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왜일까.
나혼자 산다를 보고 있는데 화사 편이 나오고 있었다.
고향 남원의 자전거 산책 길가에는 벚꽃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그런 벚꽃을 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올해 벚꽃은 언제 필까...?
그리하여 작년 벚꽃 개화 시기를 살펴보는데.
그러니까 2020 벚꽃 개화 시기를 찾아본 결과이다.
제주에서는 3/22에, 부산/진해에서는 3/25에, 서울에서는 4/5에 벚꽃이 피었었다.
우리가 벚꽃을 보려면 적어도 3월 중순에서 늦어도 4월 초까지는 기다려야 하네.
감질맛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벚꽃보다 더 빠른 개나리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2021 개나리 개화 시기를 작년 대비 비교해 보면,
여수에서는 3/13에, 중부지방은 3/21부터, 경기 북부는 4/1이후였다.
올해는 개나리를 먼저 보고 그 뒤에 벚꽃을 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벚꽃 연금이라는 말까지 붙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그 노래가 막 나왔을 무렵에 나는 친구들과 바다 여행을 떠났었다.
새벽에 차를 타고 바다로 향해서 무작정 숙소를 잡아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눈에 뜨이는 곳에 또 무작정 들어가서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그 때의 그 김치맛이 짜릿했다.
정작 바다는 잘 본 것인지. 그 기억은 조금 희미하다.
숙소 바로 앞에 바다가 있었지만.
친구 중 한 명을 불러내어 아침 일찍 해뜨는 것도 봤건만.
감흥이 없었던 것인지. 선명하지 않은 기억.
다른 친구들은 때아닌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 하나와 나는 슬쩍 빠져나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가 뜨고 있었다.
그 붉은 덩어리를 바라보며 따라 뭉클해지는 가슴을
어디에 토로할 데가 없어서.
상념에 빠져있었다.
해변가에는 쉼을 위한 나무 그네가 있었고. 거기에 걸터앉아
우리는 서로 말 없이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해가 완연히 다 떠오르자 우리는 해변가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때 친구가 엉덩이 젖지 말라며 건넸던 옷? 천 조각? 신문지?
그걸 깔고 앉아서 나를 집어 삼킬듯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다.
DSLR을 가지고 있었다.
전문가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게는 멋져 보였다.
나중에 집에 도착하면서 내릴 때 모르고 내가 툭 쳐서 카메라 렌즈 뚜껑이
바닥에 떨어지는 대참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내 곁에 없다.
그것이 여기저기서 해돋이라고 떠들어 댈 때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프다기보다는 살짝 간지러운, 이제 막 나은 상처처럼, 간지럽다.
벚꽃의 추억은 신기하다.
친구들과 떠난 바다여행에서도 벚꽃 구경 원없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가족과 함께 했던 도청 벚꽃놀이.
만개한 벚꽃 사이에 앉아 허접한 간식을 먹으며 즐겼던 꽃놀이.
그 때 아빠는 지금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참 많이도 사진을 찍어주셨었는데.
항상 어디를 가면 아빠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빠서.
정작 사진 속에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다.
셀카봉 사용도 어색해 하셔서 처음 한 두번 하시다가.
나중에는 그냥 찍사로서 열심히 활약하셨었지.
벚꽃은 아름답지만 떨어지고 나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늘하늘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으로 아름답지만.
그저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로.
우리는 땅을 향해 전속력으로 떨어지는 존재인 것이라고.
그리고 땅에 닿고 나면 의미없는 낙화가 되어버린다고.
방금까지도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그 꽃잎이 나라고.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게 낙화가 되어서 짓밟힐 운명의 우리들.
추락하는 모든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이 있던가.
그래도, 끝내 어디로 갈 지 모두가 아는 인생이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경험을 하며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거기까지 가는 경로를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뭐,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만들어 낸 꽃길을 걸어온 것만 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희생위에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3.1운동이 벌어졌던 아우내장터에도 벚꽃이 휘날렸을까.
그 때는 아직 벚꽃이 여기저기 심어지지 못할 때였으려나.
가슴 뜨겁게 그 날의 기억을 소환해 본다.
여기저기서 책으로 TV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그날의 함성.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그냥, 벚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쏟아 부어 이번 한 번을 위해 들이는 노력.
그 결과로 맺어지는 아름다운 꽃들.
자신의 생식을 위해 자신을 내주어야 하는 운명의 꽃나무들.
온갖 벌레와 곤충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번져가는 꽃들.
그런 자연의 섭리가 무서우리만치 아름답다.
딱 맞는 조각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생태계가 아름답다.
인간이 헤집어 놓기는 하지만,여전히 그들은 제 할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눈이 즐거워 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벌레 하나 만지지 못하는 내가,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부족할지 모르겠으나.
바라보고, 거기에 있어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꽃에 대한 감상은 충분하지 않을까.
함부로 꺾지 말고, 손 대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하는 게 꼭 사람사이와도 같아서 웃음이 난다.
벚꽃이 만개하면, 벚꽃이 잔뜩 심어진 장소를 따라 걷고 싶다.
꼭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동네에 심겨진 나무들을 발굴해 내는 재미도 톡톡할 것이다.
벚꽃이 피는 3~4월은 순간이고 축복이다.
이 귀중한 시기 놓치지 말고 봄꽃의 여운을 맘껏 느껴보시기를 추천한다.
벌써 3월의 첫 주 끝자락에 와있는 나는.
시간의 빠르기에 경악하며 이자리에 또 와 있다.
벚꽃잎이 어깨에 닿으면 생각나는 이름을 꼭 불러 보리라.
아빠........하고 부르면 내 곁으로 당장 달려올 것만 같은 그리운 사람.
세월은 이제 더이상 아빠의 머리를 희게 하지 못하지만.
내 기억 속 아빠는 언제나 잘 염색된 검은 머리인 채로.
나만 홀로 늙어 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지만.
벚꽃은 또 피어나고 나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나 또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잠시 정신차리고 바라보는 흐름위의 하늘이 눈부시다.
비록 희뿌연 하늘일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봄날은 사람의 가슴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툭툭툭 하고 마음이 열린다.
그 틈을 타고 흩날리는 벚꽃이 어지러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래, 봄이 또 왔구나.
두꺼운 겉옷 한 장 한장 벗게 하는 봄이 왔구나.
그리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그래도 이제라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온갖 복잡한 마음을 담아, 만개한 벚꽃앞에 설 준비가 되었다.
2021 벚꽃 개화 시기를 기다리는 모든 분들에게.
지금 곁에 누군가 있다면 소중히 여기고.
또 같이 손 꼭 잡고 벚꽃을 즐기시기를 바라며.
가벼운 동네산책만으로도 벚꽃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한 그루쯤은 심어져 있을 테니까.
비선형적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 애쓰는 뒷모습이 머쓱하여.
나는 오늘도 벚꽃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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