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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일기

20200918 편지 6

by 뽀야뽀야 2020.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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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멋쟁이 아빠.

생신 축하해요.

뽀야는 돈이 생겨도 

나에게 쓰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 

뭔가 사주고 기뻐하는 모습에 

더 기뻐 날뛰던 그런 아이였죠.

아빠 생신이면 돈을 벌지 않아 

서글펐던 뽀야는 

정성스레 편지를 쓰곤 했어요.

그 편지를 아빠는 뭐가 중요하다고......

금고에 항상 보관 하셨었죠.

아빠의 비밀번호는 우리 가족 숫자 조합.

빠지지 않는 아빠 속 뽀야의 흔적.

상처는 아물면 낫지만

마음의 상처는 실밥을 그대로 남겨요.

언제든 꼬투리를 건드리면

상처는 터지고 곪아요.

뽀야는 그래도 이 상처가 좋아요.

내가 아팠었다는 걸 증명해주니까.

내가 그 시간 속에서 고민했고 길 잃었고 

힘들었고 주저앉고 싶었다는 걸 

인정해 주니까.

다른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상처가 다 나아서 나를 떠나가지만

내 안에 꼬투리로 남은 이 상처를 보듬으며

너만은 나를 떠나지 말아 주렴.

하고 기도하는 제가 여기 있어요.

지상에서 많이 울면 

그 울음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아빠 얼굴 떠올리지도 못하게끔 뿌옇게 만들어 버리니까.

울지 않을 거예요.

이제는 이 기쁜날을 축하할 수조차 없네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많이 웃고 했을 

과거에서 날아온 화살이 내 마음의 과녘에 생채기를 만들어요.

앞으로 몇 번 더 상처를 낼까요.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았던 우리 아빠.

오늘 내 곁에 있는 전자사전을 보며 또 아빠를 떠올려요.

대학생이면 이런 거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며 

그것도 일본어에 푹 빠진 딸내미를 위해서 

일본어 특화 사전으로 준비해주신 게 벌써 12년 전.

 

아빠는 참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이셨죠.

뽀야도 못지 않게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일도 

심각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다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 

꼽아내기도 해요.

이 사전이 다 낡고 못쓰게 되어도 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따지면 뽀야의 모든 잡동사니는 

다 아빠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마련한 것인데

뽀야가 유독 유난을 떠는 걸까요?

아빠 계실 때는 아빠라는 소중한 존재를

눈꼽만큼도 배려하지 못했던 

고약한 딸 뽀야였어요.

후회를 남기는 일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몰라요.

사람은 앞을 향해 나아가니까 

뒤돌아 보는 일이 아예 없을 수는 없어요.

뒤돌아 보면 돌처럼 굳어버리니 절대 뒤를 돌아선 안돼

라는 경고를 받지 않고서야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요.

아빠 떠난 하늘 아래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아빠를 잊은 적은 없어요.

밥상머리에서 아빠 얘기 꺼내다 

차갑게 식어버린 반찬들을 마주하는 일도

때로 뽀야의 잘못을 묵묵히 견뎌내셨던 

아빠의 따스한 눈길이 문득 떠올라도

마지막 알 수 없던 눈인사도

뽀야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해요.

[행복해야 돼.]

 

행복이 뭐 멀리에 있나요?

혼으로 머무는, 뽀야 곁에 있는 아빠와

우리 가족.

앞으로 펼쳐질 미래.

그 길에 행복이 널려있어요.

고개 숙여 줍기만 하면 돼요.

세상은 우릴 보고 3인 가족이라고 하지만

뽀야 마음 속에서는 아직도 우리는 넷처럼 보이는 하나예요.

아빠, 코로나 때문에 아빠 생일날 찾아 뵙지도 못하고......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날이 많이 추워지고 있어요.

감기 달고 사는 뽀야도 요즘엔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다닐 정도로

혈액순환도 좋아진 것 같고 점차 건강을 더하는 중이에요.

자전거 타기가 좋은 영향을 미친 듯 해요.

어떻게 아시고 미리 사 놓으셨는지......

뽀야 요즘에 하루 세 번 30분씩 자전거 타요.

세상에, 이렇게 꾸준히 운동하는 뽀야를 아신다면

아빠가 뽀야 어깨 두드려 주실텐데.

그저 빨래 건조대로 쓰였던 그 시절의 실내 자전거는

지금 뽀얗게 쌓인 먼지를 지워 나가고 있어요.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포기하지말고 뽀야 지켜봐 주세요.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오늘도 모니터를 뿌옇게 만드는 눈물이 미워요.

뽀야 열심히 해서 아빠한테 꼭 자랑하러 갈게요.

뽀야가 굼뜨지만 열심히 하는 거 아시죠??

아빠 한테 이어받은 성실이라는 두 글자 

평생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게요.

사랑과 애정을 가득 담아 

딸내미 뽀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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