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빠 떠나시고 난지 150일째나 되었어요.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느낌은 어땠냐 하면
와, 시간이 너무 빠르다.
아빠가 아직도 곁에 계실 것만 같다고.
오늘이라도 당장 점심시간에 현관문 열고
일이 고되다며 곧장 들어오실 것만 같아요.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아직 엄마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도 끌어안지도 못한채로
그렇게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요.
뽀야가 이번 달에 시험을 봐요.
그러면서 아빠 상념이 부쩍 늘었어요.
아빠가 있어서 당연했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거든요.
뽀야가 시험 볼 때마다 멀든 가깝든 아빠는 항상
뽀야를 위해 시동을 켜 주셨었어요.
편안하게, 긴장하지 말라고 우스갯소리도 섞어가며
주의사항도 한번 더 언급해 주시며 그렇게
같이 가는 시험장은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이제 뽀야는 그 길을 홀로 걷게 될 줄 알았는데
동생이 벌벌 떠는 누나를 그냥 볼 수 없어
같이 가준다고 하네요.
아빠. 정말 몰랐어요.
아빠는 그냥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엄청 된다는 사실이요.
아빠께서 시간 죽여가며 초조하게 운동장에서 또는
근처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계실 때에
뽀야는 편하게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뽀야가 시험지 휘날리며 아빠 차로 다가갈 때
항상 안도감, 뿌듯함, 그런 얼굴로 저를 맞아 주셔서 고마워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시험의 합불과 관계없이
뽀야가 도전할 수 있고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셨다는 걸
뽀야는 그저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되다는 걸 잘 몰랐어요.
또 더러움이 쌓여가는 화장실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아빠가 뽀야 여기 왜이렇게 더러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요.
직접 팔 걷어붙이고 걸레며 청소 솔이며 소쿠리며 락스며
바리바리 싸들고 화장실에 들어앉아 한참동안이나 쓸고 닦고
그러시던 아빠. 그리고 락스 냄새.
이제는 누가 화장실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하죠...?
뽀야가 물론 하겠지만 아빠 그렇게 힘든 일 어떻게 해 오셨어요?
아빠 일만으로도 바쁘고 힘든데 어떻게 집안 일에
아빠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거죠...?
우리는 가끔 아빠의 흔적들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요.
[예전에는] 아빠가 다 해주셨었는데.
[이제] 그 빈자리에는 우리 남은 가족만 덩그러니.
청소기에 쌓여가는 먼지들을 보고 있자니
아~ 이거 또 내가 나서야겠구만 하고 손 탁탁 털고 청소기 먼지
물로 싹 닦아내고 말리는 아빠의 모습이 겹쳐지는 거예요.
우리집 청소대장 아빠.
어디 계세요. 뽀야 마음 속을 헤매고 있나요...?
아빠 가끔 엄마 꿈에 검은 옷입고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지 말아요.
뽀야 꿈에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활달한 그 때 그 모습으로 나오시면서
엄마한테 그러기예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을텐데. 어떻게 꾹 참고 사셨어요...?
뽀야 100번도 더 혼날 짓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잠자코
기다려주셨어요...?
아빠 또 눈물이 나요.
바보같은 뽀야는 아빠 얘기만 꺼내면 눈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아빠는 뽀야가 우는 걸 너무 싫어하셨어요.
시험에 실패해서, 하는 일이 잘 안 돼서 울때마다
아빠는 바보 같이 왜 우냐고 너 바보냐고. 그러셨었죠.
이렇게 아빠를 뒤늦게 그리워 하며 울고 있는 모습 보시면
분명 뭐라고 하실 텐데 그래도 눈물이 자꾸 방울져 떨어져요.
100일이 안됐을 때는 자꾸 아빠 얘기만 쓰면 우니까
가족들이 블로그에 글 올리지 말라고.
왜 슬픔을 만들어내서 우냐고.
안쓰러워했었어요.
그런데 이것도 다 참아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언젠가 아빠얘기 하면서 웃을 수 있을 텐데
그 때가 한순간에 닥치는 거 아니잖아요.
우는 연습 많이 해 두어야 진짜 울 때 대비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고 뽀야가 혼자 청승맞게 엉엉 울더라도
따스한 그 손바닥. 도톰하고 세월에 깎이고 닳은 그 손바닥
뽀야 머리위에 늘 그랬듯이 가만히 얹어 주세요.
그러면 뽀야 힘이 딱 나면서 충전이 되니까요.
아빠와의 추억을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우리 행복했을 때의 그 웃음 그대로 지켜나가고 싶어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나요.
뽀야가 다칠 까봐 밤낮으로 걱정하셨던 아빠 마음이요.
어느날 우리는 장을 보러 마트를 갔는데
카트를 쥐고 괜히 신난 뽀야가 목도리 도마뱀을 흉내내면서
짝다리로 엉성엉성 카트 끌고 신나서 달려갈 때
아빠는 뒤에서 큰소리로 뽀야 저거 왜 저렇게 들떴냐며
저러다 다치지 아이고 아이고 뽀야!!!하고 외치셨던
그날의 장보기.
가족들 다 엉성한 뽀야의 걸음걸이에 폭소를 금하지 못하는데
아빠 혼자 진지모드로 계속 잔소리 잔소리.
그렇게 카트 끌고 춤추듯 걸으면 다친다며.
목소리 톤은 엄격하고 진중했지만
뽀야는 다 알아요.
아빠가 그 때 엄청 뽀야를 걱정하고 계셨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뽀야가 그렇게 카트를 경영할까봐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사실을.
아빠의 남긴 말 하나 행동 둘, 마음 셋.
이제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순간은 무척 화가 나고 어린아이처럼 굴던 뽀야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거.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뽀야가 울어서 이 눈물이 아빠를 다시 볼 수 있는 코인이 된다면
저는 매일이라도 울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기에.
뽀야는 눈물을 감추고
새빨간 코를 감추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요.
콧물이 가득 차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이 몸을 해가지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나름 발버둥 치며 살아가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뽀야지만.
이제는 나를 지켜주던 온실은 없어졌어요.
처음 몇 번은 고생 좀 겪겠지만.
아빠 딸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잘 해낼 테니까 늘 그렇듯이
사랑의 눈길로 따스하게 지켜봐 주세요.
가끔 숫자같은거 떠오르면 뽀야한테 제일 먼저 일러주기에요?
뽀야 욕심은 없지만 아빠가 알려주는 번호라면
제일 먼저 가서 찍어 볼게요.
아빠, 저에게 성실함을 물려주셔서 감사해요.
아빠가 지금의 코로나 19 사태를 완전히 겪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줄 몰라요.
병원이 폐쇄되고 행동이 강제되고
항상 마스크를 써야하는 이 기묘한 상황 속에
아빠가 안계시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마스크 없이는 밖도 못 돌아다닐 것 같아요.
아빠가 언젠가 사두셨던 침방울 마스크는
엄마가 잘 쓰고 계세요.
어떻게 그런 것 까지 미리 준비를 해두셨어요.
정말 아빠는 너무 위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아빠 정말 인정! 왕 인정! 대빵 인정!!!
세상 끝 인정!!!
아빠, 아빠, 뽀야가 너무나 사랑해요.
시험 잘 보고 올게요.
아빠는 저 하늘 멀리서 함께 지켜보고 계시겠죠?
그렇게 생각할게요.
뽀야랑 그날 만큼은 꼭 함께 해주셔야 돼요?
바쁜 일 다 제치고 뽀야 우선 해주시던거 잊지 않으셨죠?
자 갑니다~
우리 두 손 잡고 함께 갑시다!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아빠의 소중한 딸내미 뽀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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