 있으시오.

봄이 오면 내 자네들을 다시 찾으러 가리다.

그런 마음의 편지를 남겨두고 오는 길이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코끝이 시린 겨울속에 잠든 생명이 너무 그립다.

외부를 향하는 문을 닫아버린 꽃나무가 서럽다.

아직 시절은 가을이지만 이제 다가올 겨울을 

잘 버텨낼 자신이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춥다.

손발이 찬 뽀야를 꼭 안아주던 존재의 상실로 인해

이번 겨울은 더욱 더 차가울 것이다.

이 차가운 겨울을 함께 나고 싶었는데.

빼빼 마른 두손에 따뜻한 장갑 끼워드리고 싶었는데.

앙상한 목에 두툼한 목도리 채워드리고 싶었는데.

갈 곳 없는 발걸음은 집 주위를 맴돌고.

그리움은 조금도 증발하지 않고 내 몸안에서 들끓는다.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이여.

당신을 추억하는 일이 눈물에 얼룩진 얇은 추억이 되어

구겨지길 바라지 않는다오.

나 당신을 영원히 그리고 

내 삶에 녹여내서 언제나 함께이고 싶어라.

부디 걱정 없이 고통 없이 편히 잠드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이렇게 추울 때 내 손을 잡아줄 당신이 없어서.

이렇게 가련할 때 당신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어서.

안으로 쪼그라드는 후회와 죄책감은 접어두라고.

이제 똑바로 서서 걸어도 된다고 속삭여 주오.

사랑하는 아빠.

오늘도 손발이 다 잘려나간 저 나무를 바라보며

두눈 끝자락에 맺히는 당신을 그립니다.

사랑에서 싹이 튼다면 분명 초록빛일 겁니다.

푸르른 하늘아래 밝게 빛나니까요.

스스로 숨쉬고 살아남아 또다른 사랑을 싹틔워내야 하니까요.

사랑을 뿌리러 갑니다.

오늘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당신과 함께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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